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선언은 너무 이르다"


김세형 칼럼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탈원전 에너지정책을 선포했다. 설계수명 40년이 돌아오는 원전은 더 이상 연장하지 않고 고리1호기처럼 폐쇄의 길로 가겠다는 것이다. 



미세먼지와 CO2를 마구 내뿜는 석탄발전소 10기를 줄이겠다고 했다. 그동안 국내 발전에서 석탄은 39.3%, 원전은 30.7%를 담당했는데 클린(clean)과 안전(safe)의 시대로 가겠다는 것이다. 누가 청정하고 안전이란 고상한 가치를 마다하겠는가. 지구상 탈원전을 선언한 국가는 이탈리아 벨기에 독일 대만 스위스 스웨덴 6개국밖에 안 된다. 한국이 7번째에 해당한다. 명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만은 심한 지진대에 놓여 있어 아시아 국가 가운데는 유일하고 이탈리아는 체르노빌 원전사고(1986년)를 목도하고 4기밖에 없는 원전을 그냥 닫아버렸다. 


스웨덴은 입장이 오락가락함을 감안하면 독일 벨기에 스위스 3개국밖에 남지 않는다. 스위스는 1984년부터 국민투표를 여러 차례 실시하다가 금년 5월 23일 다섯 번째 국민투표에서 마침내 통과됐다. 스위스의 원전 의존도는 35%(원전 5기)이며 탈원전 시 연간 전기료 370만원을 더 물어야 할 것이라는 엄포에도 국민은 그 길을 택했다. 


원전은 스리마일(1979년), 체르노빌, 그리고 후쿠시마(2011년) 사고에서 목격하듯 한번 터지면 엄청난 재앙이다. 인명 살상은 말할 것도 없고 방사능이 퍼져 체르노빌의 경우 수십 년간 그 근처에 생물이 살 수 없었다. 특히 일본은 높은 기술 수준을 자랑하는 국가임에도 자연재해 앞에는 속수무책임을 보고 환태평양 지진대 한가운데 위치한 대만은 즉시 탈원전을 선언할 정도였다. 한국도 경주지진사태로 공포심이 전이됐다. 그러나 대만 차이잉원 정권은 최근 원전 재가동을 승인하며 탈원전을 포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전에는 치명적인 유혹적 요소가 있다. ㎾당 발전단가가 68원으로 석탄화력(74원), LNG(101원), 신재생에너지(157원)보다 훨씬 싸다. 그리고 이산화탄소나 미세먼지를 뿜지 않아 깨끗하다. 사고만 없으면 최고다. 운송수단에 비유하면 콩코드여객기 같다고나 할까. 


전 지구적으로 원전을 갖고 있는 나라는 33개국이다. 미국(99기) 프랑스(58기) 일본(42기) 중국(36기) 러시아(36기) 등의 순으로 발전소를 많이 보유하고 있다. 앞서 지적한 대로 중부 유럽 벨트는 탈원전을 택하는 상황이지만 미국은 오바마 정권 때 5기를 스리마일사고 이후 30여 년 만에 허가했다. 중국은 무려 48기를 건설 중이거나 추가 건설계획을 갖고 있다. 영국도 15기를 건설할 계획이다. 미국 중국 영국은 어리석은가. 후쿠시마 이후 원전 냉각 기술도 크게 발전하는 추세이다. 




한국은 5기가 건설 중이고 6기(신한울 3·4호, 천지 1·2호, 대진 1·2호)는 이번 탈원전 선언으로 중단될 운명이다. 건설 중인 원전 가운데 신고리 5·6호기는 공정이 30%에 달해 그대로 완료될 전망이다. 


여기서 일본을 잘 봐야 한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발전량의 30%를 담당하는 원전 가동을 올스톱시켰다. LNG 발전량을 크게 늘렸다. 그로 인해 LNG 수입의 대폭 확대로 국제수지 적자가 확대되고 전기료가 산업용의 경우 30%, 민간은 20% 이상 급상승하니 견디지 못하고 아베 정권은 원전 재가동 승인에 들어가 8기가 승인받고 5기는 재가동에 들어섰다. 


독일은 원전 올스톱 이후 전기료가 거의 3배나 뜀박질해서 겨울에도 난방을 제대로 못한다는 비명 섞인 생활상이 기사화되곤 한다. 독일 스위스가 그래도 탈원전 선언이 가능한 이유는 이웃나라에서 전선을 연결해 수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사실상 섬나라여서 그게 불가능한 게 첫 번째 난관으로 꼽힌다. 신재생에너지는 왠지 클린해 보이고 꿈의 노스탤지어 같지만 그냥 용어만 그럴듯할 뿐이다. 결국 태양광 풍력을 말하는데, 스위스도 신재생은 5%밖에 안 되고 독일(30%)을 가보면 웬만한 산등성이에는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엄청난 소음을 뿜어대며 돌아가고 태양광은 광활한 면적에 패널을 설치해 자연 훼손이 말이 아니다. 이상하게도 원전은 좌파들의 공격 대상인데 아마 풍력발전기 태양광 설치도 환경단체들이 반대할 것 같다. 


