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 총장이 말하는 '탈원전' 하면 안되는 이유


'탈원전 정부 정책' 작심 비판한 김도연 포스텍 총장

"한국, 원전 고장률 세계서 가장 낮아…가짜 정보가 국민 불안감 키워"


ICT 전력 수요 늘며 2040년 에너지 소비율 100배 급증

원전, 전력의 30% 차지…급진적 탈핵 '에너지 위기' 초래

'안전 우려' 기술로 풀어야…원전 자체가 중단돼선 안돼

국가 에너지 정책, 현재 모습 아닌 미래 보고 결정해야


   “한 국가의 에너지 포트폴리오는 여러 종류의 에너지원으로 구성됩니다. 마치 천 조각 여러 개를 누벼 만든 조각보와 같다고 보면 됩니다. 수요가 많으면 그만큼 조각보도 커져야 한다는 이치죠. 미래를 보지 못하고 현재 상황만 놓고 에너지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문제라고 봅니다.”


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지난 28일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한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과학기술 발전 과정

에서 문제가 있다면 해결책을 찾는 게 중요하지 발전을 멈춰버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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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우리 사회의 최대 쟁점 중 하나인 ‘탈(脫)원전’ 논란에 대해 거침없이 소신을 밝혔다.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 초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과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 등 두 차례에 걸쳐 과학기술 부처 수장을 지냈고, 지금은 국내 이공계 최고 명문대 중 하나인 포스텍을 이끌고 있는 국내 대표적인 학자 출신 과학기술 행정가다. 


김 총장은 지난 28일 서울 더플라자호텔에서 한국경제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원자력 발전을 포함해 인류의 기술 문명은 하나같이 ‘빛과 그림자’가 있다”며 “위험하고 더럽다고 미래에 대한 준비와 안전망을 확보하지 않고 그냥 버린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그는 인터뷰 도중 책 몇 권을 꺼냈다. 미국 UC버클리 재학생들이 뽑은 최고 명강의 교수인 물리학자 리처드 뮬러 교수가 쓴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과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낸 《대통령을 위한 에너지 강의》라는 책이다. 미래 컴퓨터 중심사회에 필요한 에너지 수요를 예측한 논문 한 편도 꺼냈다. 책과 논문 곳곳에 줄이 쳐져 있고 꼼꼼히 메모가 돼 있었다.


김 총장은 “한국 사회는 무지보다는 잘못된 정보를 너무 맹신하는 게 더 큰 문제”라며 “잘못된 지식과 오해를 과학적인 합리성과 근거로 불식하는 일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현재 팽팽하게 맞선 한국 사회의 탈원전 논의를 어떻게 봅니까.

“원자력은 문명사회가 가진 여러 기술 중 하나입니다. 모든 기술 문명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습니다. 빛이 더 세냐, 그림자가 더 세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원자력 역시 둘을 비교했을 때 빛이 더 밝아서 써온 겁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건 실상은 반핵운동입니다. 서방세계에서 최악의 원전 참사인 체르노빌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은 것은 반핵진영의 철저한 감시가 있었던 덕이죠. 원자력이든 반핵운동이든 모두 중요한 자산입니다. 원자력은 더 좋은 기술이 나온다면 그때 버리면 됩니다. 원전은 핵폐기물이 나오고 위험하다고 안 쓰면서 석탄은 왜 사용합니까. 석탄도 유해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급진적 탈원전이 국부를 흩트린다고 했는데요.

“전력 발전 산업은 기간산업입니다. 한국의 전력산업 3분의 1은 원전이 맡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든 에너지 포트폴리오는 조각보 같습니다. 조선시대 여인들이 작은 조각을 누벼 만든 조각보 말입니다. 앞으로 에너지 수요가 대단히 늘어날 것이고 그래서 이 보자기를 크게 만들어야 합니다. 태양광도 포함해야 하고 작든 크든 다 긁어 모아야 합니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섬이나 다름없습니다. 태양광도 충분치 않고 풍력을 하기엔 바람도 적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준비와 계획 없이 갑자기 3분의 1 조각을 날려버릴 수는 없습니다. 저도 원전이 없어졌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에너지로 가는 데까지는 교량이 필요합니다.” 


역사적으로 ‘산업혁명은 곧 에너지 혁명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미국 경제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2011년 《3차 산업혁명》이라는 책에서 신재생에너지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지금 얘기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은 정보통신기술(ICT) 혁명을 통한 사회 변화를 뜻하는데 여기에도 에너지의 중요성이 강조됩니다. 작년에 황철성 서울대 교수 연구팀이 낸 논문을 보면 지금 같은 속도면 2040년께 지금보다 100배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세계에 화력발전소를 수천만 개 지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에너지 정책은 지금이 아니라 훨씬 멀리 바라보고 결정해야 합니다.”


