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 운동 왜 지우니?

카테고리 없음|2017. 9. 23. 23:25


농촌 살린 70年代 시대정신, 

우리 민족사서 의미있는 일

개도국선 가르쳐달라는데 우리만 없애고 싶어 안달

굳이 꼭 이래야만 하나요


   인터넷에서 새마을 노래를 검색하니 '50대 이상 어르신들은 다 아는 노래로…' 하는 설명이 나온다. 졸지에 어르신이 되었다. 하긴 보험 가입 권유 전화의 호칭도 아버님으로 바뀐 지 오래다. 그 호칭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옆에서 코 흘리고 자는 꼬맹이들을 보면 아버님이라고 다 같은 아버님이 아닌데 참으로 야속하고 섭섭하다. 상담원 제위께 참고 삼아 말씀드리자면 그 호칭으로는 절대 영업 성공 못 한다. 한 달에 100원만 내면 팔꿈치가 까져도 100만원씩 보장해 준다는 소리를 해도 귀에 안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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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우간다의 연결고리, 새마을운동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215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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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 된 자의 한탄을 늘어놓으려는 건 아니고 새마을 노래 이야기다. 가사 2절이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 길도 넓히고 푸른 동산 만들어 알뜰살뜰 다듬세'이다. 떠오르는 장면은 이렇다. 굴착기가 좁은 길을 양옆으로 쓱쓱 밀어내고 기중기는 초가지붕을 통째 들어 올리고.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 일을 괭이와 호미로 했다. 게다가 새마을운동은 농한기가 제철이다. 엄동설한과 비바람 속에서 흙투성이로 일했다는 얘기다. 추수하고 나면 할 일이 없는 나라였다. 따뜻한 아랫목에 앉아 화투 치던 손으로 시멘트를 비비고 '부로꾸'를 쌓았다. 그렇게 농로를 트고 하천을 개수하고 경지를 정리하면서 대한민국은 농사짓던 나라에서 농업 하는 나라로 바뀌었다. 3·1운동과 함께 새마을운동을 반만년 민족사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로 꼽는 이유다.


새마을운동이 차등 지원을 통해 이루어졌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열심히 하는 마을은 밀어주고 안 하는 마을은 알게 뭐야 넘어갔다. 분발하든지 죽든지. 이게 참 교묘한 전략이다. 개발도상국에서 새마을운동을 배우러 온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소생,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네 나라에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이 있습니까?" 죽으면 죽었지 옆 동네 잘 사는 꼴은 못 보는 기질이 없는 한 새마을운동은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시멘트와 철근이 옆 마을보다 덜 온 해에는 마을에 비상이 걸렸다. 원로들의 불호령이 떨어졌고 혼쭐이 난 이들은 새마을 지도자 교육이라는 사교육까지 받아가며(국가에서 했으니 공교육인가?) 다음해 시멘트 쟁탈전에 죽기 살기로 뛰어들었다. 새마을운동은 70년대의 시대정신이었고 농촌만이 아닌 도시와 공장까지 포괄하는 당대의 자조(自助) 운동이었다.


개발도상국 지원 업무를 맡고 있는 한국국제협력단에서 새마을운동 관련 공적 개발 원조사업을 대폭 축소하고, 지역 개발 사업에서는 새마을이란 명칭 자체를 아예 삭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새마을운동 정신과 그 실질적인 노하우를 개발도상국에 전파하는 새마을 청년 봉사단 프로젝트도 끝이다. 내세울 것, 자랑할 것도 별로 없는 나라에서 이러고 싶을까. 역사를 지우겠다는 의도는 알겠는데 그것도 봐가면서, 가려가면서 할 일이다. 이제 새마을운동은 낙후 농촌 개발 프로젝트인 후진타오의 '비제 모델'이나 시진핑의 '닝더 모델'에 저작권을 넘겨주게 생겼다. 국제사회가 인정하고 배우겠다는 자조(自助) 운동이 자기를 비웃는 자조(自嘲) 운동이 되었다. 이 정부가 하는 일이 하도 놀랍고 기발하여 이젠 어지간히 익숙해졌다 싶었는데, 역시 예상을 뛰어넘는 분들이다.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22/201709220162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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