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모자란 판사, 형량을 더 높게 선고한다?

카테고리 없음|2017. 3. 26. 15:50



지뇽뇽의 심리학 이야기


   고등학교 때부터 만성적으로 적게 자는데 익숙해진 한국인들에게는 잠이 모자란 것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닌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는 연구들이 있었다.


Supreme Court Justice Ruth Bader Ginsburg (center) 미 대법관 루스 베이더 진스버스(가운데) 졸고 있는 모습. 

그녀는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으로 23년째 활동하고 있는 최고령이다. 출처 Daily Mai

출처 Daily Mail

edited by kcontents

 

예컨대 잠이 모자란 사람들은 ‘건강’도 나쁘고 살도 더 잘 찐다. 잠이 모자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식욕’ 조절을 잘 못하고 같은 음식도 좀 더 ‘고칼로리’ 음식을 선호하게 된다는 연구들이 있었다. 또한 ‘기억력’도 나빠져서 젊었을 때 잠이 모자랐던 사람은 30년 후에도 좀 더 일찍 기억력이 감퇴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연구들이 있었다.


잠은 일상 생활의 정신 과정, 판단 능력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일례로 잠이 모자란 사람은 ‘난 멀쩡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작업기억 (컴퓨터로 치면 RAM 같은 역할을 하는 정신 과정. 복잡한 과제들을 한꺼번에 처리하는 등의 일에 중요한 능력)이 떨어지고 이전에는 칼같이 하던 ‘손익계산’에도 둔감해진 모습을 보인다. 또한 각종 복잡한 업무처리 능력, 논리적 사고력 등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잠이 모자라면 ‘감정’ 조절도 잘 안되서 작은 일에 화를 내게 되거나 급 기분이 나빠지는 등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현상도 더 잘 나타난다. 쉽게 폭발하고 왔다갔다 함으로써 주변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끼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모자란 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삶에 많은 악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좀 더 중요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모자란 잠의 악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최근 심리과학지(Psychological Science)에 실린 한 연구에 의하면 ‘판사’들의 경우 잠이 모자라면 형량을 늘리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날이 따듯해지고 해가 일찍 뜨기 시작할 때즈음 대부분의 주에서 ‘일광절약시간제(daylight saving)’를 시행한다. 시간을 +1해서 한 시간 앞당기는 것인데 예컨대 아침 6시가 -> 7시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평소 7시에 일어나버릇 했던 사람은 실은 이전보다 한 시간 이른 6시에 일어난 셈이 된다. 보통 일요일 밤에 시작되므로 그 다음날인 월요일은 평균적으로 약 한시간 정도 잠을 덜 자게 되어 ‘졸린 월요일’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연구자들은 1992년부터 2003년까지 약 4000 건의 월요일 판결을 분석했다. 그 결과 졸린 월요일에 선고된 형량이 다른 월요일에 비해 약 5% 정도 더 긴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그 해의 판결 트렌드, 범죄 전과, 범죄의 심각성, 피고인의 나이, 성별, 교육 수준과 상관 없이 유효했다.


일광절약시간제가 시작된 주와 그 전주 또 그 다음주를 함께 비교했을 때, 한 시간 정도 잠이 모자랐던 월요일에서만 전주 및 다음 주와 비교해서 형량이 긴 경향이 나타났다. 화, 수, 목, 금요일에서는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사실 ‘실험’이 아니기 때문에 정확한 원인이 모자란 잠에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전히 한 시간 정도 잠을 덜 잔 것만으로 형량이 길어질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결과이다.


이 외에도 ‘점심 시간’ 전후로 판결의 너그러운 정도가 달라진다는 보고들이 있었다고 한다. 점심 시간이 가까워져 배는 고프고 인내심은 바닥날수록 판결이 엄격해지는 반면 점심시간 직후에는 다시 원래의 너그러움 수준을 회복한다고 한다.


판사는 왠지 중요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만큼 이런 요인들에 휘둘리지 않을 것 같지만 인간인 이상 잠이나 배고픔의 영향은 벗어날 수 없다는 것처럼 보인다. 실은 ‘단순 작업’에 비해 고도의 정신 과정이 더 모자란 잠 등의 영향에 취약하다는 결과들이 있었다고 하니, 이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잠을 얕보지 말도록 하자.


※ 필자소개

지뇽뇽. 연세대에서 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적인 심리학 연구 결과를 보고하는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 (jinpark.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과학동아에 인기리 연재했던 심리학 이야기를 동아사이언스에 새롭게 연재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한 주를 건강하게 보내는 심리학을 다룬 <심리학 일주일>을 썼다.

케이콘텐츠



.

그리드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