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킹조지 세종과학기지] "가는 데만 3박4일, 지구 반바퀴 남극 향한 대장정"


[남극 킹조지 세종과학기지]

"가는 데만 3박4일, 지구 반바퀴 남극 향한 대장정" 


남극 세종과학기지 르포

비행시간만 33시간30분, 기상 허락해야 입남극


세종과학기지 증축 건설현장 마무리 단계 

1월 23일 기지 준공 30주년 기념식 열기도


#“남극에 잘 오셨습니다.” 지난달 23일 오전 10시(현지시간) 칠레 민항기를 타고 드레이크 해협을 건너 남극대륙 킹조지섬에 위치한 칠레 공군기지에 내렸다. 


세종과학기지 증축 건설현장 - 하계연구동을 중심으로 한 기지전경/손성현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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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규 남극세종과학기지(이하 세종기지) 월동대장이 정부·국회 방문단과 기자를 맞아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같은 달 20일(한국시간) 오후 2시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했으니 남극에 첫발을 내딛기까지 3일하고 8시간이 더 걸렸다. 


파리와 칠레 산티아고, 푼타아레나스를 거쳐 칠레 공군기지까지 등 비행시간만 33시간30분이었다. 몸은 녹초가 됐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남극 대륙에 발을 내딛었다. 거친 바람이 귓가를 스친다. 옷깃을 단단히 세운다. 그래도 걱정했던 것보다 날씨는 좋다. 하늘을 뒤덮은 구름 사이로 간간이 햇빛도 내리쬔다. 


턱끈펭귄 한쌍이 남극 세종과학기지 앞을 서성이고 있다. 사진=킹조지섬(남극)=

민동훈 기자


남극 킹조지섬 칠레 프레이 공군기지 전경/킹조지섬(남극)=민동훈 기자


세종기지에서 준비한 SUV에 몸을 싣고 칠레 프레이기지 앞 선착장으로 갔다. 칠레 기지와 세종 기지 사이에 있는 맥스웰만은 세찬 바람에 파도가 높게 일인다 맥스웰만은 바다가 얼어붙는 겨울철을 제외하면 고무보트가 아닌 탈것으로 육상으로 가는 게 불가능하다.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엔 세종기지 인근에 접안조차 못한다. 바람이 멎을 때까지 그저 기다려야 한다. 


“그래도 오늘은 날씨가 좋습니다. 운이 좋은 편입니다.” 홍 대장이 사람 좋은 미소를 띄우며 기자에게 말을 건넨다. 그는 “오늘 날씨가 좋아 한번에 비행기가 착륙을 했다”며 “유명 예능프로그램인 1박2일과 무한도전 촬영팀이 몇년 전 비슷한 시기에 세종과학기지 기지 촬영을 시도했는데 기상상황 때문에 세종기지는 커녕 칠레 공군기지 땅도 밟지 못하고 돌아갔다”고 말한다. 당시 1박2일 촬영팀은 푼타아레나스에서 보름 동안 머물렀지만, 이런 수고가 물거품이 됐다. 


남극 세종기지와 장보고 기지 위치도/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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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들 사이에 전해져오는 입(入) 남극의 전설이 있다. 1996년 12월 한 대원이 비행기를 타기 위해 푼타에라나스 호텔에서 공항까지 여섯 번을 왕복했다는 얘기다. 그가 공항에 나간 여섯번 중 네번은 비행기에 탔고 세 번은 비행기가 이륙했으며 두 번은 푼타아레나스로 회항을 했다. 자연이 허락해야 밟을 수 있는 땅이 바로 남극인 것이다.


잠시 감격에 젖었지만 최종 목적지인 세종기지까지 여정은 멀다. ‘조디악’이라고 부르는 고무보트를 타고 10km 정도 더 가야 한다. 홍 대장의 지시에 따라 우주복 같이 생긴 전신 방한구명복을 챙겨입고 조디악에 몸을 실었다. 세찬 남극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옷깃을 한번 더 추켜 세운다.


