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와 재판만 진행되는 게 아니다 [김영환]

카테고리 없음|2017. 3. 31.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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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와 재판만 진행되는 게 아니다

2017.03.31

헌법재판소는 예고한 목표 기일 내에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했습니다. 3월 10일 헤어 컬을 두 개나 머리에 달고 파면을 선고한 약체의 헌재소장 대행은 사흘 뒤에 퇴임하여 홀가분할지 모르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고 봅니다. 검찰의 수사와 재판만이 진행형이라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최근 언론인 우종창 씨는 이정미 씨 등 당시 헌법재판소 재판관 8명을 직무유기, 직권남용, 공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발한 데 이어 이들 재판관들이 국민들에게 끼친 정신적 피해로 소송자 한 사람마다 30만 원씩 달라는 집단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곧 들어간다고 합니다. 국민들은 헌법재판소에 누구도 이의를 달 수 없는 합리적이고 공정한 판단을 기대했지만 헌재는 이에 실패했습니다. 재판관들은 결정문이 지고의 가치를 담았다고 자부할지 모르지만 그런 맹신에 관계없이 국민은 헌재의 결정적 하자에 반론을 제기할 권리가 있습니다.

헌재는 국회의 13개 탄핵 소추 조항의 일괄 표결에 대해 규정이 없고 국회의 자율권이라며 불문에 붙여 삼권분립의 뜻을 훼손했고 ‘헌재가 국회의 출장소냐’는 비아냥거림을 듣게 했습니다. 가 보지 못한 길을 가는 헌재라면 외국의 사례를 준용해야 했을 것입니다. 몇 세기를 거친 미국 의회는 우리의 민주주의만 못해서 사안별로 탄핵안을 표결한답니까? 헌재는 ‘국정 농단 스모킹건이었다’라는 JTBC의 태블릿PC 조작 보도 의혹을 규명할 문제의식조차 아예 없었고 녹음 파일로 음모가 드러난 ‘안산파’의 핵심 고영태가 소환에 불응했어도 처벌하지 않았습니다. 

헌재가 탄핵 사유로 든 팩트를 한 가지만 봅시다. 헌재는 KD코퍼레이션의 2015년 현대자동차 부품 납품 문제를 검찰의 공소장대로 적시했죠. 그러나 현대자동차는 1월 보도자료를 내고 이미 이 회사가 2010년부터 원동기 흡착제를 기아차에 납품하여 열효율이 20% 이상 향상되었으며 독일의 BASF사 등을 대체하여 국산화 효과를 거두었고 게다가 이 제품이 부착되는 원동기는 공개경쟁 입찰로 선정되었다고 설명했으니 헌재는 유망 중소기업이란 사실도 모른 모양입니다.

헌재는 조사권을 갖고 있음에도 KD코퍼레이션의 사장 부인이 최순실과 같은 학부형이었던 것과 현대차 부회장이 이 회사를 얼른 몰랐다는 점을 엮어 대통령이 최씨의 사익 추구를 도와 권한을 남용했다는 검찰 공소장을 그대로 차용하여 이 회사의 명예를 훼손했습니다. 2016년 매출이 93조 원이고 수만 개의 부품이 들어가는 현대차의 부회장이 2015년부터 1년 반의 기간에 10억 5,900만 원어치를 납품한 부품 조달 회사를 항상 머리에 담고 있어야 하나요? 

역점 사업인 두 공익재단 설립은 대통령과 최순실의 사전 커넥션으로 엮기 위해 최씨의 출국 알리바이도 무시한 채 대통령이 최씨에게 미리 알려주었을 것이라는 차은택의 말만 믿고 결정문에 담았습니다. 특검의 청와대 압수수색 영장은 법원이 각하했는데도 청와대의 불승인을 대통령의 헌법 수호의지 부재로 규정해 헌법 정신을 무너뜨렸습니다.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중 형사상의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는 헌법 84조를 무시했습니다. 광장과 정치세력에게 밀리듯이 180일 기한의 절반이 겨우 지나 서둘러 파면한 것이야말로 결정문에 나온 대통령 부재의 국정 공백에 대한 우려가 아니라 헌정 공백을 낳은 것이라고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국회는 조기 대선으로 정권을 잡을 욕심에 서둘러 대통령 탄핵을 의결했지만 헌재야말로 이런 정치 행위에 예속되지 말고 이 나라 법치를 꿋꿋하게 세워야 했습니다.

