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미술시장, 살려야 한다 [이성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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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미술시장, 살려야 한다

2019.11.22

독일의 항구도시 함부르크(Hamburg)를 끼고 흐르는 엘베(Elbe)강 하구에 우뚝 선 명물 엘프필하모니 홀(Elbphilharmonie)은 2017년 개장 이래 2,100석의 객석 평균 가동률이 99%에 이른다는 자료(Der Spiegel, 2019.1.17.)를 본 적이 있습니다. 놀라움과 부러움이 교차하였습니다.

비슷한 맥락의 통계자료가 생각납니다. 독일 하면 축구가 떠오를 정도로 축구는 독일인의 사회생활에서 큰 몫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해 동안 축구장을 찾아 경기를 즐긴 관중 수보다, 독일에 있는 6,500개의 다양한 미술관과 박물관 등 전시장을 찾은 관객의 수가 더 많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Die Zeit>, Museumfuehrer, 2010. Edel Germany GmbH). 참고로 우리나라에는 1,124개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습니다. (박물관 873곳, 미술관 251곳. 2018년 문체부 총람 기준)

최근 들어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이 국제미술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조형미술품이 뉴욕, 파리, 바젤과 같은 미술시장(Art Fair)이나 경매(Auction)시장 등에서 거래되는 현황을 보면, 그 규모가 엄청나서 문화예술품이 가진 경제적인 측면을 실감하게 됩니다.

문화예술의 경제적 가치를 거론할 때면 필자는 1960년대 미국 국방장관과 세계은행 총재를 지낸 맥나마라(Robert McNamara, 1916~2009)가 한 기자와 회견 중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세계 최고의 ‘기름 부자’는 누구이겠습니까?”라고 묻고는 “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이지요.” “캔버스에 오일(Oil) 조금 바르고 기상천외할 만큼 고가의 작품료를 챙기기 때문입니다.”라면서 자문자답하듯 말합니다. 매우 극단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문화예술품이 창출하는 고부가가치성을 설명하는 ‘명료한 정의’가 아닌가 싶어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계를 둘러보면 결국 문화예술이 꽃피는 나라가 경제대국이고, 경제대국에서는 문화예술이 꽃피고 있다는 방정식이 보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문화예술과 경제는 ‘어깨동무’를 하고 사회발전에 서로 공조·공존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나아가 예술품은 경제적 가치를 넘어 국가브랜드파워를 높이는 매개체로서의 기능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비문화(非文化)적 작태가 횡행하고 있습니다. 문화예술계가 사회의 ‘금전(金錢)주의’에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있는 다양한 현상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국내 미술계의 사정을 보면 가슴이 답답해 옵니다.

많은 사람이 문화예술품을 사치품 수준으로 보는 시각을 숨기지 않습니다. 언제인가 필자가 조각품을 병원 구내에 설치하였더니, 기관예산인 공금으로 저런 ‘사치품’을 사들여 왔다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거기에는 그런 조형물은 ‘의사’들만의 향유물이 아닌가 하는 메시지도 담겨 있었습니다. 비판자들의 추측과 달리 그 조각품은 필자가 기증한 것이었고, 미술품에 울타리를 쳐놓고 특정 구성원만 감상하도록 한 것도 아니고 방문객을 포함해 모든 병원 구성원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위치에 놓여 있는데도 그 같은 말들이 오갔습니다.

그리고 국가적 차원에서도 세정(稅政)기관이 문화예술품을 세원(稅源)으로만 간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인과 같은 눈높이에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필자는 세무 관련 전문성이 없습니다. 그러나 국내 미술계의 흐름을 지난 30여 년간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았기에 2013년 미술품 거래에 따른 소득세 부과로 시장규모가 거의 30%나 위축(萎縮)되었던 현상을 기억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빈약하기만 한 국내 미술시장이 빈사(瀕死) 상태에 함몰하는가 싶었습니다. 그런데 근래의 새로운 세금정책으로 국내 미술계는 신음소리를 내며 다시 술렁이고 있습니다.

소득이 발생하는 곳에 세금을 부과한다는 기본원칙을 탓하는 게 아닙니다. 서구 여러 국가에서 문화예술을 부가가치가 높은 문화산업으로 간주하고 앞에서 뒤에서 세심한 세정으로 뒷받침해주는 것과는 달리 우리의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세정은 서구와는 거리가 있어도 너무 멀다는 뜻입니다. 국가는 문화예술품 시장을 단지 사치품의 ‘거래 장터’ 정도로 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즉, ‘사치품 시장’이기에 윽박질하여도 되지 않겠느냐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됩니다.

국내 미술품은 주로 화랑가에서 거래됩니다. 그런데, 화랑가가 빈사 상태에 빠트리는 것은 미술작품을 만들어내는 수많은 창작 작가의 ‘생활터전’을 짓밟는 것과 진배없습니다. 미술시장인 화랑가는 작가들의 작품이 거래되는 시장이지, 그저 전시공간만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즉 화랑가의 빈사는 수많은 창작 작가의 가사(假死)로 이어지고 맙니다. 국내에는 문체부 추산으로 5만여 명 전업 작가가 있고 그중 87%가 프리랜서입니다.(김달진미술연구소 추산). 따라서 미술시장의 위축이 그 가족에 미치는 연쇄반응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입니다. 더 나아가 매년 10,000여 명(김달진미술연구소)의 신진 작가들이 국내 미술대학에서 배출되는 것을 보면 그 여파가 어떨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배려 깊은 세정이 미술품시장에 미치는 선순환의 고리가 간절하고 국가 차원의 문화예술진흥 정책이 절실한 것입니다.

근래 정치 이야기는 홍수처럼 범람하는 데 반해 국내 문화예술계에 대하여는 ‘쓴소리’ 조차도 들을 수 없습니다. 무관심의 도가니에 묻혀버린 듯합니다.

일찍이 백범 김구 선생은 해외를 떠도는 그 어려운 시절에도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갈구(渴求)하였습니다. 시대를 뛰어넘는 깊은 사상적 안목을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오늘의 우리 문화예술계의 상황입니다. 국내 미술시장이 빈사(瀕死) 상태에 처한 오늘의 현실에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세금정책 담당자가 백범 김구 선생의 문화강국에 대한 열망과 피카소 작품에 숨겨져 있는 문화예술품의 고부가가치를 되새겨 보는 혜안(慧眼)을 갖게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국가가 국내미술시장을 보살펴야 한다는 바람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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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전 한국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전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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