한국의 발전능력은 현재 대략 1억㎾이며 피크 때 8500만㎾를 사용해 15%의 예비율을 가지고 간다. 선진국의 20~30%보다는 낮다. 1인당 에너지 사용량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매년 소비량이 증가해 2030년에는 1억3600만㎾를 예상한다. 원래 한 기당 140만㎾를 발전하는 원전 11기를 더 건설하면 1560만㎾가 늘어 증가분의 절반을 충당하려 했다. 그런데 이제 되레 그때까진 11기를 추가 폐쇄해야 하므로 모든 구상이 수포로 돌아갔다. 


탈원전 방침에 교수 230명을 대표해 반대성명을 주도한 주한규 교수(서울대 원자핵공학)는 말한다. "원전 폐쇄로 차질을 빚는 발전량은 가스발전 외에 답이 없다. 미국의 셰일가스 같은 것이다. 신재생에너지는 말만 번지르르하지 5%를 넘기 어렵다. 그동안 가스 가격이 많이 떨어져 원전을 대체하는 데 전기료 30% 가량을 더 부담하면 되겠지만 세계적인 수급불균형으로 가스값이 뛰는 날엔 난리가 날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일단 원전과 석탄을 줄이고 가스 발전을 늘리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가스 발전도 원전에 비하면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 발생량은 상당하다. 주 교수는 "이것은 에너지 안보 면에서 상당한 모험"이라고 지적한다. 그렇다고 원전에서 100% 안전이란 없다. 판게아(pangaea)를 깨부수는 것 같은 엄청난 지각변동이 닥친다면 모든 원전은 재앙이다. 아주 먼 미래는 태양광 발전만 남으리란 보고서를 읽은 적이 있다. 그 이전까지는 비용과 효율이란 두 지점 사이의 어딘가를 따라가야 하는 게 인간의 숙명이라 생각한다. 




그럼 대안은? 

주 교수는 문 대통령의 탈원전 선언문에서 단서를 찾으라고 한다. "…후쿠시마 원전이 지진으로 인해 1368명이 사망하고, 세월호처럼 오래된 게 또 다른 원인을 제공했다." 그는 이 3가지 모두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후쿠시마 원전은 지진이 아닌 쓰나미가 원인이었고 역사상 지진으로 인한 원전사고는 없었으며, 후쿠시마 때 사망자는 방사능으로 인한 경우는 한 명도 없었으며 40년을 넘긴 원전도 미국 51기가 재허가를 받아 운전 중이다. 재가동 원전은 사실상의 해체를 거쳐 완전 새 부품을 채워넣어 세월호와 비교하는 것도 안 맞다. 


한국은 지진대가 아니며 경주지진은 5.8로 내진설계 6.5보다 한참 낮은 수준이었다. 하늘이 무너진다며 우르르 뛰어가는 숲속의 동물무리와 인간은 다르다. 인류의 이성과 과학을 믿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설계수명 40년을 넘겨 재연장 가동하는 원전은 51기이다. 미국서도 60년을 향해 가는 원전이 상당히 많다. 한국도 그 길 외엔 묘수가 없다. 더욱이 우리는 원전산업에서도 크게 한몫 보는 국가다. UAE 원전 수주에서 20조원을 벌고 향후 운전 및 보수에서 57조원, 합쳐 77조원을 벌게 돼 있다. 원전을 신규 건설하는 국가가 많은데 한국이 탈원전으로 가면 수주가 불가능하고 또 국내 원전을 개보수하는 등의 원전산업을 죽이게 된다. 원전 건설, 유지, 해체 기술을 키워 나가는 게 유리할 것이다. 


전력 발전과 전기료는 산업의 흥망까지 좌우한다. 탈원전 입장을 밝히면서 산업용 전기료 20%를 올리겠다고 했다. 법인세도 올리고 소득세도 높이고 전기료도 올리고 도대체 기업·국민은 어디서 돈을 벌어 부담해야 할까. 스위스가 33년간 고뇌 끝에 결정한 사안을 한국은 치열한 검토 없이 달랑 대통령 선언 한마디로 끝낼 일일까. 


엉뚱한 비유지만 비트코인을 결제수단으로 공식 허용한 나라는 일본뿐인데 한국의 입장을 물은즉 "그런 방면에서 세계 2등할 필요가 있냐?"는 당국의 답변이 돌아왔다. 탈원전도 마찬가지 아닐까. 미국 일본을 앞서갈 필요가 있겠냐고. 

[김세형 고문]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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