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과 건설문화 혁신"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최근에는 대선 후보들까지 가세하고 있다. 기술, 제도, 인력 등 여러 측면에서 논의가 많았다. 하지만 문화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것 같다. 우리 기업이나 산업의 문화는 4차 산업혁명에 역기능적인 요소가 많다. 그렇게 된 원인은 시대착오적인 정부규제나 제도 탓도 크다. 후진적인 문화를 바꾸려면 획기적인 규제개혁과 제도혁신이 수반돼야 한다.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건설산업의 경우 무엇보다 기술을 중시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빅데이터, 드론, 3D 프린팅, 건축물 정보 모델링(BIM), 인공지능(AI) 같은 기반기술을 건설산업에서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활용해야 한다. 하지만 '기술자의 적(敵)은 기술자'라는 말이 있다.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고 활용하는데 가장 장애가 되는 것이 기술자이기도 하다.
관성에 젖어서 익숙하고 편안한 아날로그 기술만 고집하고 디지털 기술을 애써 외면하는 사례도 많다. 기술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중요하다. 건설업체 CEO들도 영업이나 재무뿐만 아니라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새로운 기술의 도입과 활용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정부조달제도는 가격이 아니라 기술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여기에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반기술을 건설업계가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강제하는 일도 포함된다. 싱가포르는 오래전부터 정부공사에 입찰하는 민간건설업체에게 BIM 등을 활용하도록 했고, 이를 통해 건설생산성 향상은 물론이거니와 4차 산업혁명의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
새로운 기술을 개발할 때는 개방형 혁신을 추구해야 한다. 과거처럼 대규모 기술연구소를 만들어서 내부 연구인력만으로 독자적인 신기술을 개발하는 폐쇄적인 연구개발(R&D) 시대는 끝났다. 필요로 하는 기술, 인력, 아이디어를 널리 외부에서 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 내부의 ‘순혈주의’ 문화를 종식시켜야 한다. 필요한 기술을 갖고 있는 소규모 기업의 M&A도 활성화해야 한다. 우리는 대기업이 소규모 기술기업을 인수하는 것을 부정적 시각에서 보는 경우가 많다. 제값을 쳐주지 않는다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선진국에서처럼 핵심기술을 보유한 창업기업을 천문학적 금액으로 인수하는 사례가 늘어난다면 창업기업도 크게 늘어날 것이다. 이제는 M&A도 새로운 기술을 획득하는 방법이고 R&D투자나 다름없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분업과 전문화'를 넘어서 '융합과 통합' 문화를 구축해야 한다. 산업화 초창기에는 사업단계별로, 기능별로 업무를 구분해 분업한 뒤 오랫동안 그 업무만 담당해 전문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지금은 필요로 하는 인재상부터 다르다. 편협한 전문가보다는 다양한 분야에 걸쳐 폭넓은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특정 분야에서 깊은 전문성을 갖춘 T자형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 건설사업도 설계와 시공을 한꺼번에 묶어서 발주하거나 발주자-설계자-시공자가 함께 모여 가상공간에서 미리 시공해 본 뒤에 실제 시공에 들어가는 통합발주 방식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건설사업 참여자들 간에 협력하는 문화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설계 따로, 시공 따로, 유지관리 따로 수행하고 있다. 건설사업 참여주체들간에는 협력보다 적대적 문화와 불신이 뿌리깊게 형성됐다.
원도급자와 하도급자간에도 협력보다는 "갑(甲)-을(乙)' 관계로 요약되는 수직적이고 종속적인 관계가 고착화돼 있다. '융합과 통합' 문화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칸막이식 건설업역을 비롯한 규제의 획기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아울러 건설공사 발주방식도 시설물별 분리발주가 아니라 통합발주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는 산술급수가 아니라 기하급수시대다. 매출이든 수익이든 1이 2가 되고, 2는 4가 되고 4는 8이 되는 식의 기하급수적 성장이 가능한 시대다. 그래서 4차 산업혁명의 리더들은 낙관주의 문화를 기반으로 대담하게 생각하고 실행한다. 우리 건설업계에도 낙관주의 문화가 확산되어야 한다. 기술의 진보, 타산업과의 융복합이 건설산업의 미래를 밝혀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신성장동력을 발굴해야 한다.
기술 중시, 개방형 혁신, 융합과 통합 등 4차 산업혁명에 걸맞는 문화적 토대를 구축하고자 한다면 산업화 초창기의 낡은 제도나 문화를 타파하는 파괴적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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