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떠나보내며... [방재욱]



www.freecolumn.co.kr

친구를 떠나보내며...

2019.08.16

지난 7월 마지막 금요일 오후에 친구로부터 내일 만날 수 있느냐는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니 오랫동안 폐암으로 고생하며 지내온 친구가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겼다며 함께 문병 가자고 제안해, 다음 날 오후 1시에 만나 문병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호스피스 병동이 평온한 죽음을 맞이하러 가는 곳이라는 생각에 몇 주 전 다른 친구들과 함께 만나 점심 식사를 할 때도 평소처럼 즐거운 표정으로 얘기를 잘했던 친구 얼굴이 떠오르며 가슴이 찡해왔습니다.

다음 날 아침 문병 갈 친구를 떠올리며 아름답게 죽음으로 다가가는 <웰다잉(Well-dying)>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어보고 있는데, 어제 통화했던 친구로부터 다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오늘 문병하기로 한 친구가 아침 7시 반경에 영면했다는 것입니다. <어이쿠!> 하면서 제대로 응답도 하지 못한 채 전화를 끊고 나니, 오래전에 폐암 수술을 받고 도를 닦듯 열심히 투병하며 잘 지내온 친구와 작별 인사를 나누지 못한 아쉬운 마음에 눈물이 핑 돌며 가슴이 미어져 왔습니다.

그동안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많이 저세상으로 떠났지만, 이번 친구와의 사별이 가슴에 더욱 찡하게 다가오는 것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동창으로 함께 지내왔던 특별한 인연 때문입니다. 당시 중고등학교가 모두 전국적으로 입학시험을 치러 선발하던 시대였는데,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연이 묘하게 이어진 친구였기에 더욱 보고픈 마음이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시절 고교 입시제도가 바뀌어 국어, 영어, 수학 교과목 시험만 치르는 바람에 모교 진학시험에서 많은 동기들이 탈락했고, 나와 그 친구도 재수를 하게 됐습니다. 이듬해에는 다시 전 과목 시험으로 입시제도가 바뀌어 1차 고등학교 시험에서 다시 탈락하고, 2차 시험에서 같은 고등학교에 지원해 합격해 서로 만나 결국 중고등학교 동창 인연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중학교 시절 집으로 가는 길이 같은 방향이라 토요일 하교하며 한강변에서 함께 조개를 잡던 추억이 아스라이 떠오릅니다.

동창들에게 친구의 영면 소식을 알리고 오후 4시경에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벌써 여러 친구들이 문상을 마치고 둘러앉아 우리 곁을 떠난 친구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틀째 저녁에도 친구들과 함께 영면한 친구의 곁에서 지내고, 3일째 이른 아침에 치른 장례식에 참석해 친구와 영원한 이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장례 예식은 친구가 다니던 성당 주관으로 <출관예식>에 이어 <장례미사>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출관예식은 참석한 사람들이 함께 부르는 시편 노래 <... 만군의 주님 계시는 곳 그 얼마나 사랑하오신고>로 마감하였습니다. 장례미사는 시작예식과 함께 시작성가 520 <오늘 이 세상을 떠난>으로 시작해, 마침성가 227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로 마감되었습니다. 영결식장에서 오늘이라는 삶에서 내일이라는 저세상으로 떠난 친구에게 <친구야! 평안한 마음으로 잘 가게나. 새로 가는 세상에서 평온한 마음으로 잘 지내기 바라네.>라는 마지막 작별 인사를 보냈습니다.

영결식을 마치고 귀가하며 <죽음>을 무섭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 <축복>으로 받아들여야겠다는 다짐을 해보았습니다. 나이가 들며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는 것은 삶의 질에서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지금까지의 삶이 정해진 길을 따라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걸어온 길이라면, 이제 남은 삶의 여정에서 걸어 나가야 할 길은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건강하게 살며(well-being), 아름답게 늙어가고(well-aging), 사람답게 죽음으로 다가가는 것(well-dying)이 행복한 노년이 아닐까요. 내게 남은 삶이 여생이 아니라 후반전 인생이라는 생각에 잠겨봅니다. 사람마다 삶의 주기가 다를 수 있지만 후반전 인생은 내리막길이 아니라 지금까지 접해보지 않았던 다른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새 삶이 시작되는 때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별거 같지 않은 하루가 지나가고, 새로 맞이하는 날이 다시 별거 같지 않게 다가오는 것처럼 느껴져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후회스러운 일들이 많았던 지난 시간과 죽음으로 다가가는 미래에 대한 생각보다 삶의 의미를 가득 담고 있는 <오늘> 그리고 <지금>이라는 시간이 소중한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세월이 흘러가면 <삶>과의 이별을 의미하는 <죽음>이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유수와 같이 쉼 없이 흘러가는 세월이 앞으로 다가오는 삶에서는 더 빠르게 흐르는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바쁜 일상에서 잠깐 일손을 멈추고, 삶의 끝이라고 여기고 있는 죽음을 새로운 여정의 출발점으로 인식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세요. 그리고 언제나 청춘처럼 살아가리라고 다짐하며, 중년기나 노년기의 삶의 계획을 세워보면 어떨까요. 

이 세상에 <나>라는 존재는 오직 <나> 한 사람뿐이며, 결국 내 삶에서의 선택은 내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인생은 멋진 여행입니다. 내 곁을 떠난 친구를 떠올려보며, 다음 생에서는 어떤 여행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방재욱

양정고. 서울대 생물교육과 졸.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유전학회, 한국약용작물학회 회장 역임.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총 대전지역연합회 부회장. 대표 저서 : 수필집 ‘나와 그 사람 이야기’, ‘생명너머 삶의 이야기’, ‘생명의 이해’ 등. bangjw@cnu.ac.kr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