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교수와 포스코 체육관의 수영


퇴임 교수와 포스코 체육관의 수영

인문대학 언어학과 이 현 복


정년퇴임을 하고 70을 넘긴 나이에 수영이란, 사실 엄두가 안나는 일 같기도 하다. 젊어서 하던 운동도 나이 들면 포기하는 것이 보통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나는 원래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해서 초등학교 시절에는 학교 대표로 전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하기도 하고 빙상 스케이트를 탔으며, 집에서는 아버지가 매어주신 철봉과 평행봉이 있어서 고등학생시절까지 항상 운동을 하였다. 그 뒤 영국에서 테니스를 시작한 뒤 서울대학에 돌아와서도 계속 교수 테니스부에서 활동, 전국 교수테니스대회에 출전하여 개인부에서 박봉식 교수와 파트너가 되어 준우승을 한 바 있으며, 신익성 교수의 주도로 문리대 교수 축구부가 결성되어 농대 등과 친선 시합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따금씩 골프와 탁구도 해 왔으니 육상의 스포츠와는 늘 가까이 해온 셈이다.


그러나 수영은 아니었다. 아주 어린 나이에 대천 해수욕장에서 어른들이 한눈파는 사이에 바닷가에서 파도에 휩쓸려 물을 먹고 기절한 다음부터 물에 대한 공포에 시달려, 70평생 물에는 무릎 이상 들어가지 않고 물가에서만 놀았고, 낚시를 좋아하나 역시 허리 이상을 들어가지 않고 고기를 잡았다. 해방 후 12, 3세 때 아이들과 서울운동장 풀장에 가서 퐁당거리고 논적이 있다. 그러나 얕은 물이었지만 고개를 물에 박고 숨을 참은 채 어느 정도 팔로 기어가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10여 미터가 고작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2007년 12월, 150동의 명예교수실에는 정년퇴임한 명예 교수를 위하여 서울대 포스코  실내수영장에서 수영 강습을 한다는 공고가 있었다. 좀 망설이다가 나 역시 참가 신청을 하고 보니 참가자가 모두 다섯 분이었다.


그 해 12월 초 일본 학회에 다녀오느라 첫 시간에 결석하고 두 번째 시간부터 참여하였다. 우선 얼굴을 물속에 담그는 훈련을 하였다. 물에 들어가면서 “음”하면서 코로 숨을 내고, 얼굴을 물 밖으로 내자마자 “파”하고 숨을 뱉는 훈련이었다. 나의 전공인 음성학에서 다루는 기류체계의 기본을 이용한 방법이라 생각되었다. 일생 동안 물을 무서워한 터라 처음에는 긴장이 되었으나 강사의 지도대로 따르니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 놀랍게도 첫 시간 10여분 만에 물의 공포는 완전히 극복한 셈이다. 70 평생 떨치지 못하던 물의 공포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서울대 포스코 스포츠센터/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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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에 머리 넣고 발차기 훈련, 손을 젓는 자유형 수영 훈련 등으로 진도가 나아갔으나, 일단 공포가 사라지자 그 다음은 옛날의 운동 신경 덕분이었는지 순조로웠다. 가장 힘든 것은  170 서울대학교 명예교수회보 2009, 제5호 중간 중간 숨쉬는 방법이었다. 레인 끝까지 25미터를 가는데 처음에는 5, 6미터 가다 일어서서 쉬곤 하니, 끝까지 가는 데 3번을 일어서서야 했다. 다른 20대 학생들과 같은 레인에서 해야하니 남에게 방해도 되고 미안하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10여 미터로 길이가 늘어나 2번 쉬고 가다가 몇 주 후엔 중간에 한 번 쉬고 갈 수 있게 되었고, 드디어 2월 9일에는 호흡법을 터득, 간간히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숨을 쉬며 25미터를 완주할 수 있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스러운 일이었다. 수영 강사는 날보고 “에이쓰”라며 박수로 환영해 주어 기쁘기도 하였으나, 나를 바라보는 동료에게는 미안한 감을 금할 수 없었다.


이듬해 2월 18일 나는 드디어 50미터를 완주하였다. 25미터 레인을 쉬지 않고 왕복한 것이다. 수영강습은 원래 화요일과 목요일 3시에 있었으나, 나는 매일 가서 연습을 하였다. 백과사전의 수영 이론을 읽어 보고, 인터넷에서 수영 동영상을 검색하여 참고하기도 하였다. 강습은 이듬해 2월까지 석달 동안이었다. 나는 혼자서 돌핀킥도 연습하고, 되던 안 되던, 평영과 접영(butterfly)도 시도하였다. 나중에는 숨을 완전히 참고 25미터를 끝까지 헤엄쳐 갈 수 있게도 되었다.