탈원전 정책을 반대하는 사람을 ‘원자력 마피아’로 규정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기술의 문제가 이념화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큽니다. 기술의 문제와 이념은 다른 것입니다. 탈원전 하면 ‘친정부’ ‘진보’라고 하고 그게 아니라고 하면 ‘보수’ ‘원전 마피아’로 낙인 찍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분위기는 우리 사회에 팽배한 집단 이기주의가 원인이라고 봅니다. 예전에 의사와 약사 간에 의약분쟁이 있을 때도 의료 마피아, 약사 마피아로 부른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의료 마피아가 있다고 해서 병원을 다 없앨 수는 없는 것입니다. 원전 마피아가 있다고 원전을 다 없애라는 주장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격입니다.”


국민의 불안감이 지나치다고 보는지요.

“불안감은 당연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불안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의 불안을 인정해야 합니다. 원전에 대한 불안감은 우리 사회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림자만 보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원전에 대한 큰 오해가 있는데 핵폭탄과 혼동하는 것입니다. 원자력발전소에 아무리 유능한 물리학자 수십 명을 넣어놔도 핵폭탄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원폭이 100% 알코올이라면 원자력 발전은 알코올이 4%밖에 되지 않는 맥주 정도입니다. 한국은 40년 가까이 원자력 발전을 안전하게 해왔습니다. 원전 고장률도 전 세계에서 가장 낮은 편입니다. 모두가 원자력을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이런 오해로 인한 불안감은 해소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 사회는 많은 사람이 너무 많은 잘못된 지식을 알고 있다는 게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정책 결정자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에너지 정책은 국가 존망을 결정하는 것이고 대통령은 반드시 정확한 정보를 알아야 합니다. 리처드 뮬러 교수는 꽤 유명한 강의를 합니다. ‘대통령을 위한 물리학’이라는 강의인데 책도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40년 뒤 대통령이 된다면 꼭 갖춰야 할 최소한의 물리학 지식을 전달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중 제일 중요한 분야가 에너지입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탈원전 정책이 붐을 이루자 뮬러 교수는 《대통령을 위한 에너지 강의》란 책을 다시 씁니다. 원자력 에너지는 생각보다 안전하고 핵폐기물 문제는 어려운 일이 아니라며 에너지 정책을 바꿀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어요. 주문한 내용은 명료합니다. 원자력 프로그램을 활발하게 장려하고 국민에게 중요성을 설득하라고 합니다.”


탈원전 논의 과정에서 꼭 고려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요.

“인류를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게 한 게 기술입니다. 기술 덕분에 편하게 살게 됐지만 무결점 기술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원전을 포함한 에너지 문제를 원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오해나 편견 없이 봐야 합니다. 논쟁이 있겠지만 공론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게 해서 원전을 포기하는 게 낫겠다고 판단하면 원전을 포기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런 결정이 내려진다면 그로부터 새롭게 생긴 그림자가 무엇인지, 그리고 준비가 됐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결국 기술 발전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로 들립니다.

“언젠가 과학고에서 강연하는데 한 학생이 과학기술의 빠른 발전이 사회를 어지럽힌 것은 아니냐고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질문이 틀렸다고 말했습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이렇게 길게 살아남지 못했을 거라고. 실제 1900년대 초까지 우리 사회 기대 수명은 30세에 불과했으니까요. 우리 사회는 너무 빠른 발전의 후유증으로 기술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지성’이라고 하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합니다. 발전 과정에 문제가 있다면 해결책을 찾는 게 중요하지 발전을 멈춰버리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김도연 포스텍 총장은 과학기술 부처 장관만 두번

공학자 출신 행정가

190㎝에 이르는 장신으로 ‘키다리 신사’를 연상케 하는 공학자 출신 과학행정가이자 교육자다. 경기고 2학년 때까지 문과반이던 그는 고3 때 공대 전망이 좋다는 담임선생님의 말을 믿고 이과반으로 옮긴 뒤 서울대 재료공학과에 입학했다. 학부를 졸업한 뒤 KAIST 전신인 한국과학원에 첫 기수로 입학해 석사를 마쳤다. 당시 과학원 학생들은 병역 의무가 면제되고, 석사 과정인데도 직장인 평균 월급의 3분의 1이나 되는 1만5000원을 생활비로 보조해주는 등 조건이 좋았다. 과학원 졸업생 중 프랑스로 유학하는 학생에게는 프랑스 정부에서 특별 장학금을 제공한다는 공고를 보고 유학길에 올랐다. 최양희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도 당시 함께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프랑스 블레즈파스칼대(클레르몽페랑 제1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재료 성질을 연구하는 재료공학 중 무기재료(세라믹)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 꼽힌다. 발표한 논문은 200편이 넘고 해외 유명 학술대회 초청을 받아 40회 이상 강연했다. 대학 시절 조정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축구나 야구는 스타플레이어가 있지만 조정이야말로 여덟 명의 선수가 한몸처럼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배려와 협력을 배우기 가장 좋은 스포츠 종목”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포스텍에 조정 동아리를 창단했다. 


△1952년 부산 출생 

△경기고, 서울대 재료공학과 졸업 

△KAIST 석사, 프랑스 블레즈파스칼대 박사

△1982년 서울대 재료공학과 교수 

△2005~2007년 서울대 공과대학장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2008~2011년 울산대 총장 

△2011~2013년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장관급)

△(현)포스텍 총장 


박근태/유하늘 기자 kunta@hankyung.com 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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