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조 수주’ K방산, 이번엔 전차엔진

 

튀르키예에 엔진 수출한 

HD현대인프라코어 공장 첫 공개

 

고출력 유지하면서, 

전술 기동성 고속 조건까지 3박자 모두 갖춰

 

   지난 25일 오전 HD현대인프라코어 인천공장. 건설장비용 엔진을 주로 생산하는 이 공장 한편엔 빨간 글씨로 ‘기술보호 제한구역’이라고 쓰인 문이 있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커다란 쇳덩어리가 한눈에 들어왔다. 군(軍) 행사를 제외하고는 이날 외부에 처음 공개한 전차 엔진 ‘DV27K 디젤엔진’이다. HD현대인프라코어가 10년을 공들여 우여곡절 끝에 국산화에 성공한 전차 엔진이다. 첫인상은 의외로 평범했다. 길이 1.86m, 너비 1.06m, 높이 1.13m에 불과한 쇳덩어리가 60t이나 되는 전차를 최고 시속 70㎞로 달리게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김효승 방산엔진팀 팀장은 “전차 엔진은 자동차나 중장비 엔진과 완전 다른 영역”이라며 “크기를 최소화해야 하고, 야산이나 험지에서도 고출력을 유지하면서, 전술 기동성을 위한 고속 조건까지 3박자를 모두 갖춰야 하는 하이엔드(최고급) 특수 엔진”이라고 했다. 한때 개발에 난항을 겪으며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던 HD현대인프라코어의 전차 엔진은 최근 해외 첫 단독 수출에 성공하면서 K2전차, K9 자주포, FA-50 전투기를 주축으로 글로벌 100조원 수주를 달성한 ‘K방산’의 새로운 수출 품목에 이름을 올렸다.

 

‘100조 수주’ K방산, 이번엔 전차엔진

 

 

“돈 낭비, 비현실적” 비판에도 10여 년 개발

이날 시운전실에선 전차 엔진을 14시간 동안 쉬지 않고 가동하는 예열 운전이 한창이었다. 무게 2.5t짜리 엔진이 심장 뛰듯 규칙적으로 가동하면서 재빠르게 출력을 높였다. 회사 관계자는 “약 14시간 동안 45단계로 나눠 예열한 다음 시험 운전 테스트를 한다”며 “올해 시운전에서 단 한 건의 불량이 발생하지 않았다”고 했다. 시운전실 옆 생산라인에서는 폴란드로 수출하는 K2 흑표 전차(현대로템)에 들어갈 엔진 생산이 한창이었다. 전차 엔진은 미세한 이물질에도 불량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별도 제습 창고에서 900여 종 부품을 개별 낱개 포장해 보관한 뒤 1차 세척을 거치고 생산라인에 투입된다. 엔진 1대 생산에 12일 정도 걸리는데 연간 120여 대 생산 가능하다고 한다.

 

HD현대인프라코어는 2005년 K2흑표 전차용 엔진 국산화에 도전했다. 40년간 산업용 디젤엔진 제작 경험을 바탕으로 ‘5년 내 개발’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군사 기술 특성상 기술 제휴·이전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실패와 시행착오, 개선 작업이 수도 없이 반복됐다. 결국 사업 기한이 4차례 연장됐고 회사 내외부에선 “세금 낭비, 무모한 도전, 현실성 없는 사업”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초기부터 엔진 개발에 참여했던 도현진 책임연구원은 “산업용 엔진과 군용 엔진은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며 “독일은 100년이라는 전차 제작 경험이 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한 셈이었다”고 말했다.

 

연구원들은 F1(포뮬러 원) 레이싱카 엔진까지 뒤져보며 연구를 거듭했다고 한다. 결국 2014년 전차 엔진 개발에 성공했고, 2019년 처음으로 K2 전차에 탑재됐다. 김효승 팀장은 “9600㎞ 주행 테스트 축하행사를 위해 축하 떡을 주문했다가 원인 모를 고장에 떡 주문을 10여 차례 미루기도 했다”며 “결국 1500마력 전차 엔진을 독일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 기술이 만들어 냈다”고 했다.

 

‘100조 수주’ K방산, 이번엔 전차엔진

이어 지난 2월에는 튀르키예 방산업체 베메제(BMC)에 3131억원 규모로 전차 엔진 단독 수출 계약까지 체결했다. 독일이 독점하던 글로벌 전차 엔진 시장을 한국 기술이 새롭게 뚫은 것이다. 베메제는 지난 23일(현지 시각) HD현대인프라코어 전차 엔진이 탑재된 ‘뉴알타이’ 전차 2대를 튀르키예 육군에 처음 인도했다. 인도식에는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직접 참석했다. 튀르키예는 1~2년간 추가 테스트를 거친 뒤 양산할 계획이다.

 

HD현대인프라코어는 폴란드·튀르키예 수출 성과를 바탕으로 전차엔진 사업을 다각화한다는 계획이다. 뉴알타이 전차 인도식에 참석했던 엔진사업본부 김중수 전무는 “튀르키예가 만드는 전차가 중동 수출로 이어지면 국산 엔진 시장도 넓어진다”며 “전차 엔진을 조금만 변형하면 자주포 엔진, 함정용 엔진에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수십년간 이어진 독일 엔진 종속에서 탈피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정구 기자 조선일보

‘100조 수주’ K방산, 이번엔 전차엔진
다음금융

케이콘텐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