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Chinese Communist Party)은 중국 공자당(Chinese Confucianist Party)이 될 것인가"

카테고리 없음|2017. 9. 12. 12:27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


[지난기사] 2016.9.7

  최근 중국의 한 지식인이 CCP가 20년 내 또 다른 CCP가 될 것이라고 유머 섞인 말을 한 적이 있다. 중국 공산당(Chinese Communist Party)이 중국 공자당(Chinese Confucianist Party)으로 변할 것이란 이야기였다. 실제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등장 후 가장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유가 사상의 약진이다. 마오쩌둥(毛澤東)도 자신이 죽으면 유가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예언하지 않았던가



중국의 한 유명 학자가 중국 지식계는 앞으로 유가 좌파, 유가 우파, 유가 마오파, 유가 자유주의파 등으로 사상 분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한 적이 있다. 이제 중국에서 마르크스주의는 껍데기에 불과할 뿐 유가 사상이 통치이념으로 자리 잡을 것이란 말이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 이후

마르크스주의는 껍데기만 남아

앞으로 중국과 관계 맺기 위해선

사회와 문화 분야로 영역 넓혀야


실제로 이런 전망이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은 다음 네 가지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첫 번째, 시진핑이 2013년 11월 산둥(山東)성 취푸(曲阜)에 있는 공자묘를 참배하고 또 공자연구원에서 연설했다. 공산당 창당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두 번째, 시진핑은 2014년 5월 베이징(北京)대의 대유학자 탕이제(湯一介) 교수를 예방했다. 세 번째, 시진핑이 2014년 9월 공자 탄생 2565주기를 기념하는 회의에 참석해 담화를 발표했다. 네 번째, 천라이(陳來) 칭화(淸華)대 국학연구원 원장이 2015년 7월 중공중앙기율검사위원회와의 인터뷰에서 “유가 문화가 중국 공산당원의 수양에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의 학습에도 초청을 받아 강연했다.



시진핑이 주창하는 ‘중국꿈(中國夢)’과 더불어 위의 네 사건은 ‘공산당의 유학화’ 예고편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한 대륙 신유학자들의 반응은 다양하다. 중국 정부가 유학을 존중하겠다는 신호로 보는가 하면 전통 사상에서 통치의 정당성을 찾으려는 시도로 해석하기도 한다. 또 ‘중국꿈’ 제시를 탈(脫)서구 프레임이 가동한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대륙 신유학의 대표자 격인 베이징사범대 천밍(陳明) 교수는 ‘중국꿈’을 자유주의와 공산주의로부터의 탈피로 설명한다. 반면에 간춘쑹(干春松) 베이징대 교수는 조금 다른 의견을 내놓는다. 국가와 신유가는 여전히 긴장 관계에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공산당이 유가를 이용하려 한다면 유가는 공산당을 교화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유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78년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정책 채택 이후다. 80년대 중국 정부는 근대화에 성공한 ‘아시아의 네 마리 용(한국·홍콩·대만·싱가포르)’ 모두가 유가 문화권 국가라는 점에 주목했다. 90년대엔 유가를 근대화뿐 아니라 마르크스주의를 대신할 국가 통합 이데올로기로 내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경제발전의 토대 위에서 조화사회론(和諧社會論)을 제시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부터는 공자 띄우기에 나섰다. 올림픽의 찬란한 개·폐회식은 중국이 이제 경제대국을 이뤘으니 앞으론 공자를 근간으로 하는 소프트파워를 구상할 단계가 됐음을 세계 만방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는 100년 전 옌푸(嚴復)나 량치차오(梁啓超)가 말했던 ‘부강의 꿈(富强夢)’이 성공했음을 뜻한다. 이른바 ‘부’와 ‘강’ 중 ‘부’에서는 일단 ‘역전의 역전’이 이뤄진 셈이다.



시진핑이 중국꿈에서 제시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은 이제 ‘부강의 꿈’의 성공으로 ‘서양 따라잡기’는 끝났다는 것이며 이를 토대로 이제는 ‘중국의 길(中國道路)’을 가겠다는 의지의 천명이다. 이 같은 시진핑 노선은 학계에서 마오쩌둥의 ‘계급중국’, 덩샤오핑의 ‘현대화’ 노선에 이은 제3의 노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자오펑(趙峰) 중국 공산당 중앙당교 교수는 시진핑 노선이 중국 공산당의 세 번째 담론 체계로 구축될 것임을 시사했다.


마오의 계급중국, 덩의 현대화 그리고 시진핑의 중국꿈으로의 일대 흐름은 전통 시기 중화제국 시스템의 기틀이 만들어졌던 진시황(秦始皇)에서 한무제(漢武帝)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흐름과 유사한 점이 많다. 마오는 혁명을 통해 군벌과 국민당 세력을 몰아내고 천하 통일을 이뤘다. 이는 진시황이 전국 7웅을 물리치고 처음으로 통일제국을 탄생시켰던 것과 비유된다. 실제로 마오는 생전에 자신을 진시황에 비유한 적이 있다.




