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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불편도 쌓이면 크다

2019.04.24

이집트 쪽 사하라사막 입구에 온천이 있어 사막을 여행하고 온 사람들이 이 온천에서 몸에 쌓인 피로를 풀고 갈 수 있게 돼 있습니다. 오래전이지만 저도 사막 여행 후 일행과 함께 두 개 중 비어 있는 우측의 탈의실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온천욕을 하였는데 옷을 다시 입고 나오면서 수영복을 벗어놓고 그냥 나온 것을 깨닫고 바로 그 탈의실로 갔습니다. 그런데 서양인 여성 두어 명이 우리 일행이 나온 탈의실에 바로 들어갔기에 우리는 이들에게 수영복을 집어서 밖으로 던져 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친절이 아니라 힐난이었습니다. 남자들이 왜 여성 탈의실을 사용하였느냐고 따지듯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니 바깥에 아무런 표시도 없어 두 탈의실 중 비어 있는 곳을 쓴 것인데 뭐가 잘못이냐고 되물었습니다. 그들은 그제야 우리의 우측 탈의실 사용이 고의가 아니었음을 알고 표시가 없어도 화장실처럼 항상 우측이 여성용이라는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저는 화장실을 비롯한 공중 편의시설에서 우측이 여성용이란 말은 처음 들어보았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도 처음 듣는 말일 것입니다. 그다음부터 저는 화장실에 갈 때마다 좌우를 살펴보는 습관이 들었는데 유럽이나 미국 같은 곳에서는 여성용이 항상 우측에 있음을 확인하곤 합니다. 아, 남성용과 여성용 구분을 이렇게 하는 관습이랄까 불문율 같은 게 있긴 있는 모양이구나 하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그 이래로 우리나라에서도 극장, 콘서트홀, 공원, 일반 빌딩이나 업소 등에 가면 남녀 화장실이 각각 어느 쪽에 붙어 있나를 늘 살펴봅니다. 좌측 우측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제각각으로 위치하고 있음을 봅니다. 우리나라의 화장실은 갖가지 근사한 표식으로 남녀 구분이 잘 돼 있어 혼동의 위험은 없지만 그래도 일정한 규율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것은 표준화의 필요성과 맥을 같이 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수도꼭지를 보면 보통은 손잡이를 위로 올려서 물을 틀게 돼 있는데 어떤 곳에는 손잡이를 아래로 눌러야 물이 나옵니다. 봐서 알 수 없으므로 습관대로 일단 위로 올려보고 안 되면 아래로 누릅니다. 이런 동작을 할 때마다 조금씩 낭비되는 물의 양도 다 합하면 적지 않겠다, 이것도 자원 낭비다, 하는 생각을 하면서 왜 이런 초보적인 표준화도 제대로 안 돼 있을까 하는 푸념을 합니다. 어떤 경우는 더운물, 찬물도 왼쪽, 오른쪽으로 일정하게 돼 있지 않아 불편을 겪기도 합니다. 장소에 따라 변기의 물 내림 버튼도 제각각이어서 때로 약간의 혼동이 있을 수 있지만 이건 디자인상의 문제라 이래라저래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수도꼭지의 손잡이를 위로 올리거나 아래로 내리거나 하는 것과 더운물 찬물의 좌우 위치 같은 것은 하나로 통일해서 표준화하는 것이 일상의 편리를 높이고 낭비를 막는 길일 것입니다.

이 외에도 일상의 제품이나 부품에 메이커별로 통일이 안 돼서 불편을 겪는 것이 숱하게 많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때마다 푸념을 하지만 그러고는 잊어버리고 맙니다. 자그마한 일상에서의 필요한 규칙이 없이 산다는 것이 곧바로 사회생활에서 규율을 중시하지 않는 태도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듭니다. 산업 생산과 표준화를 담당하는 정부 부서에서 이런 면을 잘 살펴서 소소한 것이라도 규칙을 만들고 통일성을 부여하도록 하는 알뜰한 노력이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제품에 통일성의 규제를 가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자유로운 창의와 혁신은 보장하되 표준화가 일상의 편익을 높일 수 있는 제품들에는 규격이나 규칙을 정하여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취지입니다.

이런 사소한 표준화의 결여로 인해 불편을 겪는 것도 그렇지만 지하철의 불완전한 안내판  때문에 생기는 불편도 시급히 시정을 요하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우리나라의 지하철 수준은 여타 선진국을 능가합니다. 그런데 안내판이 불충분하여 혼동이나  불편이 초래된다면 아무리 시설이나 서비스가 좋아도 이용자의 입장에서는 불만족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 플랫폼에서 역 표시가 불충분합니다. 어느 역에 와 있는지 객차의 어느 곳에서나 창밖을 내다보면 금방 알아볼 수 있도록 역사(驛舍)의 벽이나 기둥 곳곳에 역 이름이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꼭 필요한 곳에 역 이름이 안 보이는 데가 제법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승객들이 이리저리 살피다가 결국 역 이름을 못 찾고 내려야 할 역을 놓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지하철 객실에는 안내방송이 잘 나오고 디지털 표시가 잘 돼 있지만 만원 상황에서는 역 이름이 잘 들리거나 잘 보이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이런 장치를 첨단으로 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승객이 역 이름을 육안으로도 확인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몇몇 지하철 선진국에서 시설과 서비스가  우리보다 못한 경우에도 역사 안에서 역 이름만큼은 나무랄 수 없게끔 철저히 표시돼 있음을 봅니다. 우리 지하철 당국도 역사 곳곳을 하나하나 직접 답사하여 역 이름 표시에 부족함이 없도록 더 보완해 주었으면 합니다.

이밖에도 지하철에서 '나가는 곳' 표시가 다소 혼란스러운 역도 더러 있음을 경험하였기에 이 문제도 짚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목표지점을 안내하는 표지가 계속 나오다가 어느 지점에서 끊어지면 승객은 당황하게 됩니다. 늘 다니는 길이라면 대강의 표지만 가지고도 실수할 일은 없지만 어쩌다 한 번씩 타고 내리는 지하철역이라면 더 친절하게 안내판을 붙여놓아야 할 것입니다. 한 예로, 지하철 4호선 서울역에서 내려 열차 서울역으로 가려는데 서울역 표지가 한 번 나오고 나서 갈림길 같은 데서 갑자기 ‘롯테마트’ 표지가 정면의 시야를 차지하여 한순간 당황하게 됩니다. 서울역이라는 표지가 그 자리에 있고 그 아래나 옆에 롯데마트 안내가 있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습니다. 교통시설 운영 당국이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도 시민의 불편이 없도록 살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사소한 불편이 쌓이면 스트레스가 되고 스트레스가 쌓이면 사회적 불만의 도가 높아집니다. 불만이 쌓이면 사회 전체적으로 신뢰의 도가 떨어져 나라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되므로 시민이 겪는 사소한 불편부터 바로잡아 나가는 것이 좋은 사회로 가는 지름길이라 생각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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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줄곧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파나마, 이집트대사를 역임했다. 은퇴 후 제주에 일자리를 얻는 바람에 절로 귀촌을 하게 되었고, 현재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으로 있으면서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꽃나무들을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즐거움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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