탈원전, 우릴 일자리서 내쫓아… 고용 유지한다던 대통령에 배신감"


[최보식이 만난 사람] 이성배 두산중공업 노조지회장


"민노총이 뭐라고 해도 우리의 밥줄 달려있어… 조합원들 생존권이 먼저

민노총, 왜 정부 말만 듣나… 맹목적인 탈원전 방침은 회원 노조의 입장에 반해"


   KTX 창원행 열차표에 맞춰 집을 나서려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두산중공업 노조 측이었다.


"어제 저희가 민노총 경남본부를 방문했습니다. 바로 전에 코로나 의심 증상자가 거길 다녀갔다 합니다. 오늘 새벽 이 사실을 통보받았습니다. 모두 접촉자로 분류돼 자가 격리에 들어갔습니다."


이런 일도 생길 수 있구나. 창원까지 못 내려가고, 이성배(43) 두산중공업 노조지회장과 예정된 인터뷰를 전화로 했다.


"코로나 사태로 항공사·정유사 등 많은 대기업이 최악의 위기에 몰렸지만, 우리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은 코로나가 아닙니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일감이 없어졌습니다. 일이 없는데 무슨 수로 매출이 나고 고용이 유지되겠습니까."



이성배 노조지회장은 “코로나 뉴딜 사업 차원에서 신한울 3·4호기 공사부터 재개해달라”고 말했다.




노동조합의 책임


―정부나 환경 단체에서는 두산중공업의 부도 위기는 탈원전 정책이 아니라 경영 실패의 결과라고 하는데?


"경영 판단에 실수가 있었다고 봅니다. 지난 10년간 1조원 넘는 적자를 낸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떤 발전 사업 계획이 나오면 미리 자재와 설비를 구매하고, 정부 주문에 맞춰 미래 사업에도 투자해야 합니다. 당장 영업 매출로 연결 안 되니 회계상 적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부채에 따른 금융 비용은 높았지만 탈원전 정책 전에는 영업이익에서 흑자였습니다. '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라 발전 사업이 진행됐으면 결코 이렇게 되진 않았습니다."


―경영진은 청와대나 산자부의 눈치를 봐야 하지만 노동조합은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현 정권이 탈원전을 밀어붙이기 시작할 때 노동조합이 나서서 반대했으면 지금처럼 되지는 않았을 텐데요?


"현 노조집행부는 작년 말 선거로 출범했습니다. 정부가 탈원전을 밀어붙일 때는 저도 일반 조합원이었습니다. 주어진 업무에만 신경 썼지 탈원전 정책의 파급 효과가 어떨지를 잘 몰랐습니다. 우리 일자리를 이렇게 빼앗아갈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막대한 영업 적자가 계속 나면 공장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건 상식입니다. 노동조합은 급격한 탈원전으로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대략 알았겠지요?


"과거 지도부에 대한 언급은 조심스럽습니다. 아마 이런 상황이 될 줄 몰랐던 것 같습니다. 과거 노동조합은 탈원전에 따른 고용 문제에 대해 정부가 해답을 줄 것처럼 말해온 것은 사실입니다. 이 때문에 조합원들은 '정부가 탈원전을 밀어붙이는 대신 다른 무엇을 해주겠지' 하고 어렴풋이 믿어왔던 겁니다."


―노동조합이 민노총 계열이라 탈원전 반대에 소극적이었다고 들었습니다. 바깥에서는 지금 두산중공업 상황을 자업자득으로 보지 않을까요. 이제 와서 노조가 탈원전 폐기 집회를 여는데, 먼저 '우리의 판단 착오로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당했다'라는 식의 반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일반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지금까지 노동조합이 무엇을 했나'라며 질책성 평가가 있습니다. 조합원들의 고용과 일자리를 못 지킨 데 노조의 책임이 분명 있었습니다."


―본인은 탈원전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었지요?


