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플리(Ripley)를 찾아서


The 25 Greatest summer films

The Talented Mr. Ripley,2000


2000년도 작 <리플리(원제 : The Talented Mr. Ripley)>의 배경 이태리 이스키아섬 source Ischia Review.com


지난 주 영국의 가디언(Guardian)지가 ‘여름영화 25선’을 뽑았는데, 1등으로는 앤서니 밍겔라 감독의 2000년도 작 <리플리(원제 : The Talented Mr. Ripley)>가 선정되었다. 


(<리플리>를 여름영화 1위로 선정한 가디언지 기사)


미국 텍사스 출신의 작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리플리’ 시리즈의 첫 번째 편에 해당하는 <재능 있는 리플리씨 The Talented Mr. Ripley>를 원작으로 삼은 이 영화는, 사실 원작소설보다는 알랭 들롱이 주연을 맡은 르네 클레망 감독의 1960년작 <태양은 가득히 Plein Soleil>의 리메이크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태양은 가득히>가 욕망과 파멸, 선악과 죄의식 같은 선명한 갈등을 뚜렷한 대조로 선 굵게 다룬 20세기적 영화라면, 후속작 <리플리>는 원작 소설을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보며 정교한 재해석을 시도한 작품이다. 그래서 <태양은 가득히>의 리플리가 이글거리는 눈빛을 가진 알랭 들롱이라면, 후속작의 리플리는 보다 지적이며, 동시에 소심하고 우울하며 비굴한 느낌마저 풍기는 복잡한 캐릭터다. 그래서 연기파 맷 데이먼에게 이 배역을 맡겼을 것이다. 


(보다 사변적이고 복잡한 캐릭터로 변신한 21세기의 리플리는 맷 데이먼이, 환락에 젖어 사는 재벌 2세 그린리프역은 주드 로가 연기했다.)


남이탈리아를 떠돌며 방탕한 생활을 즐기던 재벌 2세를 다시 뉴욕으로 데려오기 위해 지성미와 열등감이 교묘하게 뒤섞인 머리 좋고 재주 많은 청년 리플리가 이탈리아로 떠난다. 앤소니 밍겔라 감독은 여기서 장면과 맥락에 따라 음악을 교묘히 배치하여 작품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는데, <태양은 가득히>가 니노 로타의 유명한 주제 음악을 몇 가지 변주로 다듬어 전편 내내 들려주는 것과 달리 <리플리>는 음악 영화로 불러도 될 정도로 클래식과 오페라, 재즈가 매장면마다 아름답게 흘러 나온다.

(<My funny Valentine>. 영화 속 재즈 클럽 ‘베수비오’에서 

맷 데이먼이 노래하는 이 불후의 재즈 넘버는 너무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클래식 음악도 자주 등장하는데, 영화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이탈리아 고전가곡 풍의 노래나 후반부 베네치아 장면의 ‘스타바트 마테르’ 등은 모두 창작곡이다. 대신 리플리가 살인을 저지르고 본격적으로 변신하기 시작하는 로마 장면에서 기념비적 명곡이 흘러나온다. 그는 우연히 오페라 극장을 찾았다가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 <예프게니 오네긴> 중 유명한 ‘결투 장면’을 보게 되는데, 바로 극중에서 절친으로 등장하는 오네긴과 렌스키가 사소한 오해 끝에 권총으로 결투를 벌여 렌스키가 죽는 그 장면이다. 


(영화 속 오페라 장면)

(오페라 <예프게니 오네긴> 결투 장면. 바리톤 드미트리 흐보로스토프스키, 테너 라몬 바르가스)


아름다운 영상미와 정교하고 심리적인 연출, 뛰어난 음악 사용 등으로 가득 찬 완성도 만점의 영화였지만 당시의 평가는 감독의 전작인 <잉글리쉬 페이션트> 등에 비해 박하기 그지 없었다. 


그래서일까. 앤소니 밍겔라는 이 영화 이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로 건너와 클래식과 오페라에 관한 자신의 해박한 지식을 십분 활용해 불후의 프로덕션 <나비부인>을 남긴다. 선명하고 황홀한 달빛의 이미지, 일본 전통연희인 분라쿠(文樂)과 일본 공연예술의 독특한 요소인 쿠로고(黒衣)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아름다우면서도 가슴 서늘한 비극을 창조한 이 작품은 지금도 뉴요커들을 열광시키는 기념비적 명연출이다.


(앤서니 밍겔라 연출의 <나비부인> 중 1막 피날레.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들 하지만, 앤소니 밍겔라의 삶이 실제로 그러했다. 한창 나이인 50대 중반에, 영국의 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다가 명운을 달리한 것이다. 


(<나비부인> 중 ‘어떤 개인 날 Un bel di vedremo’, 

소프라노 패트리샤 라셋. 앤서니 밍겔라 연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이제 사람들은 그가 남긴 영화와 오페라로 그를 기리고 이야기한다. <나비부인>의 몽환적인 무대가, 나폴리 앞바다 이스키아와 프로치다섬에서 펼쳐졌던 쓰라린 비극 <리플리>의 감동이 그렇게 또 아련히 되새겨지는 여름날이다.

발코니

케이콘텐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