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아이에게 묻고 이민왔을까


누가 아이에게 묻고 이민왔을까
박유선 수필가

  어느날 모 일간지엔 어떤 아버지의 가슴 아픈 사연이 실렸다.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같은 하늘아래서 아들과 5년 만에 재회한 이야기. 세상엔 참으로 천층만층 구만층의 사연이 있지만 내 이해력 부족만을 탓할 일이 아닌 내용이었다.

중학생 아들은 아버지 따라 미국 이민와 이제 사회인이된 보은(?)으로 5년 간 아버지와 관계를 끊었다. 이유는 어려서 아버지한테 '맞은 것과 한마디 의논도 없이 이민 온 것' 때문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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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흔적을 남기며 달려온 지난 세월을 되돌아 본다. 오래 전 아이들이 열 살도 안 된 연년생 셋을 데리고 미지의 땅으로 행복의 파랑새가 있으리라 믿고 어쩌면 무모한 도전의 길을 선택했다. 누구나가 그렇지만 우린 그야말로 유행가 가사처럼 연습도 없이 즉석 연기를 하며 하루하루를 앞만 보고 달렸다.

우리가 이민 온 그 당시만 해도 미국이라는 나라를 사람들이 지금처럼 많이 다니지 못했다. 또한 법이 이민수속 중엔 해외에 나갈 수가 없었다. 귀동냥으로 전해 듣고 알지 못하는 세상을 미디어를 통해서나 TV를 보며 멜팅팟이라는 나라의 면모를 조금씩 알아 가며 젊은날의 꿈을 키웠다.



친정 식구가 다 이민을 가서 아버지는 남은 우리가족을 많이 염려하며 '어서 와서 같은 하늘 아래서 살자'고 했다. 어느날 그이에게 '우리도 이민을 가면 어떻겠느냐?'고 타진했다. 그때 그이는 회사가 괜찮아서 그랬는지 그냥 내 나라에서 살자고 했다. 나는 이민이라는 것이 단순히 결정할 사안이 아님을 알기에 '그럼 몇년이 걸려도 좋으니 생각이 정해지면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잊고 살다가 3년이 지나서 '그럼 우리도 가자'고 했다. 우리가 제일 나중에 오게 되니 큰딸로서 내 역할을 충분히 하고 살았는데, 고생하는 모습을 부모에게 보여 마음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다른 도시로 가려고 했다. 아버지는 한마디로 '안된다. 내가 힘은 없지만 미국을 안다면 아니 곁에 와서 동서남북은 알고 움직여야 하지 않겠느냐?'고 한다. 그래서 우린 부모 곁에서 2개월을 지내고 이사하고 그이는 사업체가 있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우린 원조 기러기 가족이 되었다.

혼자 앞만 보고 정신없이 뛰다가 어느날 문득 내가 그때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묻지도 못하고 이민왔는데 아이들은 과연 어떻게 생각하는지 싶었다. 아이들에게 '우리가 이민올 때 너희들이 너무 어려서 묻지도 못하고 왔는데 혹시 엄마 아빠가 잘못한 건 아닌지?' 하고 눈치를 살폈다. 아이들은 대번에 '아니요, 잘 했지요' 하고 입을 모은다. 순간 가슴을 쓸어내렸다. 영감같은 아들이 '부모라고 다 아는 것도 아닌 세상을 더 좋은 삶을 위해서 우리를 데리고 왔는데, 그저 고마울뿐이지요' 한다. 세상에 어떤 부모라도 자기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까.

문득 유치원 손녀한테 배운 '반포지효(反哺之孝)'가 떠오른다. '미물인 까마귀는 60일 간 먹이를 물어다 길러준 어미가 늙으면 저도 먹이를 물어다 어미를 거두며 은혜를 갚는다'라는 뜻이라고 설명해준다.

한데 부모에게 보은은커녕 만물의 영장이란 인간들이 그리 변질되는 세상이 무섭게 느껴진다면 내가 너무 심약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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