고무보트 조디악을 타고 남극 세종과학기지로 들어가고 있다. /킹조지섬(남극)=

민동훈 기자


파도가 출렁일 때마다 아직 출발도 안 한 조디악이 널뛴다. ‘드디어 남극인가.’ 긴장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당장 세종기지에 들어가는 것 만큼이나 4일 뒤 나오는 것도 걱정이다. 사실 칠레 푼타아레나스에서 남극 기지행 비행기에 몸을 싣기 전 선택을 해야 했다. 당초 23~24일 1박2일 일정이었던 세종기지 취재는 현지 기상상황 악화로 인해 이날 들어가면 3시간 가량 머물다 바로 나오거나 4일 뒤인 27일에 나와야 했다.


그마저도 기상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었다. 일단 취재가 우선이라는 판단에 따라 후자를 택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방문 당일 세종기지를 떠난 정부·국회 방문단과는 달리 기지에 남았던 기자 일행은 27일이 아닌 31일에서야 세종기지를 벗어날 수 있었다. 


세종과학기지 본관 모습/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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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디악에 몸을 실은 기자는 긴장감에 입술을 질끈 깨문다. 이도 잠시, “드르렁” 하는 조디악의 거친 엔진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든다. 조디악은 맥스웰만을 거침없이 내달린다. 차갑지만 상쾌한 바람이다. 하지만 이내 보트에 묶인 밧줄을 부여잡는다. 마치 돌밭 위를 구르는 공 마냥 보트가 통통 튀면서 바닷물이 보트 안으로 들이친다. 당장이라도 차가운 남극 바다에 떨어질 것만 같다. 


그렇게 내달리길 20여분. 보트는 세종기지를 눈앞에 두고 갑자기 우현으로 방향을 튼다. “마리안 소만 빙벽을 먼저 보고 기지로 갈 겁니다.” 기자 옆에 앉아있던 홍 대장이 큰소리로 설명했다. 지구온난화 여파로 매년 1m씩 빙하가 후퇴하면서 바다와 맞닿은 빙벽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했다. 


남극 킹조지섬 세종과학기지 인근에 자리한 '마리안' 소만의 빙벽. 지구 온난화의 

여파로 매년 빙벽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다./킹조지섬(남극)=민동훈 기자


10여분을 더 달리자 아파트 10층 높이도 더 되는 거대한 얼음 장벽이 시야를 가로막았다. 이미 무너져 내린 얼음덩어리가 조디악 주변을 이리저리로 떠다닌다. 얼음덩어리가 떨어져 나간 빙벽은 마치 철거 중인 아파트 계단처럼 무너진 모습이다. 


거대한 빙벽에 압도 당한 기자는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온난화에 따른 지형변화를 잘 관찰할 수 있는 지역이어서 세계 각국의 연구진이 몰려오는 곳이다. 세종기지에서 3시간 정도밖에 머물지 못하는 정부·국회방문단을 고려한 맛 뵈기 코스다. 


마라인 소만 빙벽 지대를 한바퀴 돈 조디악이 다시 속도를 높인다. 일렁이는 파도 사이로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세종기지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황색과 흰색 건물들이 바다 쪽으로 줄지어 있다.


“어서 오세요.” 기지 앞 접안시설 사다리를 오르자 한 무리가 반갑게 맞이했다. 지구 반대편 남극에서 겨울을 보낼 ‘제31차 월동연구대원’들과 여름철에만 머물며 연구를 하는 ‘하계대원’들이다. 이들의 도움을 받아 무거운 전신 방한구명복을 벗고 숨을 돌리자 기지 앞으로 탁 트인 맥스웰만이 눈에 들어온다. 바람이 거칠긴 했지만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볕 덕에 포근한 느낌이다. 


“펭귄이 마중 나왔네요.” 한 월동대원의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해변가로 돌리자 남극의 상징인 펭귄이 보인다. 목에 가느다란 검은 선이 그어져 있어 ‘턱끈 펭귄’이라고 불리는 종이다. 세종기지가 위치한 바툼반도에는 턱끈 펭귄과 젠투펭귄이 대거 서식하고 있다. 