"작년 말 선거를 치를 때 우리는 '신한울 3·4호기 공사 재개와 탈원전 폐기' 공약을 내걸어 당선됐습니다. 그동안 창원 시내에서 탈원전 폐기 집회를 열고, 청와대와 세종 정부청사 앞에서도 피켓 시위를 벌였습니다."


―'탈원전'을 표방하는 민노총과는 충돌이 생기겠군요?


"상급 단체에서 뭐라 해도 당장 우리의 밥줄이 달려 있습니다. 제게는 우리 조합원들의 생존권이 먼저입니다. 민노총과 금속노조 간부를 만나 '일방적인 탈원전 정책은 옳지 않다. 민노총이 언제부터 정부 말만 듣고 맹목적으로 따르느냐. 이런 상황에서 탈원전의 대안이 뭐냐. 상급 단체가 어떻게 회원 노조의 입장과 생존권에 반하느냐'고 구두와 공문으로 항의성 질의를 한 적 있습니다."




―통상 민노총은 산하 노조가 투쟁 집회를 할 경우 지지나 동참을 하는데, 이번에는 그걸 기대하기 어렵겠군요. 민노총이 탈원전 방침을 바꿀 리는 없을 테니까.


"민노총과 의견이 상충돼도 우리는 독자적으로 해나갈 겁니다. 사실 민노총에는 원전 관련 회사 노조가 꽤 많이 가입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민노총도 난처한 입장이라 공개 표명을 못 하고 있습니다."



국민 세금으로 인공호흡기 달아


―민노총이 탈원전 방침을 고집하면, 원전 관련 노조들은 함께 가기 어려운 게 아닌가요? 회사가 망하고 나면 노동조합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회원사 조합원들의 이익에 반하는 민노총에 회비를 내면서까지 소속돼 있어야 합니까?


"여러 측면을 고려해야 할 사안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민노총은 공개적으로 우리의 탈원전 폐기 투쟁을 지지하지는 못해도 암묵적으로는 지지해주는 것 같습니다. 민노총의 탈원전 방침은 편향된 환경 운동가들의 시각에 의해 비롯된 것 같습니다. 과학적 검증 없이 탈원전을 하면 마치 정의 사회가 구현되는 것처럼 본 것이지요."




―지난 3월 두산중공업 사측은 '일부 휴업' 방침을 통보했지요. 휴업이란 공장을 사실상 못 돌리겠다는 것인데?


"회사의 잘못으로 일감이 떨어져 공장을 닫겠다는 겁니다. 해당 직원들에게 평균 임금 70%를 주고 쉬게 하는 것인데, 당사자 동의가 없어도 법으로 가능하게끔 돼 있습니다. 당초 4월 초에 휴업을 시행하려다가, 총선 앞두고 표심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정부가 일단 막은 걸로 압니다. 현재 공장 가동률은 거의 10% 선입니다. 탈원전 정책 기조가 안 바뀌면 언젠가는 닥칠 겁니다."


―탈원전 이후로 직원들이 얼마나 나갔습니까?


"올해 들어서만 750여 명이 명예퇴직 등으로 나갔습니다. 고정비 절감을 이유로 신규 채용은 안 하고, 이미 해마다 평균 200명씩 감소돼왔습니다. 몇 년 전 7700명이었던 총 직원 숫자가 지금은 5000명 선입니다."


―지금은 2차 명예퇴직이 진행 중이라고 들었는데, 명퇴 나이 기준이 어떻게 됩니까?


"처음에는 45세로 했지만 이제 나이 기준이 없어졌습니다. 원전의 경우 더 이상 인력을 감축하면 사업 자체를 유지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일이 없다고 해서 원전 설계나 엔지니어 인력을 한 번 자르면 나중에 충원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중국이나 러시아 원전 업체에 스카우트될 겁니다. 한 번 원전 산업 생태계가 무너지면 복원이 쉽지 않습니다."


―두산중공업도 어렵지만, 협력 업체들의 사정은 훨씬 더 심할 텐데요?