무엇보다도 수영은 건강에 좋았다. 처음 한 시간 강습을 받고나면 기진맥진하여 정신이 없었고 허기가 졌다. 2003년에 척추협착증 수술로 약해진 오른쪽 다리는 수영을 하고 나면 완전히 풀려서인지, 걷기는 커녕 딛고 설 기운도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런 증세는 감소되었고 오히려 전신이 활성화되는 기분을 느꼈다. 힘찬 심호흡을 많이 하기 때문인지, 기관지가 튼튼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12월 초 학회 참가 중에는 감기 기운이 있었으나, 수영을 시작한 후 2월 말까지 한 번도 감기에 걸린 적이 없다. 또한 소화가 너무나 잘 되었다.

물에 들어가 25미터만 가도 뱃속에서 끄륵 하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물론 컴퓨터, 텔레비전 등으로 피로한 눈을 쉴 수 있고, 전신이 활성화되니 눈도 한결 시원하고 상쾌해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12월부터 2월까지 3개월은 수영장이 한가한 편이어서인지 명예교수에게는 무료로 수영강습을 해주었고 헬스도 할 수 있었다. 나는 헬스는 몇 번 하지 않고 수영에만 전념하였다. 물에 떠서 물고기처럼 헤엄쳐 간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하기 때문이다. 육상의 운동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것을 느낀다. 포스코 체육관에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 강습 기회가 없었다면 나는 평생 수영은 커녕 물에 대한 공포증을 이기지 못한 채 일생을 마쳐야 했을 것이다.




수영을 계속하면 약한 다리, 허리가 보강되고 소화기와 순환기, 폐장이 튼튼해지는 것 같다. 늦게 배운 도둑질 날샌 줄 모른다는 속담처럼 그 해 겨울 석달 동안 나는 늦은 나이에 수영이라는 새로운 세계에 몰입한 것이다.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2008년 3월부터 명예교수에게는 정규 요금의 반액으로 우대하기로 하였다. 그 후에 관악구민 스포츠센터에 가보았다. 레인 수가 5개로 포스코보다 3개가 적고 시설도 부족하였으나 요금은 저렴한 편이었다. 그러나 수질이 못한 것 같다. 기침이 많이 나는 것을 보면 독한 소독약이 많이 들어 간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포스코 수영장의 수질은 대단히 훌륭함을 나는 느낌으로 안다. 전혀 기침이 나오지 않고 편하기 때문이다.

2003년 허리 수술을 하고 나서 뒤 늦게 수영을 하게 되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하면, 더 일찍이 수영을 하였더라면 다리가 더 빨리 보강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위안을 해 본다. 늦다고 느낄 때가 빠르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동료 명예교수 여러분께 적극 권하고 싶다. 더 늦기 전에 수영을 시작하고 건강을 챙기시라고. 이와 관련하여 반가운 소식이 하나 있다. 포스코 실내체육관에서는 2010년 7월 15일부터 명예교수에게 특별 할인요금을 적용하기로 하였다. 수영이나 헬스 중 하나를 택하면 1년간의 회원 요금을 이전 요금의 절반으로 내려서 21만원으로 하고, 두 가지를 모두 택하면 31만원으로 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본부 김신복 부총장님의 배려가 크게 작용하였다.




수 개월 전 부총장 초청 명예교수 오찬 모임에서 본인은 명예교수의 건강 증진을 위하여 포스코 체육관의 이용 요금을 인하해 줄 것을 공식 요청한 바 있다. 나이가 많고 수입도 줄어든 명예교수는 건강 유지를 위해 운동이 필요한데, 체력이 달리니 체육관에 자주 가기도 어렵고간다 해도 오래 있지도 않을 분들이니 특별 요금 적용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명예교수 여러분은 이를 건강 증진의 기회로 삼으시도록 권고하고 싶다.


나는 요금 인하 소식을 전해들은 2010년 7월 8일에 곧장 달려가 등록을 하고 포스코 수영을 다시 시작하였다. 무엇보다도 말을 꺼낸 사람이 먼저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2009년 제5호 서울대 명예교수 회보


이현복(73) 서울대 명예교수(2009년 기준)

'한글 해외전파'의 개척자이다. 이 교수는 1994~2003년 매년 두세 차례 태국 북부의 소수민족인 라후(Lahu)족을 찾아 한글을 전파하는 활동을 펼쳤다. 처음 5년은 라후어의 음운을 분석하는 작업을 통해 어떤 글자가 필요한지 연구했고, 이후 산골마을 사람 20여명을 대상으로 라후어를 한글로 표기할 수 있도록 가르쳤다. 우리말 발음에 없는 목젖소리나 콧소리 등을 표기하기 위해 한글 자음과 모음을 24개에서 80개까지 늘린 '국제한글음성문자'(IKPA·International Korean Phonetic Alphabet)도 개발했다.

출처 gaia.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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