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조화로운 세상 만들기 [정달호]



www.freecolumn.co.kr

음악으로 조화로운 세상 만들기

2019.12.27

오늘 자 이 글은 사실상 엊그제 크리스마스 날에 쓴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 저녁에 칼럼을 쓰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명절날 딱딱한 자판 앞에 앉아 있으니 그리 좋은 모양새는 아닌 것 같군요. 벌써 마쳤어야 할 초고를 연말의 이 약속 저 약속에 밀려 여기까지 왔으니 다른 누구를 탓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쓰려던 글이 음악과 관련된 것이기에 성탄 명절의 분위기가 오히려 이런 글을 쓰기에 적합한 면도 있습니다. 성탄절에는 누구나 캐럴을 듣거나 부르게 마련이죠. 꼭 성탄일이 아니라도 연중 무슨 무슨 기쁜 날에는 노래가 없을 수 없을 것입니다. 노래, 즉 음악은 인간의 태생과 함께 세상에 나왔을 것으로 봅니다. 으앙, 하는 아기의 울음소리도 음악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죠. 어쩌면 모든 예술 형태가 인간과 더불어 애초부터 존재해 왔을 것입니다.

젊은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해온 저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음악과 가까워지는 느낌입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음악이 옆에 있으면 마음을 달래기가 쉬워진다는 건 누구나 경험하였을 것입니다. 혼자서 좋아한다는 것 빼고는 음악과 관련된 일에 무관하게 살아왔는데 작년부터는 서울국제음악제(Seoul International Music Festival, 조직위원장 임성준 전 주 캐나다대사) 조직위원으로 이름을 걸어놓게 되어 더욱 음악과 가까이 지낼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크고 작은 콘서트에 가는 빈도가 전보다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번 겨울만 해도 두 손으로 꼽고 남을 만큼 음악회에  자주 다니고 있는 셈이죠

큰 음악회야 티켓을 사거나 받거나 하여 콘서트홀에 들어가서 잘 듣고 나오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음악회들이 있습니다. 지난 시월에는, 하루 남겨 놓고 갑자기 누가 초대를 했는데 내용을 살펴보니 흥미를 돋우는 것이라서 다른 일을 제쳐놓고 가회동의 어떤 도자기 공예 연구소에서 열리는 작은 음악회엘 갔었습니다. 평소에는 사람들이 와서 도예 수련을 하는 곳인데 저녁 시간을 활용해서 몇몇 유수한 연주자들이 출연하는 음악회를 연다는 것이었습니다. 무대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싸한 피아노가 있는 것도 아닌 장소지만 그런대로 작은 음악회가 가능한 곳이었습니다. 공방의 한쪽에는 간단한 먹거리와 주류.음료가 준비돼 있었습니다. 20, 30인 규모의 관객이 앉을 정도의 비좁은 공간이지만 그만큼 더 오붓하고 연주자와 관객 간 또 관객들 간의 대화를 통해 친밀도가 높았던 것이 특징이었습니다.

그 음악회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지, 지난달 마침 제가 서울에 체재하는 동안 동네 지인의 따님이자 재영(在英) 음악가인 황정원(Julia Hwang, 25) 씨가 동네 사람들에게 음악을 선사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해 해왔습니다. 그의 부모님과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이기도 하고 제가 좀 나서서 아는 지휘자나 작곡가에게 그 젊은 음악가를 소개해주기도 한 터라 그 보답으로 생각한 듯하였습니다. 연주할 사람이 있다고 곧 음악회가 될 수는 없겠지요. 아무리 작은 연주회라도 이런저런 기획이 있어야 하기에 오스트리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협소한 공간이지만 제가 머물고 있던 딸의 집에서 작은 음악회를 하기로 했습니다. 초청하는 것부터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오는 사람들끼리 어울릴 수 있도록 초청 대상에 신경을 써야 하고 초청을 받아서 꼭 그 날짜에 올 수 있을 것인지도 고려해야 하니 이래저래 시간과 노력이 들긴 들었습니다. 

그래도 정한 날짜에 그야말로 작은 음악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지인들과 동네 애호가들 여남은 명이 와 주어서 그런대로 좁은 아파트를 채웠습니다. 참석자들은 지근 거리에서, 만든 지 3백년이 넘는 과르네리우스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니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분위기가 절로 달아서 앵콜도 하고 끝나자마자 연주자와 관객이 어울려 음악과 음악가에 대한 얘기로 꽃을 피웠습니다. 마침 가족이 집을 비운 때라서 제가 청소는 물론 간단한 먹거리와 음료 준비까지 다 해야 했으니 힘은 들었지만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는 이달 초 동네에서 또 작은 음악회가 열려 이번에는 제가 관객으로 초대를 받아서 갔습니다. 다른 곳이 아니라 남산타운아파트 단지 안에 자리한 버티헤어(Burty Hair, 대표 김경숙)라는 인기 미용실에서였습니다. 저도 15년 이상 단골이며 그 미용실 단골 중 기악을 하는 연주자들이 제법 있어서 그분들 너덧 명이 날짜를 정하여 그 미용실에서 연주회를 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그 미용실 주인 여성은 머리 손질하는 실력도 뛰어나지만 사교성과 재치가 뛰어나 주로 여성인 고객들과 매우 친하게 지내는 터였습니다. 이 연주자들도 평소에는 물론 특히 공연을 앞두고서도 모두 이 미용실에서 머리를 한다고 합니다. 

