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적 지옥 한국, 지질학적 지옥 일본

카테고리 없음|2017. 7. 4. 23:08


박훈 서울대 교수 동아시아사


   도쿠가와 시대(1603~1868) 일본인들은, 조선은 나약하여 숱한 외침을 받았고, 타국에 복속되기를 밥 먹듯 했다고 비아냥거렸다. 반면 일본은 다른 나라에 침략당한 적도 없고, 전쟁에 져서 속국으로 전락한 적도 없다고 으스댔다. 일본은 ‘불하지국’(不瑕之國·흠이 없는 나라)이라는 것이다.


한반도는 역사상 1000번에 가까운 외침을 받았다고 한다. 그에 비해 일본은 놀랍게도 딱 두 번이다. 한번은 13세기에 몽골군이 송나라, 고려 사람들을 동원해서 북규슈에 침입했다가 태풍으로 패퇴한 적이 있고, 또 한 번은 태평양전쟁 때의 미군이다(고대의 신라해적이나 여진족 침입 등 소소한 것은 제외). 놀라운 수치다. 한반도와 일본열도는 지척거리에 있지만, 그 지정학적 조건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큰 자연재해 없는 한반도는 지질학적으론 천국, 지정학적으론 지옥이며, 일본은 그 반대라 할 수 있다.


이것은 현재 한국인, 일본인의 실생활 중에도 드러난다. 내가 일본에 유학하고 있을 때, 저렴한 맛에 구한 목조 월셋집은 한달에 한번씩은 흔들렸다. 한번은 책장에서 책이 튀어나온 적도 있었다. 이를 듣고 한국의 지인들은 그런 데서 어떻게 사냐고 합창했다. 오늘 지진이 있었다는 얘기에 무심해 하던 일본 친구들은 한국에서 가끔 들리는 북한 도발 뉴스에는 한결같이 되물었다. 그런 나라에서 어떻게 사냐고. 내가 하도 단련되어서 괜찮다고 하니 왈, “아, 북한 도발은 우리 지진 같은 거구나.”


이웃나라인데 지정학적 조건이 어떻게 이렇게나 다를 수 있을까. 이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잘못된 상식 하나를 고쳐야 한다. 많은 사람(특히 서양과 일본학자)들은 동아시아는 중국과 일본 양대 세력의 각축장이었으며, 한반도는 그사이에 끼여 가혹한 운명을 겪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중국과 일본이 청일전쟁 이전에 전쟁을 한 것은 세 번뿐이다(7세기 나·당연합군과 백제유민세력·야마토 정권군대가 백강 앞바다에서 벌인 해전, 13세기 몽골군과 가마쿠라 막부군 전투, 16세기 임진왜란). 2000년이 훌쩍 넘는 긴 역사 속에 불과 3번 무력 충돌한 것은 놀라울 정도로 적은 숫자이다. 말할 것도 없이 중국이 압도적으로 강했기에 일본이 지역질서에 도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중국과 일본에 ‘끼어있지’ 않았다.


그럼 한반도의 ‘가혹한 운명’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중국대륙의 한족과 북방유목민족이라는 ‘진짜(?)’ 양대 세력의 각축 때문이었다. 진한제국 이래 역대 한족왕조들의 주적은 흉노, 돌궐, 몽골, 거란, 여진 등 북방세력이었다. 저 거대한 만리장성이 누굴 두려워해서 건설되었는지 생각해보라. 그 치열한 쟁투로 중국역사의 4분의 1은 북방유목민족이 세운 정복왕조(5호 16국과 북조, 요, 금, 원, 청 등)였다.


출처 Wikipedia

edited by kcontents


그런데 얄궂게도 양대 세력 모두에게 한반도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중국이 머나먼 서쪽의 장안에서 베이징으로 수도를 옮긴 이후로는 더더욱 그러했다. 그 때문에 양대 세력이 충돌할 때마다 한반도는 예외 없이 전화에 휩싸였다. 수·당-돌궐 패권다툼과 고구려 침략, 송나라와 대치한 거란족(요나라)과 몽골군(원나라)의 고려침략, 명에 도전한 여진족의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등. 이 관점에서 보면 임진왜란은 돌연변이적인 막간극이었다.


18세기 말 이후 2000년 동안 맹위를 떨쳤던 유목세력이 쇠락하고 대신 해양세력이 부상하자, 세력 각축의 양상도 달라졌다. 이제야(?) 대륙세력(중국, 러시아)과 해양세력(일본, 미국)의 각축이 벌어진 것이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한국병합, 한국전쟁이 그것이다. 한쪽 당사자가 해양세력으로 바뀐 것뿐, 지역질서 전환기에 한반도는 예외 없이 ‘가혹한 운명’에 내던져졌다.


반면 동일본 대지진에서 지상지옥을 겪어야 했던 일본은 지정학적으론 행운아였다. 중국이 일본에 군사행동을 일으키기에 동중국해는 너무 넓고 험했다. 만주를 통해서 들어오는 압력은 한반도 정치세력이 강력히 저항한 덕분에 열도까지 이르지 못했다. 일본역사가들이 한반도를 ‘일본역사의 방파제’라고 하는 까닭이다. 


중국은 신라의 대당전쟁 이후 한반도 직할화를 포기하고 간접지배에 만족했다. 자연히 그 너머 일본은 관심 밖이었고, 조공책봉체제에 들어오는 것조차 강요하지도 않았다(역대 중국정권에 한반도의 조공은 필수사항이었다).


한국사가 위대한 것은 광개토왕이 있어서도,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해서도 아니고, 바로 이 지정학적 지옥 속에서 악전고투해 살아남은 점에 있다. 다른 나라와 다른 한국사회의 유별난 특징이 있다면 대개는 여기서 비롯된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지옥은 역시 겪지 않는 게 좋다. 또다시 지역질서 재편의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다. 지옥이 장구한 세월 동안 여러 번 되풀이되어 온 걸 보면 역시 구조적인 원인이 있고, 운명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구조든 운명이든 이번만큼은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선 민족의 이름을 앞세운 철부지들의 허세도, 젖내 나는 이상주의적 헛소리도 벌레 보듯 쫓아버려야 한다. 오로지 차가움과 노회함만이 지옥을 돌려세울 수 있다.

경향신문




원문보기: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706282107005&code=990100&utm_campaign=share_btn_click&utm_source=facebook&utm_medium=social_share&utm_content=khan_view&utm_campaign=share_btn_click&utm_source=urlcopy&utm_medium=social_share&utm_content=mkhan_view#csidx5ee56fc5c2b53858b80c75afa101e92 

케이콘텐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