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날린 GP 폭파쇼


역사를 날린 GP 폭파쇼  

한은화의 생활건축


  지난 12일 건축가 황두진은 한 장의 문서를 다급히 써야 했다. 수신자는 국방부. 제목은 ‘분단시대 군사시설 폐쇄에 따른 선제적 실측 조사 및 연구에 대한 제안’이었다. 군에서 비무장지대(DMZ) 내 GP(감시초소)를 굴착기로 한창 철거하고 있을 때였다. 안전과 환경 문제를 고려해 폭파 대신 택한 공법이었다. 


한국측 GP 폭파 모습/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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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축가협회 남북교류위원회 위원장인 황두진은 말했다. “GP는 분단시대를 상징하는 역사적 구조물로 다양한 분야의 민간 전문가로 조사위원회를 꾸려 실측하고 연구부터 해야 한다. 안보를 위한 군사시설이었지만 그 용도가 다한 순간부터 역사문화재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염두에 두고 진행해야 한다.” 

  

15일 강원도 철원 지역 중부전선의 GP에서 시커먼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굴착기 철거 방식이 답답했을까. 국방부는 폭파를 택했다. 남북 각각 11개씩 총 22개의 GP를 시범철수하는데 두 곳의 건물만 보존하고 나머지는 모두 철거한다는 게 목표였다. 폭파 덕에 철거 속도는 빨라졌다. 


남북이 반세기 넘게 서로 총부리를 겨눈 자리가 깨끗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날 수화기 너머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승효상 위원장의 목소리는 참담했다. “어제 각계 인사에게 막아야 한다고 그렇게 연락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짓는 일 못지않게 허무는 일도 중요하다. 전문가가 나서야 하는 일이다. GP는 문화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현장 박물관이다. 충분한 논의 없이 이를 없애는 것은 반문화적인 행위다. 관련해서 대통령 직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공식 안건으로 상정해 건의하겠다.” 



  

독일 베를린은 도시 전체가 기억의 박물관이다. 베를린 장벽의 흔적을 끈질기게 보존하며 기억하려 애쓴 덕이다. 그 덕에 베를린은 ‘명상과 대화와 교환의 메트로폴리스’가 됐다. 그런데 남북은 거꾸로 가고 있다. 기억을 지우려 애쓴다. 

  

DMZ에는 60개의 남측 GP와 160개의 북측 GP가 있다. 남북 합해 20곳이 철거됐으니 200개가 남았다. 정부와 군 당국은 차후 DMZ의 평화적 활용 목적에 따라 일부 GP를 보존하겠다고 했으나, GP를 없앤다는 게 큰 틀이다. 하지만 전시(戰時)도 아닌 지금, 역사의 생생한 기록물인 GP를 서둘러 폭파하는 것은 쇼일 뿐이다. 쇼는 화끈했지만, 남북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날렸다.  

한은화 중앙SUNDAY 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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