덩샤오핑은 ‘무위(無爲)’ 정책을 통해 문혁으로 파괴된 것들을 바로잡고 기술관료 지식을 동원해 경제를 발전시켰다. 하지만 그 결과 빈부격차가 심화됐다. 덩은 서한시기 노자의 무위 정책을 실행한 두태후(竇太后)에 비유된다. 무위 정책의 결과 경제는 발전했지만 격차가 생기고 각지의 제후가 위세를 떨치게 됐다. 한무제는 동중서(董仲舒)의 천하사상에 의거한 중화제국의 통치 이데올로기를 수용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중화제국의 내러티브로 유학이 제시되면서 중화제국의 통치 시스템이 완성됐다고 볼 수 있다. 현재 시진핑 정부가 한무제처럼 유가 사상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도 덩샤오핑 이후 신자유주의 노선에서 비롯된 다양한 사회문제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와 맞물려 있다. 중국이 경제대국일 뿐만 아니라 문화대국이라는 이미지를 창출해 명실상부하게 제국의 면모를 갖췄음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노력의 소산이다.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된 이후 중국 통치 엘리트의 성격 변화는 이러한 흐름이 우연히 이뤄진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2007년께부터 고위 당정 간부가 기술관료형에서 사회관리형 즉 인문사회 계열 출신으로 바뀌었다. 전체적으로 ‘혁명가→노동자·농민간부→기술관료→사회관리인’ 순으로 변했다. 중국은 현재 인문학 지식인이 상종가를 치고 있다. 국가주석이 유학자를 직접 찾아가 만났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문화대혁명 시기 유학을 대표했던 펑유란(馮友蘭)이 체육관의 수많은 군중 앞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공자를 봉건을 옹호한 반동이라고 비판해야 했던 광경과 비교하면 실로 격세지감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중국의 변화를 마냥 환영할 수만은 없다. 유학의 통치이념화와 관련해 중국사·몽고사의 세계적 권위자인 오언 라티모어(Owen Latimore)가 오래전 일본에서 한 발언에 주목해야 한다. “공산당 역사를 회고해 보면 그 정권은 흔히 권위주의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이제 만약 중국에서 유교가 갖는 권위주의적 전통과 마르크시즘 정당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일당독재적 권위주의가 겹치게 된다고 하면 이것은 아마도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아주 엄준한 전제적(專制的)인 공산당을 탄생시킬 가능성도 있다. 반면에 공자가 가졌던 회의주의와 분석적인 경향, 또는 합리적·지성적으로 사물을 해결해 가는 경향이 강하게 표면에 나타날 경우에는 이것 또한 세계에서 유례가 없이 인간적인 어떤 것이 되리라 생각한다. 중국 공산당과 그 정치의 역사가 일천한 까닭에 장래 그 어느 쪽으로 향할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이영희 편저, 『8억 인과의 대화』)


라티모어의 두 예측 중 그 어느 것이 중국에서 현실화될지 아직은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현재 ‘사상 통제’가 나타나고 있는 여러 정황을 볼 때 전자의 방향으로 갈 확률이 후자보다는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다시금 유학이 체제유학화되고 그것이 공산당의 권위주의적 통치와 결합될 경우의 가공할 결과를 심각하게 우려하는 지식인도 중국에는 여럿 있다.


이제 중국의 부상과 관련해 유교제국화(儒敎帝國化)를 야심적으로 기획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문학자들이 가장 분주해지고 있다. 이러한 세기적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에서는 다양한 움직임이 있다. 대표적으로 진보를 자처하는 잡지 『현대사상』에서도 ‘지금 왜 유학인가’라는 특집을 마련해 15꼭지를 다뤘다. 하지만 한국의 진보든 보수든 이웃 대국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는 듯하다. 설마 아직도 중국을 실용이 아닌 공산주의 이념과 가치에 의해 움직여지는 곳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또 이번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사태에서 보듯이 이젠 ‘실용 중국’만으로는 중국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으며 ‘인문 중국’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중국과의 관계 맺기를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경제 교류에만 치중해 왔던 것을 사회와 문화 영역으로 넓혀 중국의 가치관이나 규범에 대해서도 알려고 노력해야 한다. 중국의 굴기가 문화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국의 입장을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경란

성균관대에서 중국의 사회진화론으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가, 유학, 지식인』 『현대 중국 지식인 지도』 『20세기 중국 지식의 탄생』 등 여러 저서가 있다. 아산서원 외래교수로도 활동 중이며, 홍콩 중문대학 및 중국사회과학원 방문학자를 역임했다.

중앙일보

케이콘텐츠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