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위한 동물들의 지옥문 [김홍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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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위한 동물들의 지옥문

2019.07.10

동물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기린. 그 큰 키는 아프리카 초원의 초식동물들에게는 맹수 공격 관측초소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린의 종족보존을 위한 본성은 온순한 겉모습과는 판이합니다.
선 채로 출산하는 기린은 2m 아래 내동댕이쳐진 새끼를 긴 발로 걷어찹니다. 영문도 모르는 새끼가 허우적거리고 있으면 다시 더 세게 발길질을 합니다. 새끼는 가늘고 긴 다리로 비틀거리며 엄마 곁으로 갑니다. 엄마는 한 번 더 새끼의 엉덩이를 호되게 걷어찹니다.

충격과 아픔으로 비실대던 새끼는 그제서야 걷고 달리기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발길질을 당할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에. 어미 기린은 비로소 새끼를 어루만지며 핥아 줍니다.
어미는 새끼 기린의 운명을 알고 있습니다. 새끼가 스스로 달리지 않으면 사자나 하이에나 같은 맹수의 밥이 된다는 것을. 그래서 갓 태어난 자식을 몇 번씩이나 모질게 걷어찹니다. 그것이 기린의 모정입니다. 적자생존을 위한 정글의 법칙입니다.

수직 절벽 바위틈에 둥지를 틀고 사는 흑기러기의 모정은 훨씬 혹독합니다. 솜털이 다 빠지지도 않은 새끼가 날개짓을 하면 부모 흑기러기는 아예 먹이를 물어다 주지도 않고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라고 아기를 부릅니다. 까마득히 높은 절벽 둥지의 아기 흑기러기는 몇 번 날개를 퍼덕거리다가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점프를 단행합니다. 수십 길의 절벽을 처음엔 균형을 잡고 떨어지던 새끼는 중간중간 바위에 머리와 몸을 부딪치며 거의 혼수상태로 바위 턱에 걸립니다.

# 잔인·살벌한 동물 세계의 종족보존 본능

기적 같은 모습은 잠시 뒤에 펼쳐집니다. 사람 눈으로 보면 거의 죽었을 거라고 생각되는 아기 기러기는 악몽을 떨쳐버리듯 온몸을 털며 일어나 맑은 눈을 반짝입니다. 밑에서 지켜보던 엄마 아빠도 곁으로 달려와 사랑 가득한 모습으로 대견한 자식의 생환을 지켜봅니다.
날지 못하면 산짐승이나 맹금류의 먹잇감이 되거나, 철따라 먹거리를 찾아 나서는 대장정(大長征)의 낙오자가 되지 않게 하려는 흑기러기의 자식 사랑은 잔인하다 못해 살벌하기까지 합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식으로. (영국 BBC 방송 내용들입니다)

영장류(靈長類)의 최고봉을 자처하는 사람은 어떤가요?
갓 태어난 영아를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베이비 박스(baby box)에 밀어 넣고 줄행랑치거나, 쓰레기통에 슬쩍 버립니다. 사련(邪戀)이나 게임에 빠져 철없는 자식을 학대하고 굶겨 숨지게 합니다. 식당이나 지하철에서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어린아이를 나이든 어른이 나무라면 젊은 엄마가 “왜 남의 자식 기죽여요”라며 고리눈을 뜨고 소리 지릅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런 짓들에 고개를 젓거나 체념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이스라엘에 살았던 어떤 사람의 경험담은 많은 메시지를 던져 주었습니다. SNS에 올린 그 사람의 글에는 아들 친구 생일에 가족이 함께 초대받아 갔는데, 다른 가족으로부터 공구세트를 선물로 받은 주인집 아이와 부모 모두가 좋아하는 모습이 엄청 인상적이었다고 합니다. 케익이나 장난감이 아니어서.
“손을 다치거나 위험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더니 부모는 “다쳐서 피를 흘리는 아픔보다는 스스로 뭔가를 만들었다는 기쁨이 더 클 것”이라며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이었습니다.

# 어릴 적 경험·충격 없으면 재능 못 깨쳐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은 말을 할 나이인 서너 살이 되도록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부모의 걱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겠지요. 그런데 어느 날 저녁밥을 먹다가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앗 뜨거! 국이 너무 뜨거워요.”
아이가 벙어리가 아니라는 사실에 감격한 부모가 왜 여태까지 말을 하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답은 간단했습니다. “지금까지는 모든 게 잘 되어서 말을 할 필요가 없었거든요”
어릴 때 ‘뜨거운 맛’을 보지 않았으면 후세의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과연 태어났을까요.

각자무치(角者無齒). 뿔이 있는 짐승은 이가 없다는 뜻입니다. 한 사람이 모든 복과 재능을 다 가질 수는 없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동물 세계의 평등원리입니다.
날카로운 뿔도 갖추고, 강한 이빨도 가지려는 인간의 욕망은 각자무치(各者無恥 모두가 부끄러움을 모름) 탓일까요?
뿔 아니면 이빨·날개·발톱만으로 각자도생하는 동물 세계에서도 배울 점이 많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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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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