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노동자 이민 불허하며 '이민자 대국' 된 일본


외국인 노동자 이민 불허하며 '이민자 대국' 된 일본

 

'일손 부족' 문제 심각하게 대두


   지난 7일 찾은 일본 도쿄 신주쿠구의 신오쿠보(新大久保) 지하철역 개찰구 바로 왼편에 자리 잡은 골목길에는 중동, 동남아시아 사람들이 넘쳐났다. 신오쿠보 중심가인 이곳 상점 간판엔 영어로 '아라비안 푸드' '할랄 푸드(이슬람 음식)' '인터내셔널 푸드&스파이스(향신료)' 등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도쿄 신주쿠구의 신오쿠보(新大久保) 할랄레스토랑/tripadviso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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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 터줏대감이라는 식료품 가게 '바라히'에는 냉동 양고기·염소고기는 물론 낯선 향신료, 소스, 통조림 제품이 가득했다. 신오쿠보에서 최근 몇 년 사이 커진 이른바 '이슬람 거리'다. 신오쿠보는 원래 '코리아타운'이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도쿄 지상파 방송 도쿄MX는 "여러 국가 출신 외국인이 섞여 사는 신오쿠보가 곧 도쿄의 미래"라고 했다.


최근 급증한 외국인들로 인해 도쿄의 풍경이 바뀌고 있다. 몇 년 사이 도쿄 곳곳엔 도쿄도민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외국인 거리'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본래 대학가였던 신주쿠구 다카다노바바 지역은 도쿄의 작은 '미얀마 마을'로 떠오르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현재 도쿄에 사는 미얀마인 9700여 명 중 4300여 명이 이곳에 정착했다. 에도가와구엔 인도인 4000여 명이 모여 살며, 니시가사이역을 중심으로 '인도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도쿄 거리에 이런 변화가 일어난 건 외국인 노동자 숫자가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일본에서 일하는 외국인은 지난해 기준 약 128만명으로 집계됐다. 2008년 48만6000명에 비하면 10년 만에 2.5배가량으로 늘어났다. 




일본은 저출산·고령화 현상으로 지난 20년 동안 생산가능연령인구(15~64세)가 1000만명이나 줄어들면서 '일손 부족'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됐다. 이 빈틈을 매운 게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실제 도쿄에선 '외국인 거리'를 따로 찾지 않아도 편의점·식당·이자카야(선술집) 등에서 젊은 외국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세븐일레븐 등 일본 3대 편의점 아르바이트 직원 7%가 외국인 노동자다.


도쿄의 이 같은 변화는 가속화할 전망이다. 일본 정부가 더 많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문을 여는 '출입국관리·난민인정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법안에 따르면 단순노동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5년간 체류가 허용되지만, 숙련된 외국인 노동자는 체류 기간을 연장할 수 있고 가족 동반도 허용한다. 숙련 외국인 노동자는 10년 이상을 거주하면 영주권 신청 자격도 준다. 이 같은 법 개정이 이뤄지면 외국인 노동자는 더 늘어나게 된다.


문제는 이들을 '이민자'로는 인정할 수 없다는 일본 정부의 태도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지난 1일 중의원 예산위에서 "(출입국관리·난민인정법 개정은) 이민 정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민자 적응 정책 방향을) 다문화 공존과 일본인 동화 중 어느 쪽을 주축으로 하겠느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이는 당장 급한 일손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외국인 노동자의 도움을 받는 것일 뿐, 이민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이들의 적응을 돕는 차원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 같은 모순된 태도는 아베 정권의 핵심 지지층이 여전히 이민자, 특히 단순노동직에 종사하는 이민자가 늘어나는 데 대해 반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일본이 단순근로직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 다수를 이민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과 별개로, 이미 일본은 사실상의 '이민 대국'이란 지적이 나온다. 관광비자 아닌 비자로 1년 이상 체류하는 외국인을 '이민자'로 규정하는 국제사회 기준이 그 근거다.


실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따르면 2016년 일본에 새롭게 유입된 외국인 이주자 수는 42만명이다. 독일, 미국, 영국에 이어 넷째로 많은 숫자다. 일본은 '이민 없는 이민 대국'인 셈이다. 아사히신문은 "정부가 '이민 정책은 아니다'라는 태도를 반복하면서 일본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방치하고 있다"며 "(외국인 노동자를) 대등한 시민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도쿄=최은경 특파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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