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엔 반복되지 말아야할 과학기술분야 10대 이슈


내년엔 반복되지 말아야할 과학기술분야 10대 이슈
[2018 국감] 

    올해 과학기술 분야 국정감사에서는 '연구세습’과 국가연구개발사업비로 부실 학회에 참석하는 ‘가짜학회’, 라돈침대로 불거진 ‘생활방사선’, 월급 상납과 일자리 창출 실적 부풀리기 문제가 집중 조명을 받았다. 그러나 방사성폐기물 이송 부진과 출연연의 숙원인 ‘연구과제중심제도(PBS)’ 등 해마다 단골메뉴처럼 등장하는 문제들은 올해도 별다른 해결방안을 마련하지 못한채 해를 넘기게 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산하기관을 대상으로 지난달 10일 열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현장.

   - 연합뉴스



올해 두 번째 국감을 맞는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과학기술 정책과 관련해  “이미 하고 있다” “살펴보겠다” “하겠다” “검토해보겠다”며 구체적 답변을 대부분 이진규 과기정통부 제1차관에게 미루는 태도를 보여 일부 의원들에게 지적을 받기도 했다. 지난 29일 종합국감을 끝으로 마무리된 올해 과기 분야 국감 10대 이슈를 살펴봤다.

‘연구세습’ '셀프 임용' 논란
올 국감에선 4대 과학기술원에서 최근 5년간 재학 중이었던 대학원생 중 KAIST(바이오·뇌공학과 및 생명과학과) 학생 2명, 광주과학기술원(GIST) 지구과학공학부 학생 1명의 지도교수가 아버지로 밝혀지면서 이른바 ‘연구세습’ 의혹이 제기됐다. 아버지 논문에 공저자로 이름을 올리거나 아버지의 연구실에서 병역특례 전문연구요원으로 복무하는 등의 사례가 적발됐다.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아버지가 아들의 병역 복무를 관리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명백한 병역비리”라고 지적했다.



손상혁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총장은 교원 시절 획득한 펠로우(특별연구원)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지난해 내부규정을 바꿔 ‘셀프 임용’ 사례로 지적됐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총장의 신분을 이용해 펠로우 자격이 안 되는데도 불구하고 정년을 65세에서 70세로 바꿔 본인을 재임용했다”고 비판했다.

   충남 천안 대진침대 본사 앞마당에서 방사성 물질 라돈이 검출된 침대 매트리스 해체작업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라돈 침대·생리대 등 생활방사선 관리 실패 ‘뭇매’
일부 대진침대에서 발암물질인 라돈이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된  ‘라돈침대’ 사태가 벌어진 지 5개월이 지났지만 정부의 생활방사선 관리체계가 여전히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라돈침대에 이어 생리대, 건축자재, 식용 버섯 등 생활 속에서 안전기준을 초과하는 방사선량이 검출된 것에 대한 질책도 쏟아졌다. 



원안위 조사 결과 라돈 생리대 의혹을 받은 ‘오늘습관’은 연간 방사선 피폭량이 기준치에 못미치는 것으로 나왔지만 생활제품 안전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의원들은 생활방사선을 관리하는 부처가 원안위, 행정안전부, 환경부, 국토교통부로 산재돼 있는 것을 일원화하고 정부가 지자체와 함께 관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원안위의 성급한 발표에 대한 비판도 이어졌다. 원안위는 지난달 25일 “라돈침대의 수거와 해체를 안전하게 마쳤다”고 밝혔다가 아직 수거되지 못한 매트리스에 대한 연합뉴스TV 등의 보도가 이어지자 지난달 28일 “현재까지 7만 여 개의 매트리스가 수거됐다”며 “수거 작업은 계속될 것”이라고 사흘 만에 입장을 바꿨다. 항공사 승무원들이 자신의 우주방사선 피폭량 수준을 알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가짜 일자리’ ‘월급 상납’ ‘무리한 정규직화’ 등 실패한 과기 일자리정책
과기정통부가 일자리 창출 실적 내기에 급급한 나머지 ‘가짜 일자리’를 양산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이 정부에 보고한 지난해 일자리 창출 실적 5960개 중 2014명은 중복 집계된 인원으로 드러났다. 박성중 자유한국당 의원은 “468억 원의 혈세를 청년 기술이전전담인력(TLO) 육성 사업에 투자했지만 모집인원도 채우지 못한 데다 가짜 일자리만 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사업은 미취업 이공계 학·석사 졸업생이 일정기간 ‘청년 TLO’로 근무한 경험으로 취업이나 창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으로 취업 실적으로 보기 어렵다.



