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초점 [안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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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 초점

2019.08.29

올 상반기를 가장 뜨겁게 달군 전시는 바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데이비드 호크니 전이었습니다. 30만 명이 넘게 다녀갔다는 이 소문난 전시의 안내 책자에는 “호크니는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고 대중적인 예술가 중 하나이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다는 건지, 모호한 비문입니다만 그가 많은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점은 분명합니다.

2018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예술가의 초상(1972)>이라는 작품이 우리 돈 약 1019억 원에 낙찰되며,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을 그린 생존 작가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던 호크니. 제가 그의 작품을 실물로 처음 본 것은 2016년 런던 여행 중, 로얄 아카데미 오브 아트에서 열린 <82점의 초상화와 1점의 정물화(82 portraits and 1 still life)>라는 전시였습니다. 아트 딜러, 동료 화가, 큐레이터, 스튜디오 어시스턴트, 가정부 등 그림 속 82명의 인물들은 특별한 소재이기보다는 그의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의 가족, 지인, 집, 산책로, 여행지, 반려동물까지. 난해한 현대미술의 조류 속에 이토록 평범한 소재로도 힘을 발휘하는 호크니의 작품은  어떤 면에서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것일까요. 형태를 단순화하고 색을 세련되게 사용하면서도 마치 연극무대처럼 공간을 만들어내고 분명 현실을 그린 것인데 판타지가 가미된 매력이 느껴지는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에 대상을 바라보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호크니는 모든 픽처(picture) 곧 그림이나 사진에는 붓이나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의 주관이 반영된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주차장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 역시도 보고자 하는 관점을 선택한 것이고, 우리들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호크니는 스스로 대상을 바라보는 방법에 관심이 많은데, 그의 말대로라면 그가 바라보는 방식에서 사람들도 아름다움을 느끼거나 공감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사랑하는지도 모릅니다.

호크니의 바라보는 방식 가운데 특징적인 부분은 다시점입니다. 사실 서양의 그림은 오랫동안 단일 시점 즉 초점 투시를 이용하여 원근법에 의한 그림을 그려왔고 공간감을 표현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방법론이 적용된 대표적인 것이 카메라에 의한 사진입니다. 호크니 역시 사진을 작업의 도구로 많이 활용해왔는데 카메라가 세상을 어떤 면에선 동질화하고 능동적으로 볼 수 있는 행위를 퇴화시킨다면서, 다시 아날로그적인 눈과 손에 의한 그림으로 돌아옵니다.

사진에 심취했던 그가 다시 그림으로 돌아온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발견됩니다. 그중 하나는 어린 시절의 경험인데, 1937년생으로 올해 82세인 그는 18세가 되어서야 TV를 접했고, 대신 그의 유년의 기억 속에는 영화관이 자리합니다. 영화를 너무나 좋아했던 어린 시절 ‘씨네마’도 ‘무비’도 아닌 ‘픽처’라고 불렀던 영화를 보기 위해 몰래 영화관에 들어가 앉게 되면, 맨 앞자리여서 스크린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렸을 땐 보고 있는 화면이 테두리 안에 있다는 것을 몰랐고, 따라서 그가 바라보는 장면은 제한된 공간이나 순간의 찰나가 아니라, 끝도 없이 펼쳐지는 연속된 공간이며 여기서 마음껏 몰입의 즐거움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의 이러한 기억은 중국식 두루마리 그림을 만나면서 작품제작에 더욱 효력을 발휘합니다. 공간은 하나의 제한된 장면으로 끝나지 않고. 두루마리 그림을 펼쳐가다 보면 눈이 움직이고 마음이 움직이고 그림 안에서 걸어 다니고 이야기를 상상하는 의식의 흐름식 내러티브가 만들어집니다. 전통적으로 동양화에서는 화가가 고정된 시야를 벗어나 다양한 시야로 대상을 관찰하고 얻은 결과를 화면에 구성합니다. 그래야 눈속임이 없이 본질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지요.

“눈은 언제나 움직인다. 눈이 움직이지 않으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눈이 움직일 때, 내가 보는 방식에 따라 시점도 달라지기 때문에 대상은 계속해서 변화한다.” 호크니의 말대로 사진에 담긴 정지된 순간은 찰나의 일부일 뿐, 실제 눈으로 보는 것에 비하면 비현실적인 것이며 생생함이 없는 것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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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 호크니, 더 큰 그랜드 캐니언, 1998, 60개의 캔버스에 유채, 207x744.2cm

호크니는 다시점의 방법을 풍경에 적용하는데, 확대된 넓은 의미의 원근법으로 공간을 더욱 확연하게 웅장하게 볼 수 있도록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 이러한 호크니의 시점은 사진이 담는 물리적 순간과 다르게 세상을 심리적으로 보게 합니다. 그리하여 좀 더 작가가 바라보는 관점을 확연하게 드러내게 하는 것입니다.

호크니의 작품에 나타나는 다른 시각의 융합 다시점의 장점을 우리의 일상 즉 삶에 대입해 봅니다. 만약 하나의 초점 투시 한 방향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결국 보지 못하는 부분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다시점 투시로 보면, 즉 위에서 아래에서 혹은 옆에서 모두 바라본다면 중요한 본질을 다 드러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움직이는 초점으로 살펴봐야 제대로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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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안진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교수. 삶의 중심은 그림이지만 그림과 함께 일상을 풀어내는 방법은 글이다. 꽃을 생명의 미학 그 자체로 보며 최근에는 ‘꽃과 문명’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저서 <당신의 오늘은 무슨색 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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