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을 살리자 [김영환]


‘한강의 기적’을 살리자 [김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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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강의 기적’을 살리자

2018.11.06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습니다. 동독 정부는 개혁을 요구하는 잇단 시위에 서독 방문을 쉽게 허용하는 법령을 만들어 기자들에게 공표했습니다. 법령을 숙지하지 못한 선전 담당 귄터 샤보브스키 정치국원은 “언제부터냐”는 외신 기자들의 질문에 “즉각 시행”이라고 대답했죠. 외신은 장벽이 무너졌다고 타전했습니다. 이것이 텔레비전으로 중계되자 귀를 의심한 사람들은 눈으로 확인하려고 국경 검문소로 쇄도했습니다. 법령은 다음 날부터 시행되는 것으로 비자도 필요했지만 동베를린의 보른홀머 검문소가 새로운 명령도 받지 않고 서베를린으로 가려는 사람들을 통과시키자 여기저기서 이를 뒤따라 역사적인 자유 통행의 봇물이 터졌습니다.  

다음 날 서베를린 쪽 장벽 부근에서 취재하던 필자는 장벽에 올라선 동독 주민들이 서독 국기를 흔들며 서쪽을 향해 “올라오라”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수십만 명이 운집했으나 몇 백 미터 떨어진 장벽 위에서 외치는 동베를린 주민들의 목소리가 간간이 터지는 폭죽과 함께 밤의 찬 공기에 실려 선명하게 들려왔습니다. 그 해 여름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를 거쳐 서독으로 탈출했던 동독인들의 열망대로 통일이 시시각각 다가왔습니다. 

1990년 3월에 실시한 동독 최초, 최후의 자유 총선거 후 동독 의회는 서독 편입을 의결했습니다. 헬무트 콜 총리는 서독이 통일 비용을 댈 충분한 경제적 능력이 있다고 자부했습니다. 서독은 고도성장 중이었고 한 해에 수백억 마르크의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일본과 함께 세계 무역 흑자의 양강(兩强)이었습니다. 

우리는 독일 통일에 놀라며 막연히 남북 통일도 곧 올 것으로 낙관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에는 동독의 라이프치히처럼 월요 집회의 구심점이 될 교회도, 동베를린 알렉산더 플라츠에 모일 수십만 명의 시민도, 개방된 이웃 나라도 없었습니다. 세습 독재에 질린 3만여 명의 북한 주민들은 내부의 변화를 단념하고 탈북해 대한민국을 선택했습니다.

독일 통일 이후 동독의 삶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투입한 비용의 추계는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베를린자유대의 클라우스 슈뢰더 교수는 통일 후 최초 20년간 약 2조 유로(약 3,000조 원)가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경제력이 서독의 20%에 불과했던, 그러나 동유럽에서 가장 잘 살았다는 동독의 실패한 공산주의의 비용을 ‘라인강의 기적’을 일으킨 통일 독일이 매년 GDP의 5퍼센트를 썼는데도 아직 격차가 존재합니다. 1인당 GDP가 남한의 5퍼센트 정도로 동독보다 모든 게 열악한 북한에게, 남한은 통일 시 남한 GDP의 4분의 1이라는 천문학적 지원을 해야 할 것이라고 오래전 독일의 할레경제연구소는 전망했습니다. 외국의 도움이 절실함을 보여주는 것이죠. 

요즘 민감한 영향을 주는 남북한 군사기본합의서에 대해 북한은 국가가 아니므로 국회 비준이 필요 없어 ‘셀프 비준했다’는 청와대 주장과 국가안보 및 경제 부담에 관련한 사항은 헌법 60조로 국회 비준을 받아야 한다는 야당의 반론이 맞섰습니다. 경유를 싣고 서울에서 신의주까지 남북이 경의선 철도를 답사하려던 계획은 유엔군사령부에 의해 좌절됐습니다. 서독이 공산주의 몰락으로 찾아온 통일의 호기를 놓치지 않고 관계 국가에게 보여준 배려와 많이 다릅니다. 통독은 소련에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선도한 고르바초프가 등장한 게 큰 동인(動因)이었지만 서독은 미국과 긴밀히 협조하며 통일 후 나토에 남을 거라고 확약했습니다. 소련군의 철군 비용 150억 마르크도 댔습니다. 독일은 140년 간 세 번의 큰 전쟁을 치른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과 셔틀 외교를 했고 이는 ‘2+4’로부터 통일을 승인받는 데 기여했습니다. 지금 미군 3만 3,000명이 독일에 주둔합니다. 