남극 세종과학기지에서 바라본 맥스웰만 전경./킹조지섬(남극)=민동훈 기자


이들은 먹이 사냥을 나갔다가 종종 남극기지 앞 해변에 쉬러 올라온다고 한다. 펭귄은 낯선 방문객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종종 걸음으로 바다로 향한다. 발이 물에 닿는가 싶더니 마치 돌고래처럼 물속으로 뛰어든다. “운이 좋으면 맥스웰만에 출몰하는 고래도 볼 수 있다”고 한 대원이 귀띔한다. 펭귄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기지로 향한다. 


선착장에서는 포크레인이 조디악에서 보급품과 취재진의 짐을 끌어 올린다. 지금이야 포크레인 등 중장비를 동원해 손쉽게 짐을 옮기지만 초창기 세종기지 월동대원들은 해안가에서 리어카로 짐을 실어 날랐다고 한다. 5차 월동대 총무로, 17차 월동대장으로 세종기지를 거친 윤호일 극지연구소장은 “중장비 없이 모든 걸 사람이 직접 하다 보니 허리가 멀쩡한 월동대원이 없었다”고 말한다.


일행은 기지 국기게양대 옆 털모자를 쓴 한 젊은이의 흉상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2003년 12월 조난당한 동료를 구하러 겨울바다에 나섰다 유명을 달리한 제17차 월동대원 고 전재규씨의 흉상이다. 지구물리 연구원으로 세종기지 월동대에 합류했던 전재규 대원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당시 월동대장이었던 윤 소장은 “그의 희생으로 세종기지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연구 및 근무환경 개선의 필요성도 부각됐다”며 “특히 극지연구의 오랜 숙원이었던 쇄빙연구선 건조도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남극 세종과학기지 앞에 놓인 전재규 대원 흉상./킹조지섬(남극)=민동훈 기자


마리안 소만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유빙이 세종과학기지 앞 해안가를 

가득 메웠다./킹조지섬(남극)=민동훈 기자


전재규 대원의 숭고한 희생은 세계 극지 연구자들도 함께 추모하고 있다. 2005년 국내 연구진과 공동연구를 수행하던 미국 해밀턴대 유진 도맥 교수가 2004년 남극 얼음기둥 밑에서 발견한 활화산을 ‘재규 놀(Jaekyu Knoll)’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적 공인기관에 등록한 게 단적인 예다. 


올해 초 30주년을 맞아 새롭게 문을 연 연구동 2층 숙소로 짐을 풀고 기지 앞 해안가로 발길을 향한다. 현지시간으로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이지만 고위도인 탓에 여전히 한낮이다. 여름철에는 하루에 3~4시간 정도만 밤이 이어지는, 일종의 ‘백야’ 현상이 나타난다. 극지에서 볼 수 있는 오로라는 아쉽게도 관측되지 않는 시기다.


기지 앞 해안가는 조류에 밀려온 유빙으로 가득하다. 수만년 전 내린 눈이 쌓여 얼어붙은 만년빙이다. 가까이 귀를 대보니 ‘뽀각뽀각’ 소리가 난다. 눈 사이에 갇혀있던 공기가 밖으로 나오는 소리라고 한다. 남극에는 만년빙 속 잠들어있던 고대의 공기처럼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들로 가득할 것이다. 꼬박 3박4일, 총 1만7240km를 날아온 남극에서의 첫날 밤을 기대감과 설렘으로 꼬박 새운다.


세종기지 준공 30주년 기념식과 건설현장 장비 일부 철수 모습/손성현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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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조지섬(남극)=민동훈 기자 mdh5246@mt.co.kr [머니투데이]

* 본 기사에는 현재 세종과학기지 증축 건설공사를 시행 중인 우일의 손성현 소장의 페이스북 사진이 게시되었습니다.

지인이라 허락없이 사진 게시한 점 양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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