참으로 어이없는 것이 8대 0이라는 전체주의적인 결정입니다. 잠시 살려고 영원히 죽을 수 있는 담합적인 만장일치의 파면 결정 뒤에 숨으면 혹시 누구의 책임이라고 물을 수 없어 역사에서 면책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을까요. 헌재가 탄핵 백서를 만든다고 합니다. 헌재는 국회처럼 속기록을 공개하는 것도 아니니 평결에서 누가 무슨 의견을 나타냈고 그 의견들이 어떻게 만장일치로 수렴되었는지 그 과정을 소상히 밝혀야  종이 값을 하는 백서가 될 것입니다. 

헌재는 국정 공백이 어떻다느니, 제왕적 대통령이 어떻다느니 하면서 정치 문제를 언급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먼저 헌재 존재의 의의인 법치를 지키면 되죠. 헌재소장을 대통령권한대행이 임명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논란이 있다거나 9명이 아니면 심리를 하지 말라는 주장이다라는 것도 월권입니다. 더욱이 결정문이 출장 등으로 재판관이 자리를 비울 수 있다는 사실을 들어 8명 재판의 적법성을 강변한 것은 헌법 111조 2항이 “헌법재판소는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한다"라고 못 박은 것을 부정한 것입니다. 피청구인 측이 요구한 증인과 증거물 신청을 기각한 재판관들은 누구를 위해 절차를 생략하고 과속한 것입니까? 절박한 대선을 위해서인가요? 헌재 안창호 재판관의 친형인 안성호 교수가 문재인의 캠프로 들어간 사실도 알려졌습니다. 만약 헌재 재판관의 형이 여당 대선후보의 캠프에 들어갔다면 야당은 헌재 결정이 무효라면서 뒤집어졌을 것입니다. 필자가 가장 존경하는 김영란 국민권익위원장은 2012년 남편 강지원 변호사가 대선에 출마하려 하자 사퇴했습니다.

최근 박영선 의원의 선거법 위반에 대해 1심은 지역구 발전에 기여한 공을 들어 선고유예로 판결했습니다. 민주당 대표인 추미애 의원은 2심에서 의원직이 유지되는 8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습니다. 9억 원을 수수한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5년간에 걸친 재판으로 거의 19대 말까지 국회의원이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추미애나 박영선, 한명숙보다 국가에 공이 적습니까? 꼭 산발에 수의를 입고 포승줄에 엮인 복수 혈전극의 모습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기를 바라나요? 헌재가 보수와 진보의 이념문제가 아니라느니 하면서 변명하건 말건 ‘좌익 무죄, 우익 유죄’의 통설이 대통령에까지 적용되는 것 같은 이 나라의 통탄할 현실입니다. 

민경욱 의원이 전한 박 전 대통령의 말대로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드러나고야 말 것입니다. 애국심이 모자라는 정치권의 제물이 된 박 전 대통령이 역사에서 사는 길은 단 하나, 정치를 계속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프랑스의 사르코지 전 대통령은 야당인 공화당 당수로 맹활약 중입니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박 대통령이 종북세력을 척결하다가 탄핵되었다는 글을 실었습니다. 동생 박근령 씨는 언니에 대해 “피를 많이 흘리시고 순교하셨지만 박근혜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애국지사님들 가슴에 다시 부활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은 앞으로 더 큰 희생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왼쪽으로 한껏 기울어 세월호처럼 복원력을 상실해가는 이 나라를 끝까지 바로 세우는 것이 흉탄에 간 아버지, 조국 근대화의 기수 고 박정희 대통령이나 고 육영수 여사의 유지를 받드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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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영환

한국일보, 서울경제 근무. 동유럽 민주화 혁명기에 파리특파원. 과학부, 뉴미디어부, 인터넷부 부장등 역임. 우리사회의 개량이 글쓰기의 큰 목표. 편역서 '순교자의 꽃들.현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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