문재인 정권은 ‘선 대북제재 완화, 후 북핵 폐기’를 주장합니다. 6·25 참전국인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는 물론, 아셈 회원국들도 북핵 폐기를 위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지지했습니다. 16개국 수십만의 젊은이들이 유엔의 깃발 아래 이름도 처음 듣는 신생 코리아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고 참전했고 전사했습니다. 최고의 동맹 미국과 불편해지고 일본과는 과거사를 파헤치며 소원합니다. 대북정책 과속으로 미국이 한미공동 실무그룹까지 만들었습니다. 핵무기를 가진 북한을 경제 강국으로까지 만들자는 건가 걱정했을 겁니다. 무역 침체와 미국 금리인상에 따른 자본 유출로 내년 초 위기설도 나오는데 미일과의 통화교환협정은 오리무중이죠. 최근 일본은 중국과 기존 10배 규모인 3조 4,000억 엔의 통화협정도 합의했습니다. 

문 정권은 ‘평화가 경제’라는 청사진을 품고 있지만 평화는 북핵 폐기가 선결과제죠. 지원에 앞서 6·25 남침 등 과거사 반성과 북핵 폐기, 개혁과 개방, 인권 개선을 요구하는 게 순리죠.  ‘선 지원’은 거꾸로 ‘경제가 평화’라는 말로도 들립니다. 통일에도 경제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엄존하는 대북 제재와 추락하는 우리 경제 속의 대북 접근은 뭔가에 쫓기는 듯합니다. 북한 철도망보다 수도권 GTX 신설, 지옥철인 서울 지하철 9호선 증차 따위가 더 시급하죠. 우선 남한 경제가 잘 돌아가야 합니다. 미국은 분기 연속 4퍼센트의 경제성장을 넘보는데 우리는 금년 성장률이 2%대에 있습니다. 자동차산업은 위기고 반도체 호황은 언제 추격받을지 모릅니다. 코스피 주가지수는 외국인 자금 이탈로 문 정권 출범 후 10퍼센트가량 하락했고 실업자는 1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아마추어적인 소득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인상으로 자영업자의 개업 대 폐업 비율이 90퍼센트라고 합니다. ‘임대함’ 게시물이 종로의 큰 건물에도 많이 보입니다. 주 52시간 근무제로 저녁시간 식당에 손님이 드물다고 합니다. 회식이 사라지면 노래방도 2차 집도 안 되죠. 잘 되는 곳은 다이소 정도입니다. 국산은 어디 있나 찾기 힘들 정도로 주로 중국산이 점령한 이곳의 싼 생필품을 사려고 곳곳에서 사람들이 줄을 섭니다. 청와대도 절약하려고 1000원 숍을 이용한다고 선전했는데 업무추진비로 백화점과 고급 초밥 집, 와인 바에는 누가 갔을까요?   

원자력발전소 중단으로 핵심 기술자들이 외국으로 떠납니다.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은 각각 올해 1조 원의 손실을 예상합니다. 특히 한전은 탈원전으로 2030년까지 전력구입비가 146조 원 늘어난다고 국회 입법조사처가 추정합니다. 누가 부담합니까? KTX도 태양광으로 굴릴까요? 구직난으로 일본에 취업한 한국 젊은이가 2만 명이 넘는다고 일본 언론이 보도합니다. 일자리 상황판이 부끄럽죠. 고용률을 끌어올리려고 강의실 불 끄기, 임대주택 찾아주기 등 희한한 알바를 만들어냅니다. 일본은 전문 일손이 모자라 외국인을 받아들이도록 법을 고친다고 난리니 부러울 뿐입니다. 바다를 땅으로 바꾼 거대한 새만금에 10조 원 들여 중국산 좋은 일 시키는 태양광과 풍력발전소를 채운다고 합니다. 하루 서너 시간의 태양광 발전은 원시적이죠. 전기로 다시 고생할 날이 올지 모릅니다. 

경제를 성장시켜 본 경험이 부족한 사람들의 배급적 사고방식으로 평화 기반도, 통일 기반도 달성할 수 없습니다. 휴전선 철조망을 무너뜨리기 전에 우리 경제가 먼저 무너지면 안 됩니다. 지금 일각에서는 “한강의 기적이 한강의 눈물로 바뀐다”고 말합니다. 그게 기우라는 것을, 더도 말고 세계 평균 경제성장률 달성으로 증명하시기 바랍니다. 능력이 되면 ‘한강의 기적’을 살리시고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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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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