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의 沈默 VIDEO: Johannes Brahms's Silence


계절이 서늘함을 넘어 

축축한 늦가을의 냉기를...

이때 우리는 습관적으로 생각해낸다


  계절이 서늘함을 넘어 축축한 늦가을의 냉기를 뿜어내기 시작할 때면 우리는 습관적으로 요하네스 브람스의 음악을 찾게 됩니다. 


(빈 중앙묘지의 브람스 묘)



제철이 따로 있는 식재료와 달리 ‘예술’이라는 것은 계절이나 장소 등 특별한 시공의 한계가 존재하지 않기는 하지요. 그러나 특별한 시간과 특정한 감정에 맞춰 들으면 더욱 감동적인 음악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건 예술을 즐기는 우리라는 존재가 섬세하고, 때로는 나약하기까지 한 인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위대한 나약함’을 지닌 인간은 생존에 대한 의지만으로는 도무지 살아갈 수가 없지요. 물질적 충족감을 넘어선 어떤 것들을 꿈꿀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다워진다고나 할까요. 


(요하네스 브람스, 독일 함부르크 1833 – 1897)


그러니 이 가을 도심의 가로수가 노랗게 익어가는 모습이나 아침저녁으로 늦가을의 낙엽을 조심스레 밟아가며 길을 걸어갈 때 느끼는 그 특유의 쓸쓸한 정서는 특히나 브람스를 떠올리게 합니다. 브람스의 음악은 참으로 완성된 세계 그리고 질서 있는 인생의 표상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지요.


브람스의 현악 6중주 제1번 중 유명한 2악장을 들어봅니다. 아름다운 명곡이지만 어쩌면 이제는 듣기 힘든 음악이기도 합니다. ‘현악 6중주’는 우리가 콘서트홀에서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연주 단위입니다. 그렇다고 음반을 찾아 들으려 하니 요즘은 또 ‘클래식 음반’이라는 물리적 형태 자체가 희귀해졌지요. 그러니 이 소중한 음악은 누군가라도 가을이면 꼭 권해줘야 하지 않을까요. 


(브람스 <현악 6중주> 제1번 제2악장 Andante ma moderato)


오스트리아 제국의 수도 빈에서 오랫동안 음악생활을 했지만, 그는 누가 뭐래도 북독일의 남자입니다. 가톨릭 문화권인 오스트리아와 남독일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특유의 어떤 여유와 허세, 인생에 대한 쾌락적 태도보다는 내면으로 끝없이 가라앉는 침잠과 사색의 예술가였지요. 한마디로 북독일 남자의 전형입니다 - 감각적이라기보다 아폴론적이고, 달변의 웅변가라기보다는 무겁고 진중하면서도 따뜻한 깊이가 넘쳐 흐르는 브람스입니다.


엄혹한 옛 형식을 가져다 쓰면서도 당대의 문제의식을 음악 속에 담아낸 것은 브람스의 가장 위대한 승리라 할 것입니다. 마치 그것은 파리 최고의 스타 셰프에게 앙투안 카렘이 만들던 100년 전의 요리법을 가지고 현대식의 ‘뉘벨 퀴진’을 내놓으라고 하는 요구와 비슷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두렵고 어려운 길이지만 브람스는 좀 더 자신을 단련해가며 그 고독의 여정을 묵묵히 걸었습니다. 바로크 시대의 합주 협주곡 양식을 차용해 근대인의 음악을 써내려간 저 위대한 <2중 협주곡>이 바로 그 산 증거입니다. 특히나 2악장은 온전히 ‘가을을 위한 음악’이 아닐까요. 이 계절에 더욱 아름답게 울립니다.


(브람스 <2중 협주곡> 2악장 바이올린 율리아 피셔, 첼로 다니엘 뮐러-쇼트)


마지막은 브람스의 피아노 트리오곡입니다. 브람스의 실내악은 모든 곡이 명곡이지만, 특히나 이 3중주는 유려함 속에 심오함이 살아 있어 마치 잘 쓰인 단편의 교양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남은 11월은 이 곡 하나로 버틸 수 있지 않을까요? 나날이 가을이 분위기를 잡아가는 요즘입니다. 브람스의 음악으로 계절에 깊이를 더해봅니다.

(브람스 <피아노 3중주 제1번> 피아노 마르크 아믈랭, 바이올린 조슈아 벨, 첼로 스티븐 이셜리스. 

개정 이전의 1854년 초판본을 사용하여 연주했습니다.)

Balc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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