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방북 4대기업에도 전화, 대북 경협사업 직접체크..."대북경협 강력 제재 암시"


美, 방북 4대기업에도 전화, 대북 경협사업 직접체크..."대북경협 강력 제재 암시"


주한 미국 대사관 해리스 대사

삼성 등 국내 4대 기업 산림청 대북 경협 관련사 직접 만나


외교 소식통 “미국, 한국 정부 패싱”

은행 이어 기업까지 … 대북 경협 속도조절 직접 압박?


  주한 미국 대사관이 지난달 북한을 방문했던 삼성 등 국내 4대 기업을 비롯해 대북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산림청과 직접 접촉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29일 오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만나 한미 간 대북 공조 방안을 조율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들어가고 있다. 우상조 기자

  



외교 소식통 “미국, 한국 정부 패싱”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30일 “주한 미 대사관이 삼성·현대차·SK·LG 등 지난달 방북했던 주요 기업 등에 직접 전화해 방북 과정에서 논의됐던 기업 차원의 협력사업 추진 상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 정부가 남북 간에 진행되는 대북 사업의 현황을 파악하려는 목적과 함께 북·미 비핵화 협상을 앞두고 한·미 간 속도를 맞추려고 한 시도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미국 대사관은 또 평양공동선언에 따라 현재 북한과 우선 협력을 추진하는 산림청과도 별도 접촉했다. 산림청은 대북제재 완화 논란에도 불구하고 북한 양묘장 현대화 등을 위해 이미 내년도 예산 1137억원을 편성했다. 

  

이에 앞서 미국 재무부는 평양공동선언 직후인 지난달 20~21일 국내 7개 은행과 관련 콘퍼런스콜(전화 회의)을 열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미국 측은 “(대북제재 위반 관련)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하지 말라”는 등 강도 높은 우려를 국내 은행 측에 표명했다. 


이처럼 미국 정부가 청와대나 외교부를 통하지 않고 국내 은행에 이어 민간 기업까지 잇따라 접촉에 나선 건 이례적이다. 문재인 정부의 남북 경협 과속을 우려한 탓에 미국 정부가 민간 분야에 속도 조절 등 경고 메시지를 전달했을 가능성이 크다.  




미국, 은행 이어 기업까지 … 대북 경협 속도조절 직접 압박?

이와 관련해 익명을 원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이 대북제재의 틀 안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한다는 현 정부를 신뢰하지 못해 민간과 담당 부처를 대사관과 재무부 등이 직접 챙기는 것”이라며 “일종의 ‘한국 정부 패싱’”이라고 말했다. 


관련 기업들은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4대 기업 관계자는 “미국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건 맞다. 하지만 구체적 요청 내용을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점을 이해해 달라”며 “수출에 의존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미국의 요청을 거부할 수도, 그렇다고 한국 정부의 뜻을 거스를 수도 없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부 기업은 혹시 모를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등에 대비한 비상 대책팀도 가동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경제단체 관계자 역시 “4대 기업뿐 아니라 방북했던 기업을 미 대사관이 순차적으로 추가 연락하는 것으로 안다”며 “구체적인 대북 사업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거나 가능성이 있는 곳이 (미국 접촉의) 우선 대상”이라고 말했다. 


  19일 평양 옥류관에서 문재인 대통령 평양 방문 특별수행원으로 방북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손경식 한국경총 회장이 리선권 조국평화통일 위원장 등 북측 인사들과 식사하고 있다. 2018.09.19/뉴스1



  

지난달 평양 정상회담 때 방북한 경제인은 17명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 김용환 현대차 부회장 등 4대 기업과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최정우 포스코 회장,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두산인프라코어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CJ그룹 회장) 등이다. 

  

북한은 현재 27곳(중앙급 5곳, 지방급 22곳)의 경제특구를 추진하고 있다. 사실상 국내 기업의 대규모 투자를 전제로 한 계획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총재가 수행단에 포함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북한은 지난 방북 때 기업인들에게 조속한 투자를 종용했다고 한다. 익명을 원한 재계 인사는 “북측이 계속 ‘정주영 회장은 안 그랬는데’라고 말하며 즉각적 투자 결정을 요청했다”며 “‘옛날과 달리 이사회 등의 의결이 있어야 결정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해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더라”고 전했다. 

  

29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통일부 국정감사에서는 이선권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기업인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며 면박을 줬던 사실이 알려졌다. 일각에선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의 이번 방한도 한국 정부의 남북 협력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한 정부 당국자는 “비건 대표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따로 만난 것은 조속한 남북 협력을 추진하는 정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려는 목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비건 대표는 이날 남북 교류를 주관하는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만났다. 전날엔 남북공동선언 이행추진위원장을 겸한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면담했다. 

  

여권의 핵심 인사는 “미국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속도 조절을 요청했지만 조속한 협력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강하자 미국 측이 민간을 직접 접촉하는 우회로를 찾았을 가능성이 있다”며 “다만 경협 반대보다는 비핵화 협상에서 한·미 간의 페이스를 맞추자는 취지로 판단한다”고 전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오른쪽)이 29일 오후 청와대에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면담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한편 주한 미국 대사관 측은 “산림청과의 접촉 등 공개되지 않은 특정 면담이나 대화에 대해 확인하거나 부인하지 않는 것이 대사관의 원칙”이라고 전했다. 

강태화·위문희 기자 thkang@joongang.co.kr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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