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리사 시험이 특허청 공무원 용인가? [고영회]


변리사 시험이 특허청 공무원 용인가? [고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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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리사 시험이 특허청 공무원 용인가?

2018.11.20

지난 15일 치러진 수능에서 국어 영역이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어렵게 나왔습니다. 이렇게 ‘불’국어여서 1등급 하한선이 80점 중후반대로 내려갈 것이라 합니다. 작년에 92점이 하한점수였으니 작년에 비해 무척 어렵게 출제됐습니다. 수능 성적은 상대평가이므로 문제가 어렵게 나오든 쉽게 나오든 마찬가지 아니냐고 주장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다른 과목과의 형평을 생각하면, 어느 과목을 유독 어렵게 내면 곤란합니다. 이번같이 국어 영역만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면 다가오는 입시에서는 국어 점수가 합격을 좌우합니다. 문제를 어렵게 낼 수 있지만 난이도는 과목별로 엇비슷한 수준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특정 과목(이번에는 국어)을 잘하는 일부 학생이 특혜를 누리게 됩니다. 불공정합니다. 국가가 주관하는 시험이 평형성을 유지하지 못하여 운때에 좌우된다면 중대한 문제입니다.

국가기관인 특허청이 주관하는 변리사 시험에서 특정 수험생에 유리하게 제도를 자꾸 바꾸는 일이 생기면 어떻게 봐야 할까요? 특허청이 내년도 변리사 2차 시험에 실무형 문제를 출제(이른바 실무전형)하기로 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수험생부터 반발했습니다. 10월 말부터 현직 변리사와 일반 수험생들은 특허청의 실무전형을 도입하는 것은 부당하다면서 이를 저지하려고 청와대 앞과 특허청 서울사무소 앞에서 집단으로 항의 집회를 열었습니다. 그 뒤에도 1인 시위를 이어갔습니다. 특허청은 이런 반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실무전형을 강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대한변리사회는 즉각 이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내고 행정심판과 가처분 신청 등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선언하면서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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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리사와 수험생의 청와대 앞 집회

변리사가 되는 길은 두 가지, 즉 ①변리사 시험을 통과하고 실무 연수를 받거나 ②변호사 자격자로서 6개월 실무 연수를 받으면 자격을 얻습니다. 변호사에게는 자동으로 자격을 주다가 2016년부터 실무 연수 조건이 붙었습니다. 특허청 근무 경력자에게는 예전에는 자동으로 자격을 주었지만, 2000년부터는 1차 시험은 면제하고 2차 시험 과목의 반을 면제해 주었습니다. 특허청 경력자에게 대단한 특혜를 준 것이죠.

그런데 저렇게 특혜를 받고도 쉽게 합격하지 못할 정도로 시험은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험을 시행하는 특허청이 온갖 꼼수를 내기 시작합니다. 원래 2차 시험과목은 6개였는데, 갑자기 4개로 줄입니다. 변리사에게 필수 업무인 디자인법을 선택과목으로 돌리면서! 6과목일 때는 3과목을 치러야 했는데, 4과목으로 만들면서 특허청 사람은 2과목만 봐도 되게 시험제도를 바꾸었습니다. 그것도 자기가 주로 일해온 분야 1과목(필수)과 선택 1과목만 시험봐도 되게 만들었습니다.

이제는 겨우 2과목만 시험 보는 것에서 더 나아가 시험에 ‘실무 내용’을 포함하겠다고 합니다. 실무형 문제가 들어가면 실무를 다룰 기회가 없는 일반 수험생은 불리합니다. 형평이 어긋납니다. 지금 제도에서 보더라도 시험 합격자에게 실무 연수 6개월을 받게 한 뒤 자격을 주도록 되어 있으니, 실무 능력을 키우는 것은 시험 합격 후의 일입니다. 그런데 순서를 뒤바꾸어 시험과목에 실무를 포함시키겠다고 합니다.

변리사는 특허 등 지식재산권을 담당하는 전문가입니다. 전문가 자격은 그 분야 업무를 처리할 능력이 확인된 사람에게 주어야 합니다. 자격은 전문가로서 지식과 자질을 갖추었는지를 확인하고 주어야 합니다. 자질은 주로 시험으로써 확인합니다. 경력도 자질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경력으로 시험과목을 면제할 때에는, 쌓은 경력에 해당하는 과목을 면제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면제해야 할 과목을 골라 시험을 봅니다. 특허심사 경력이 있으면 특허법을 면제해야 하는데, 오히려 그들은 특허법을 골라 봅니다. 변리사 업무에 필요한 상표나 민사소송법 분야의 지식을 갖췄는지 확인하지 못한 채 자격을 줍니다. 이것을 보완해야 할 형편인데, 오히려 특허 과목에 실무 전형을 포함시키려 합니다. 왜 그렇게 하려는지 속살이 그대로 보입니다.

특허청 경력자가 시험을 치는데, 특허청이 변리사 시험을 시행하는 것도 논리 모순입니다. 그럴수록 특허청은 공정성을 의심 받지 않도록 시험을 시행함에 조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시험 시행권이 있다는 것으로 드러내 놓고 ‘실무 전형’을 포함시키겠다 합니다. 낯 뜨겁지 않을까요? 변리사 시험은, 특허청 직원의 실무 능력을 검증하는 시험이 아닙니다.

자기 이익에 관련되기만 하면 대놓고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는 일을 서슴없이 저지르려는 사람을 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잠시 작은 이익을 얻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정의와 신뢰라는 중요한 가치를 무너뜨립니다. 정의와 신뢰가 하나씩 무너진 사회, 끔찍합니다. 무너지지 않게 막아야 합니다. 제발 국가기관이 우리 사회의 정의를 무너뜨리려고 나서는 것을 보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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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고영회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1981), 변리사, 기술사(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 (전)대한기술사회 회장, (전)대한변리사회 회장, (전)과실연 공동대표,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 mymail@patinf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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