"협력 업체들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더 이상 못 버텨낼 겁니다. 창원에만 170개 협력업체에 1만3000명이고, 경남 전체로는 280개 업체에 2만3000명입니다. 정부가 탈원전 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단번에 다 무너질 겁니다."


―두산중공업에는 이미 정부 재정 1조원이 지원됐습니다. 이걸로는 턱없이 부족해 추가 지원이 있을 걸로 들었습니다. 정부가 자기 손으로 두산중공업을 경영 위기로 몰아넣고는, 이제 와서 국민 세금으로 인공호흡기를 달아주는 격인데?


"만기 도래된 채권 상환을 위해 지원해준 것인데 이것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안 됩니다. 지금은 정부가 1조·2조를 빌려주고 안 주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정부는 금융 지원의 조건으로 자산 매각을 요구하지만, 팔 것 다 팔고 난 뒤 어떻게 할 겁니까. 두산중공업은 매출이 일어나는 데가 거의 없습니다. 공장이 안 돌아가는데 어떻게 은행 빚을 모두 돌려받을 수 있겠습니까. 정부 재정만 집어넣어 봐야 마지막 시간을 연장해줄 뿐 결국 닥치게 될 겁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부 재정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고용 유지를 언급했는데?


"채권단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제시한 두산중공업 자구안에는 고정비 1500억원 절감도 포함돼 있습니다. 일 없어 놀고 있는 인력을 잘라내라는 겁니다. 문 대통령은 매스컴에서 '고용 유지'를 말해 점수를 따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이렇게 해고 압력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회사가 망해가는 판인데, 현실적으로 고용 유지가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바로 그 얘기입니다. 이런 말을 하는 게 조심스럽지만, 솔직히 대통령에 대해 배신감을 느낍니다. 말로만 고용 유지를 해야 한다고 할 뿐이지, 현장에서 고용 유지를 할 수 있게 만들어주지 않는 겁니다. 기업에 일감이 있어야 고용이 유지됩니다. 공장을 돌려야 봉급이 나오고 경제 순환 기능도 살아날 수 있습니다."


―신한울 원전 3·4호기 공사만 재개하면 지금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고 봅니까?


"상당 부분 숨통은 트일 겁니다. 신한울 3·4호기는 2조2000억원 사업입니다. 정부가 '코로나 뉴딜' 사업 계획을 한다고 발표했는데, 확정된 사업으로 진행해오던 신한울 3·4호기는 계획을 세울 것도 없습니다. 이미 4900억원 상당의 투자가 이뤄졌고, 기자재 보관 비용까지 합치면 7000억원이 들어가 있는 상황입니다. 중단시킨 것을 재개만 하면 됩니다."


탈원전 선언이후 중국 러시아에 모든 수주 물량을 빼앗겼다/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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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 좋은 일만 시켜줘


―환경 단체 출신인 여당의 양이원영 당선자는 "원전 노동자들을 훈련시켜 풍력(風力)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정말 실정을 모르는 소리입니다. 태양광·풍력은 기저 발전(24시간 연속 운전으로 전력 생산)이 될 수 없습니다. 풍력은 바람이 안 부는 시기에는 작동 안 되고 발전 효율이 너무 낮습니다."


―풍력 발전소 현장을 가보니 산림 훼손과 소음으로 인해 주민들의 민원이 심하더군요.


"경제적으로도 태양광·풍력은 일자리 창출이 거의 안 됩니다. 해외시장에서 국내 기술의 경쟁력이 떨어집니다. 태양광·풍력 부품 재료는 중국에서 거의 모두 수입합니다. 우리는 조립밖에 안 합니다. 풍력 팬이 잘 돌아가 봐야 중국 좋은 일만 시켜주는 겁니다."


다음 날 코로나 의심 증상자가 진단 검사에서 음성 판정을 받아 그는 자가 격리에서 풀려났다.

최보식 선임기자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18/20200518000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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