평소보다 일찍 미용실 문을 닫고 의자를 재배치하거나 추가로 들여놓아 20여 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정해진 날짜에 가보니 아주 그럴듯했습니다. 무대 쪽에는 붉은 커튼을 쳐놓아서 분위기를 더하였습니다. 평소에 카운터로 쓰는 곳에는 음식과 스파클링 와인 등 주류.음료가 배치돼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일정 때문에 오래 있지 못하고 미리 자리를 떴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연주는 물론 뒤풀이가 매우 풍성했다고 합니다. 흥겨운 분위기에서 동네 사람들 간 친밀도를 높이고 음악을 통한 상호 이해도 깊이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은 지난 크리스마스 날 이 글을 쓰기 직전까지도 성악을 연주하는 다른 콘서트에 다녀왔습니다. 이 콘서트에는 약 120여 명의 관객이 참가하였는데 무대에 오른 사람들은 모두 아마추어 성악가들이지만 평소의 기량에다 전문 성악 교수로부터 정기적인 훈련을 받아온 분들이라 들어볼 만한 수준이었습니다. 이태원 한복판 제일기획 건너편 건물의 지하 공간에 마련된 루체(LUCE - 빛, 대표 조이연)라는 이름의 소규모 콘서트홀에서 열렸습니다. 공개 음악회가 아니라서 관객은 출연진의 친지가 대부분이었으며 저는 콘서트홀 대표의 지인 자격으로 특별히 초대를 받아서 갔습니다.

출연자들은 대부분 은퇴한 전문직 인사들로서, 평생 이루지 못한 성악가로서의 꿈을 뒤늦게 실현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날이 날이다 보니 한 시간 반의 연주가 끝나고 이어진 저녁 식사 자리는 자연히 크리스마스 이브닝 파티로 발전하였습니다. 출연진이 내놓은 푸짐한 경품까지 있어서 예술을 위한 자리인 동시에 넉넉한 엔터테인먼트의 자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출연한 성악가들은 물론 관객으로 참여한 친지들은 서너 시간 동안 줄곧 행복감을 느꼈을 것이고 음악적 분위기에서 주변에 나누어 줄 행복 바이러스를 많이 만들어서 나왔을 것입니다.

.

.

작은 음악회에서 중규모 음악회까지 얘기하였으니 큰 음악회에 관해서도 몇 마디 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그 많은 국내 음악회는 물론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음악회에 대해 제가 이렇다 저렇다 말할 건 없지만 공통적으로 모든 음악회는 음악을 즐기는 관객들을 행복하게 할 뿐 아니라 간접적으로 음악을 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안정감, 조화로움, 평화로움을 선사할 것으로 봅니다. 큰 음악회들은 전문기획사 주관으로 대부분 상업적 또는 준상업적으로 운영되겠지만 어떤 음악회 또는 일정 기간을 정해 진행되는 음악제들은 상업과는 거리를 두고, 음악을 통해 세상을  더 조화롭게 만든다는 나름의 목적의식 하에 조직되고 기획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서울국제음악제가 바로 그런 음악제입니다. 늦가을 보름 간 그리고 봄철 며칠, 이렇게 일 년에 두 번 개최되는 서울국제음악제는 순수한 민간단체가 기획.운영하는 음악제로서 상업적으로 운영하는 일반 음악회와는 다릅니다. 상업적이 아니라 해서 티켓을 무료로 한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다만 티켓 값을 매우 저렴하게 책정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합니다. 외국에서 초청해오는 오케스트라나 솔로 연주자, 챔버음악 연주자들에 대한 초청 비용과 콘서트홀 대관 비용 등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국내외 후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으며 부족한 경우에는 조직위원들이 감당하기도 합니다. 13회째인 올해만 해도 약 5천만 원의 부족액이 생겨 자체적으로 충당해야 했습니다.

무슨 사업을 하는 데 있어 적자를 내면서 한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대규모의 음악제를 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함으로써 사회를 보다 조화롭게 할 수 있다는 비전과 소망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음악을 '소리의 조화'라고 한다면 음악 연주를 통해 그런 조화와 질서의 마음이 사람들에게 배어 들어갈 것이며 그런 사람이 많을수록 사회가 조화롭고 안정되며 더 평화롭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근무하던 오스트리아의 경우를 보면 모든 교회나 공공의 장소에서 또는 각자의 집에서 늘 크고 작은 음악회가 열리고 있으며 중앙이나 지방의 정부가 하는 행사에는 반드시 음악 또는 무용 순서가 들어갑니다. 그러니 참가하는 사람들이 수시로 음악을 접하고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만큼 그 나라가 조화롭고 안정돼 있음을 볼 수 있으며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도 음악이 사람들의 시간을 많이 차지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볼 때 우리나라도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을 더 높여나갈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음악교육에 많은 노력을 쏟아온 덕으로 서울과 지방에 많은 음악가들이 있습니다. 서울시향이나 KBS교향악단 외에도 수많은 오케스트라가 중앙과 지방에 조직돼 있고 어디에나 많은 연주자, 지휘자들이 있어 음악의 좋은 영향을 늘려가는 데는 여건이 매우 좋은 나라입니다.

어떤 지휘자들은 대중에게 클래식 음악을 확산하고 좋은 음악가를 발굴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하여 활동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맨 앞에 얘기한 작은 동네음악회들도 규모와 관계없이 나름대로 우리 사회를 안정되고 조화롭게 하는 데 기여하고 있을 것입니다. 큰 음악회들은 각기 짜여진 계획에 따라 더욱 활발하게 음악활동을 해나갈 것이지만, 이 못지않게 음악 애호가들이 자기 동네나 자기 집에서 작은 음악회를 많이 열어나간다면 보다 바람직한 사회가 되는 데에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함께 음악을 즐김으로써 각자의 행복을 늘려갈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질서와 조화의 정신을 고취함으로써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것으로 기대해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파나마, 이집트대사를 역임했다. 은퇴 후 제주에 일자리를 얻는 바람에 절로 귀촌을 하게 되었고, 현재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꽃나무들을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즐거움을 찾는다.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