일부 중소기업들이 ‘신진 석·박사 연구인력 채용사업’을 통해 정부로부터 인건비 절반을 지원받고, 월급의 일부를 다시 상납 받아 챙긴 것으로 드러나면서 충격을 주기도 했다.  송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은 사업추진기관인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 수혜를 받은 중소기업 2000여 곳에 대한 전수조사를 요구했다.

정부가 급격하게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면서 출연연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용현 바른미래당 의원은 “출연연 전체 정규직 인력 1만2000명의 무려 20%에 해당하는 2525명이 한꺼번에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며 “일부 기관은 갑자기 절반 이상이 늘어나게 생겼다”고 꼬집었다. 실제 연구에 투입되는 예산이 줄고 신규 채용이 계속 줄고 있는 것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또 출연연은 지난해에 이어 여성과학자의 비중이 적고 장애인 의무 고용이 부진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지난해 출연연의 장애인 의무고용 달성률은 52%에 그쳤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누리호’ 시험발사체 발사 성공 기원 
       릴레이 응원 캠페인을 하고 있는 모습. 연구개발 과정에 대한 이해 없이 시험발사체 발사를 과기정통부의 홍보 
       수단으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 과기정통부 제공



‘누리호’ 시험발사체 발사 과잉홍보 논란
과기정통부는 한국형발사체 누리호의 엔잔 검증용 시험발사체 발사 과정을 생중계하는 등 대대적으로 홍보하려고 계획했다가 이를 철회했다. 대국민 생중계는 연구자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고, 만약 발사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우주개발사업에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지적이 잇따라 나왔기 때문이다. 

시험발사체는 누리호의 핵심기술인 75t급 액체엔진의 성능을 검증하기 위한 발사체다. 3단로켓인 누리호 시험발사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 시험발사체 발사 성공이 누리호 개발 성공으로 직결되진 않는다는 뜻이다

이 같은 취지의 언론 비판이 이어지자 국감에서 생중계를 요구하던 의원들은 과기정통부의 뻥튀기 홍보를 지적하며 “마치 국회의원들이 무리하게 (생중계를) 요구한 것처럼 비쳐져 당혹스럽다”며 불쾌감을 나타냈다. 누리호 시험발사체는 발사 전 점검에서 가압 계통에 이상이 발견돼 이달 말로 한 달가량 연기됐다.



국감장에서도 불거진 ‘가짜학회’ 논란
국내 연구자 중 상당수가 국가 연구개발(R&D) 사업비를 이용해 가짜 학술대회에 참석한 것으로 드러난 가운데, 이른바 ‘가짜학회’ 논란이 국감에서도 도마에 올랐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출연연과 KAIST 등 4대 과기원이 가짜학회 참석에 국민 혈세 10억 원을 낭비했다”고 지적했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2016년 부실학회 참석자 중 박동준 한국식품연구원장이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21개 출연연의 연구자 184명이 2014년부터 최근 5년간 세계과학공학기술학회(WASET·와셋)와 오믹스(Omics) 출장에 총 7억 7498만 원(1인당 평균 421만 원)을 지원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한의학연구원(1억2153만 원)과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순으로 가장 많았다. 4대 과학기술원의 경우에는 2억7125만원(1인당 평균 357만 원)을 지원받았고 KAIST(1억1992만 원)와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순으로 확인됐다.

