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세이무어 호프만(Philip Seymour Hoffman)을 그리워 하며"


<마지막 4중주 A late quartet>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을 그리워한다. 


출처 다음무비

edited by kcontents


어느 날 뜻하지 않게 우리 곁을 훌쩍 떠나버린 그(2014년 약물 과다복용으로 급사하였다)는 나오는 영화마다 놀랍고도 비범한 연기로 우리의 눈길을 완전히 사로잡았던 세기의 명배우였다. 


2005년 <카포티>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고, 2012년에는 <마스터>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희대의 절찬을 받으며 배우 인생 최고의 한 해를 보내고 있었다. 그 해 호프만은 또 한 편의 영화를 찍었는데, 야론 질버만 감독의 <마지막 4중주 A late quartet>였다. 


<마지막 4중주>라는 의역도 멋지지만, 정확히는 ‘어느 후기 4중주 작품’이라는 뜻이다. 영화 속에 등장

하는 베토벤의 <현악 4중주 제14번> Op.131을 일컫는다. 


베토벤은 모두 16곡의 현악4중주를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12-16번을 우리는 그의 ‘후기 현악4중주’라고 부른다. 이들은 베토벤이 이 세상에 남긴 최후의 음악이요, 그 음악의 가장 신비로운 준령(峻嶺)이며, 또한 그가 쓴 음악 가운데서도 가장 심오한 보물들이다. 


만년의 베토벤은 교향곡과 같은 거대하고 외포화된 양식과 결별하고 오직 현악 4중주에 천착했다. 그것은 기악음악의 가장 기본 단위로 연주되며, 또 자신의 가장 내밀한 심상을 심오하게 담아낼 수 있는 최고의 도구이기도 했다. 베토벤은 자신의 모든 삶을 이 현악 4중주 속에 투영했다. 절망과 좌절, 절대적 신에의 귀의, 저항할 수 있는 고독, 내일에의 흐릿한 희망 등 복잡하고 복합적인 감정의 덩어리들이 무채색의 화성적 음악을 타고 고통스럽게 흘러내린다. 사실 음악의 모든 지점을 관통하는 건 ‘무채색의 쓰디 쓴 고통’이다. 만년의 베토벤은 고통스러웠고, 그 자신의 괴로움과 고뇌를 남김없이 그 음악 속에 쏟아 부었던 것이다. 


후기 4중주곡들은 하나 같이 어렵다. 귀에 알뜰히 전해지는 선율이 단 하나도 없고, 길이도 무척이나 길다. 허세로라도 도저히 들어주기 힘든 음악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음악에 중독되고, 일종의 신앙심과도 같은 경건한 감동을 느끼게 된다. 베토벤이 이 세상에 남긴 최고의 음악은 아마도 이것들일 것이다.


(<마지막 4중주>. 크리스토퍼 월켄, 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등의 명연과 야론 질버만 감독의 깊이 있는 

연출이 어우러져 최고의 감동을 선사한다.)


영화 속에서 결성 25주년을 맞이한 ‘푸가 4중주단’은 베토벤의 14번 현악 4중주를 준비하고 있다. 연주시간 40분, 악장은 일곱 개. 중간에 단 한 호흡도 쉴 수 없고, 출발하면 멈추지 않고 바로 종악장의 최후 순간까지 거침없이 내달아야 한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악단의 정신적 지주이자 남은 세 주자들의 스승이기도 한 피터가 파키슨 병 선고를 받는 것이다. 에고이스트 제1 바이올린 주자, 그에게 억눌린 콤플렉스가 있는 제2 바이올린(이 배역을 호프만이 연기한다), 이 상황이 괴롭기 만한 비올라 주자. 남은 셋은 흔들리기 시작하고, 갈등하고, 분열한다. 그러나 베토벤의 음악은 어쨌거나 앞으로 나아가야만 연주할 수 있다. 아픔이 있고, 크고 작은 사고와 변수가 생겼다고 거기서 주저앉는다면 그 순간 음악은 거기서 끝이다. 중간에 쉴 수 있는 틈이 단 한 순간도 없는 7악장의 엄혹한 음악이기 때문이다.


(베토벤 현악 4중주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알반 베르크 4중주단(Alban Berg Quartet)의 제14번 연주. 냉연하고 차가운 듯 

하면서도 인간의 감정을 기저에서부터 뒤흔들어 놓는 거대한 격정이 넘치는 명연이다.)


야론 질버만 감독은 현악 4중주의 내밀한 구조를 그대로 영화 속으로 끌고 와 완성도 높은 서사를 만들어 내고 있다. 1바이올린과 2바이올린의 위계질서 속에 얽힌 인간적 갈등, 중재자 비올라가 자아내는 뜻밖의 긴장관계, 모두를 아우르는 좌장으로서의 첼로의 정체성 등 - 현악 4중주라는 음악 형식을 제대로, 또 가장 깊이 있게 아는 감독만이 그려낼 수 있는 심오한 서사가 더욱 영화에 우리를 몰입하도록 만든다.


다시금 무대 위에 오르는 푸가 4중주단. 그들은 어떻게든 14번 4중주를 7악장의 마지막까지 연주해낼 수 있을까? 겨울날의 서늘한 뉴욕 풍경이 더위에 지친 우리를 달래주고, 그보다 더욱 심연으로 내려앉은 베토벤의 음악이 우리 마음 속의 그 어떤 흐릿함마저 남김없이 정화시켜주는 영화다. 여러분 모두에게 추천 드리고 싶다. 


발코니

케이콘텐츠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