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 제주도 2박3일 [임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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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했던 제주도 2박3일

2019.08.28

나는 제주도와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스스로 여깁니다. 제주도와의 첫 인연은 54년 전 1965년 가을 고교 졸업여행을 제주도로 간 것입니다. 당시 충남 보령군에 소재한 고등학교 학생들의 제주도 여행은 열차를 세 번, 배를 두 번 갈아타고 가는 멀고도 힘든 길이었습니다.

대학에 들어가니 같은 학과에 제주도 출신 동창이 있었습니다. 1966년 1학년 겨울방학 때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몇 명의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에 갔습니다. 제주시에서 버스를 타고 눈 덮인 한라산의 5·16도로를 넘어 서귀포로 갔습니다. 제주에서 성판악까지는 한겨울이었으나 성판악에서 서귀포는 봄인 것이 신기했습니다.  그것이 제주도와의 두 번째 만남이었습니다.

1969년 가을 대학졸업여행도 제주도로 갔습니다. 그때는 이미 제주도가 관광지로 각광을 받기 시작할 무렵이었으므로 신혼여행만큼 대학졸업여행도 흔했습니다. 이처럼 나는 1960년대 후반에 이미 세 번이나 제주도를 다녀왔습니다.

제주도와의 인연은 1974년 한국일보 입사 후로도 이어졌습니다. 입사동기생 가운데 제주도 출신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와는 그 후 퇴직할 때까지 30년 넘게 한솥밥을 먹었습니다. 그는 나의 제주출신 대학동창과는 제주도의 고등학교 동창이었습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는 남들처럼 휴가나 업무로 제주도를 자주 찾았고 한라산 정상에도 올랐으며 그때마다 제주도와의 인연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일보 동기생 친구가 특별한 제안을 했습니다. 제주도에서 며칠 아무 생각 없이 걸을 생각이 없냐는 것이었습니다.

그와는 생각이 비슷하고, 무엇보다 보폭(步幅)이 비슷한 터라 쉽게 의기투합했습니다. 7월 27일 2박3일 일정으로 제주도로 향했습니다. 28일 아침 우도(牛島)가 고향인 친구 지인의 안내로 우도를 한 바퀴 돌고나서 시간이 되면 오름 하나를 오르기로 하고 제주시를 출발했습니다.

우도에 도착한 것은 정오 무렵. 장마가 그치고 모처럼 햇볕이 쨍쨍한 날이었습니다. 둘레가 4㎞쯤 되는 우도를 두시간 걸려 일주하니 햇볕에 노출된 피부는 타는 것을 지나 익어버렸습니다. 우도의 주산품은 바다에선 성게와 미역, 땅에서는 땅콩이라고 했는데, 아이스크림에 우도 산 땅콩가루를 얹어 땅콩아이스크림이라며 팔고 있었습니다. 달콤 고소한 우도 땅콩막걸리도 있어, 점심으로 시원한 한치 물회에 곁들이니 또한 별미였습니다.

우도에서 나와 서귀포시 표선면에 있는 해발 342m의 나지막한 따라비 오름으로 갔습니다. 오후 6시쯤 우리가 마지막 등산객이었습니다. 30분쯤 걸어 정상에 오르니 바람이 제법 세차게 불면서 낮 동안 텅빈듯했던 하늘에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앉아서 쉴 평상이 놓인 게 이채로웠습니다.

한라산 자락의 풍광은 정상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한라산의 품에 안긴 것 같은 포근함이 있었습니다. 그 풍광에 넋을 놓고 취해 있다가 우리는 평상에 벌러덩 누웠습니다. 누워서 보는 하늘은 서서 보는 하늘과 달랐습니다. 시야에는 오직 하늘과 구름만 들어왔습니다. 별이 보이기에는 아직 날이 훤했습니다.

하늘에선 낮게 뜬 구름이 바람에 실려 빠르게 지나고 있었습니다. 낮은 구름 위로 높게 뜬 구름도 있었는데 그 구름은 멈춰있는 듯이 보여 얼핏 서로 반대 방향으로 가는 듯했습니다.

눕고 보니 생각나는 것이 또 있었습니다. 산에 오르면 눈앞과 발아래를 내려다보기에 바빴지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는다는 생각 말입니다. 그가 서 있는 곳이 에베레스트라고 한들 하늘에서 보기엔 한없이 낮은 곳일 뿐입니다.

사람이 죽어 별이 되는 것으로 알았던 어렸을 적엔 우리는 ‘저 별은 너의 별, 저 별은 나의 별’이라고 노래했습니다. 나이 들어서는 인생의 덧없음을 구름, 또는 바람에 비유하면서, 사람은 죽어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는 것은 아닐까를 생각했습니다.

구름 속의 혼령을 실어 나르는 수레가 바람은 아닐지, 그 혼령이 흘리는 눈물이 비가 아닌지, 구름을 실은 수레의 덜커덕거림이 뇌성벽력은 아닐지, 혼령이 차갑게 얼어붙어 눈이 되고 얼음이 된 것은 아닌지.

다음날 아침에 오른 해발 1,100m의 어승생 오름은 햇볕이 뚫고 들어올 틈이 없을 정도로 숲이 하늘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길을 따라 숲의 터널이 생겼고, 그 터널 안은 바람의 길이었습니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며 내는 소리가 바람과 나무의 대화처럼 들렸습니다. 나의 귀가 열려 있다면 바람과 나무의 얘기를 엿들을 수도 있겠거니 했습니다.

두 오름에서 내려오는 길에 양희은의 노래 ‘한계령’이 절로 흥얼거려졌습니다.
‘~ ~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가고파 / 이 산 저 산 눈물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무 생각 없이 걷기만 하자고 온 길이었으나 떠가는 구름과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엉뚱한 생각만 잔뜩 하다 왔습니다. 서울로 돌아오던 날 제주도의 명물 갈치국 집에서 제주 출신의 두 친구와 저녁을 함께했습니다. 두 친구도 여러 자리에서 만나기는 하지만 마주보고 저녁을 같이하기는 반세기도 더 지난 고교 졸업 후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이래저래 특별한 제주도 2박3일이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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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사장을 끝으로 퇴임했으며 현재는 일요신문 일요칼럼, 논객닷컴 등의 고정필진으로 활동 중입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및 감사를 역임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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