   강정민 전 원자력안전위원장(맨 왼쪽)이 지난달 국정감사에 참석해 답변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강정민 원자력안전위원장 부적격 논란 끝에 사퇴
강정민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이 부적격 논란 끝에 지난달 29일 종합 국정감사를 앞두고 갑자기 사퇴했다. 취임 10개월 만이다. 지난달 12일 최연혜 자유한국당 의원은 “KAIST 초빙교수 시절인 2015년 원자력연에서 위탁받은 과제에 참여하고 274만 원의 연구비(출장비)를 지급받았다”며 “현행 원안위법상 원안위원 결격사유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당시 강 위원장은 “출장을 간 것은 맞지만 연구에 참여하지는 않았다”고 답했지만 결국 연구비 부정사용으로 의혹이 번지면서 끝내 사직서를 제출했다. 강 위원장은 사퇴 사흘 전인 지난달 26일 감사원에 감사를 자진 청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감사 착수 여부는 이달 중 결정된다.
 
한국과학창의재단 전 간부 성매매 의혹
한국과학창의재단 전 간부 3명이 성매매 혐의로 징계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윤상직 자유한국당 의원이 창의재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경찰은 올해 7월 A 전 단장과 B 전 실장, C 전 팀장의 성매매 혐의와 A 전 단장과 B 전 실장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한 불구속 기소 통보를 했다.

창의재단은 A 전 단장을 해임했고, B 전 실장과 C 전 팀장에 대해서는 각각 정직 3개월과 정직 1개월의 징계를 통보했다. 현재 B 전 실장과 C 전 팀장은 다른 부서에서 재직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올해 8월 서은경 전 창의재단 이사장이 연구비 부정 사용 의혹으로 취임 99일 만에 사퇴한 데 이어 이번 사건이 불거지면서 창의재단의 도덕성 제고를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원자력연의 지지부진한 방사성폐기물 이송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방사성폐기물의 이송 및 안전관리 문제로 집중 포화를 맞았다. 정부가 2016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5년 내 원자력연이 위치한 대전에서 원 발생지인 한국수력원자력으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했지만, 정작 한수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반환 절차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경주 방폐장으로 이송돼야 할 중저준위 폐기물 800 드럼 중 한 드럼도 이송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정용기 자유한국당 의원은 “원자력에 대한 우려를 불식해야 할 원자력연이 도리어 우려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진규 과기정통부 제1차관이 국정감사에 참석해 답변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또 해 넘기는 출연연 숙원 ‘연구과제중심제도(PBS)’
출연연의 숙원인 ‘연구과제중심제도(PBS)’가 국감에 또 등장했다. PBS는 연구자 인건비 중 일부만 정부의 지원을 받고, 나머지는 연구자가 직접 외부기관으로부터 연구 과제를 수주해 충당해야 하는 제도다.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게 ‘과제수주 주식회사’지 어떻게 정부출연연구소냐”며 “인건비는 기관에서 지급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비판했다.

경쟁을 통해 연구에 활력을 불어 넣으려 했던 PBS의 도입 취지는 좋았지만 연구에 집중하지 못하고 단기성과에 치중하는 등 부작용이 더 크다는 지적이다. 이는 PBS가 도입된 1996년 이후 매년 국감 때마다 반복돼 나오는 지적이지만 정부는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방만 운영 질타
중이온가속기(RAON·라온)건설구축사업단 내 연구비 낭비,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직 유지 논란, 복수 과제 수행 등 IBS의 방만 운영에 대한 질타가 이어졌다.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중이온가속기건설구축사업단이 지난 3년간 보직수당 지급, 건물 임대료 지급 등 방만 경영으로 연간 6억 원의 연구비를 낭비했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변재일 의원은 “IBS는 연구자가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로 설립된 기관인데 연구직보다 행정직이 더 많은 급여를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영민 장관은 “빠른 시일 내에 특별점검하겠다”며 “사안에 따라 감사원 감사 청구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송경은 기자 kyungeun@donga.com 동아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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