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로 배우는 애너벨 리 [김창식]


영어로 배우는 애너벨 리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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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 배우는 애너벨 리

2018.10.04

책장에 ‘꽂힌’ 오래 방치된 책들을 정리하다보면 의외로 ‘필’이 ‘꽂히는’ 책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게 해서 <어린 왕자> <갈매기의 꿈> <오 헨리 단편선>을 다시 읽었다. 최근 읽은 책은 에드거 앨런 포(Edgar Allan Poe, 1809~1849) 전집이다. 포는 지금 읽어도 그 괴기함과 독창성에 놀람을 금할 수 없다. <검은 고양이> <황금 풍뎅이> <어셔가의 몰락> <모르그가의 살인사건> 등. 소설도 소설이려니와 시 <애너벨 리(Annabel Lee)>는 놀라움을 넘어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이것이 연애시 맞나?

<애너벨 리>를 처음 접한 것은 유명 영어 참고서인 <영어정해(英語精解)>에서였다. 지금도 ‘It was many and many a year ago/In a kingdom by the sea….(옛날 옛적 바닷가 왕국에….)’로 시작하는 그 시의 일부를 외울 정도다. 시는 계속된다. ‘But we loved with a love that was more than love….(우리는 서로 사랑 이상의 사랑을 하였고….)  사각형으로 테두리를 한 예문에는 전체 6련인 비교적 긴 시의 전문이 모두 담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간추리면 아래와 같다.

‘옛날 옛적 한 바닷가 왕국에 애너벨 리라는 소녀가 살았다네. 그녀도 어렸고 나도 어렸지만 우리는 서로 사랑 그 이상으로 사랑했지. 날개달린 천사가 시샘할 정도로 말야. 그래서 구름으로부터 찬바람이 불어와 나의 귀여운 소녀 애너벨 리를 얼어 죽게 했고 고귀한 친족들이 그녀를 바닷가 왕국의 바위 무덤에 가두었다네. 나는 이제 나의 사랑, 귀여운 나의 신부 곁에 함께 누워 밤새도록 바다가 울부짖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영어실력기초> <삼위일체> <기초오력일체>의 뒤를 이은 <영어정해>는 수험생의 필독서였다. 정선한 예문과 맛깔스러운 설명이 조화를 이루어 인기가 많았다. <애너벨 리>의 위 예문에서는 첫머리에 나오는 ‘many a year(years가 아님!)'의 단수형 복수 용법과 관계대명사 ’that(지시어가 아님!)‘의 용법을 다루었던 것 같다. 여기 까지는 그런대로 진도가 잘 나갔다.

그런데 하이라이트 대목인 ‘That the wind came out of the cloud by night/Chilling and killing my beautiful Annabel Lee…. ’에 이르러 분사구문인가 동명사구(chilling 과 killing) 용법을 다루려는 듯한데 그 내용이 심히 괴이쩍고 불편했다. 심술궂은 천사(winged seraphs)와 높은 계층의 친족(high level kindsman, 천상의 위계인지 친척인지 확실치 않음)이 ‘야음을 타 구름 속 바람을 불러내어 가엾은 소녀를 얼려 죽였다는’ 것이 아닌가.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소녀를 ‘얼려 죽인’ 이 무슨 ‘얼어 죽을’ 놈들이 천사고 높은 계층이람, 개뿔이나?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다음 연을 읽어 내려갔다. ‘And so, all the night-tide, l lie down by the sea/Of my darling-my darling-my life and my bride/In her sepulchre there by the sea/In her tomb by the sounding sea.’(…나는 이제 돌무덤 속 나의 사랑, 귀여운 나의 신부 곁에 함께 누워 밤새도록 바다가 울부짖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마지막 대목에서는 ‘곁’을 뜻하는 부사 ‘by(at나 in이 아님!)’의 용례를 설명했던 듯싶다. 나의 관심은 그딴 것이 아니었다. 아니 죽은 사람 곁에 누워 밤을 지새운다고? 어린 소년의 참담한 심정이 한편 이해가 되면서도 아연실색했다. 아무리 사랑해도 그렇지, 무섭지도 않나?

어쨌거나 몇 가지 영어 문법은 확실히 익혔지만, 괴기함과 꺼림칙함을 동반한 참혹함과 처절함은 좀체 가셔지지 않았다. 알고 보니 포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궁핍, 병고, 주벽, 부모와의 불화, 친인의 상실, 정신착란, 주위의 이단 취급, 노상 횡사 등 포가 격은 불운에 대해 알수록 점점 그에게 빨려들어 갔고 연민을 느꼈다. 포를 통해서 다른 친구들도 사귀었다. 포를 존경하여 상찬한 프랑스의 상징파 시인 보들레르, 발레리와 말라르메.

애너벨 리는 다른 모습으로 되살아난다. 짐 리브스와 마리안 페이스풀의 토크 송 <애너벨리>! C&M의 제왕인 짐 리브스의 슬픔이 정제된 내레이션과 원조 아이돌 페이스풀의 허스키하면서도 격정적인 독백은 한동안 나를 놓아주지 않았고 그것은 지금도 그렇다. 다른 데에도 생각이 미쳤다. 세 사람의 생애에 대해 천착해 본 것이다. 포와 짐 리브스(비행기 사고) 그리고 마리안 페이스풀(마약 전과). 불운으로 점철된 세 사람의 운명과 삶의 궤적이 겹친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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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한국외국어대학 독어과 졸업.수필가, 문화평론가. 
<한국산문> <시에> <시에티카> <문학청춘> 심사위원. 
흑구문학상, 조경희 수필문학상, 한국수필작가회 문학상 수상. 
수필집 <안경점의 그레트헨> <문영음文映音을 사랑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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