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워 할 것 없어요, 나는 죄를 지어서 죽는 게 아니니까요." 마리 앙투아네트 Marie Antoinette: VIDEO

카테고리 없음|2017. 4. 19. 00:56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1755 ~ 1793)

풀네임은 마리 앙투아네트 조제프 잔 도트리슈-로렌(Marie Antoinette Josephe Jeanne D'Autriche-Lorraine).


1755년 11월 2일에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와 프란츠 슈테판의 11번째 딸로 비엔나에 위치한 호프부르크 궁전에서 태어났다. 14세 때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의 우호를 증진시키기 위해 루이 15세의 손자 루이 16세에게 시집와서 왕세자비가 되었다. 얼마 후 시할아버지 루이 15세가 천연두로 세상을 떠나고 남편이 왕위에 올라, 마리 앙투아네트는 고작 10대의 나이로 프랑스의 왕비가 되었다. 





루이 16세와의 사이에서 2남 2녀가 있었다.


"하느님, 우리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분명 우리는 그것에 대해 속죄했습니다. - 1790년 10월의 일기

''화려해서 더욱 외로웠던, 베르사유의 마지막 장미."


"살아 생전엔 수많은 미움과 증오, 원망을 받았고 죽은 후엔 왕정 시대의 왕비로선 나쁠게 없던 여인으로 재평가받은 인물."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왕비.


하지만 불행한 삶을 산 맏딸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를 제외하면 자녀들은 모두 어린 나이에 죽었다.

프랑스 혁명 때 단두대에서 처형당했으며 남편을 비롯한 가족 대부분이 혁명으로 인해 처형당하거나 몰락하게 된다.


비교적 오래 산 마리 테레즈 샤를로트 역시 자녀를 낳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와네트의 직계는 단절되었다


절대왕정 시대의 왕족으로서 교육받았고 그에 따라 행동했으나, 이미 유럽사회는 시민혁명의 물결로 젖어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프랑스의 왕비라는 지위[9]에 있었으나, 그녀에게는 프랑스의 변화를 통제할 어떠한 힘도 주어지지 않았다. 결국 정략결혼으로 온 곳의 상황이 너무나 안 좋았기에, 주어진 사료만으로 보면 그 시대의 왕비로서 하자가 있던 것도 아니었고 성격적으로도 모난 곳이 없었지만 프랑스인들에게 증오만을 받고 처형당한 비극적인 운명을 살아간 사람이다.


그녀는 단두대 앞에 설 때까지 품위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근친상간으로 처형 될 당시[28] 유언은, 사형 집행자의 발을 밟고서 남긴 '실례합니다, 무슈.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이렇게 의연할 수 있었던 건 그녀가 이 사형에 대해 정치적인 사형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그런데 어째 세간에는 이 유언마저 '좀 있으면 죽을 마당에 그런 사소한 일이나 신경쓰는 천치 인증'이란 식으로 퍼져 있다. 관점의 차이란 실로 위대하다). 실제로 사형 전에 그녀가 남긴 글에는 "부끄러워 할 것 없어요, 나는 죄를 지어서 죽는 게 아니니까요."라고 적혀 있었다. 

출처 나무위키

[전문]

https://namu.wiki/w/%EB%A7%88%EB%A6%AC%20%EC%95%99%ED%88%AC%EC%95%84%EB%84%A4%ED%8A%B8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2006]

출처 나무위키


시놉시스

2006년 개봉

미국, 프랑스, 일본 합작


화려해서 더욱 외로웠던 베르사유의 장미 | 끝나지 않는, 그녀를 둘러싼 진실과 거짓


오스트리아의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는 동맹을 위해 프랑스의 황태자 루이 16세와 정략결혼을 하고 베르사유에 입궐한다. 완전히 다른 세상에 들어선 그녀는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로 설레지만, 무관심한 남편과 프랑스 귀족들의 시기심으로 점차 프랑스에서의 생활에 외로움을 느끼고 지쳐만 간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녀, 마리 앙투아네트! 사치와 허영이라는 타이틀, 다른 남자들과의 스캔들, 굶주려가는 국민들에게 케이크를 먹으라고 외쳤다는 루머, 진실은 무엇일까? 세상이 궁금해 한 그녀의 모든 것이 밝혀진다.

출처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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