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에 도로 품은 복합빌딩..."도쿄를 바꾸는 디벨로퍼의 창의력"



'도시 르네상스' 열자


   일본 최고의 쇼핑지인 도쿄 긴자 거리. 아직 쌀쌀한 날씨이지만 단체 관광버스를 타고 온 중국인 관광객들로 넘쳐난다. 


다음달 20일 정식 개장을 앞둔 일본 도쿄 긴자의 업무상업 복합빌딩 긴자식스 (왼쪽 사진). 전면부는 루이비통

모에헤네시(LVMH) 계열 명품숍들이 빼곡히 들어간다. 측면은 건물이 아즈마로(路)를 품은 형태로 설계해 길이 

지나가는 건물 안쪽(오른쪽 사진)은 차가 지나다닐 수 있게 했고, 후면부는 긴자를 찾은 단체 관광객의 관광버스 

승하차장으로 이용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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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 관계가 회복되면서 긴자는 밀려드는 중국인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하지만 고민도 적지 않다. 긴자는 이미 1980~1990년대에 개발이 끝난 '낡은' 쇼핑거리다. 백화점 등 건물 규모가 작아 넘치는 쇼핑객을 수용하기에 벅차다. 그렇다고 대형 건물을 새로 짓자니 블록을 묶어 개발해야 하는데, 이 경우 가뜩이나 관광버스 등 교통량을 수용하기 어려운 도로 면적이 더 좁아진다. 



일본의 대표 디벨로퍼인 모리빌딩은 이런 긴자의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도쿄도에 제안했다. 2개 블록을 묶어 통합 개발로 대형 건물을 짓지만, 가운데 기존 도로는 그대로 유지하는 개발 방식이었다. 완성된 후에는 1층 한가운데로 도로가 지나가고 그 위로 2층부터 올라가는 셈이다. 


건물을 관통하는 1층 도로는 도로로도 그대로 사용하고, 건물 방문객의 승하차장으로도 쓰인다. 후면부에는 관광버스 전용 승하차장도 있어 여러모로 교통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쇼핑센터의 대형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다음달 20일 개장하는 긴자2초메의 '긴자식스' 탄생 배경이다. 대로변 마쓰자카야백화점과 뒤편 이면도로 건너 소규모 건물들을 결합해 긴자 최대의 복합건물이 탄생했다. 




긴자식스는 도쿄의 복합빌딩에 비해 높은 고층 빌딩은 아니지만 도로를 품도록 설계하다 보니 무려 6100㎡에 가까운 면적이 하나의 층에 배정됐다. 저층에는 관광객을 수용하기에 최적의 구조를 갖추고 상층부는 오피스와 호텔 등으로 사용된다. 도로 위로 건물을 올리는 개발이 한국 같으면 규제 대상은 물론 특혜 시비까지 나올 법하지만 일본에서는 오히려 도쿄도가 적극 지원하며 성사됐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와 쇼핑 인프라스트럭처 구축, 오피스 조성 등 3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도시재생은 4곳의 대형 민간 디벨로퍼가 주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벨로퍼란 종합적인 기획 능력을 가진 부동산 개발업자를 뜻한다. 기획부터 설계, 시공, 마케팅, 관리·운영까지 전 과정에 걸쳐 특정 용지를 책임진다. 대표적으로 미쓰이부동산, 미쓰비시지쇼, 모리빌딩, 도큐부동산 등이 있다. 


미쓰이부동산은 에도 상인 정신을 지닌 일본 최대 디벨로퍼로 꼽힌다. 1914년 설립돼 100년이 넘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일본의 미드타운과 니혼바시 개발을 담당했다. 일본 도심 개발의 핵심 지역인 마루노우치 지구를 개발한 회사는 1937년 설립된 재벌계 디벨로퍼 미쓰비시지쇼다. 모리빌딩은 비교적 신생 기업이지만 벌써 58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일본 도시재생의 모범 사례로 뽑히는 롯폰기힐스와 도라노몬힐스 등을 총괄 개발한 업체다. 


이들의 무기는 창의적인 기획력과 끈질긴 노력이다. 총 6차선의 도시계획도로 중 왕복 4차선 800m 구간을 지하화시켜 입체도로로 만든 후 그 위에 52층짜리 고층 복합빌딩인 '도라노몬힐스'를 지은 곳이 모리빌딩이다. 왕궁 앞 마천루 숲이 가능했던 것도 미쓰비시지쇼가 역사·공공성·개발이라는 3가지를 모두 만족하는 개발 방식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창의력만 있다고 디벨로퍼가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재개발 성공 사례이자 2003년에 완공된 롯폰기힐스의 사업 기간은 무려 17년이다. 건설에 이처럼 많은 시간이 소요된 것은 아니다. 개발 주체였던 모리빌딩이 400명의 지주를 설득하는 데 14년이 필요했다. 공사 기간은 3년에 불과했다. 


수년마다 수장이 바뀌는 지자체나 중앙정부가 맡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복합 개발을 통해 지속적인 지역 활성화를 꾀하고 지역 가치의 상승을 유도하기 위한 디벨로퍼의 의지와 끈기가 발휘된 결과다. 모리빌딩은 롯폰기힐스의 종전 지주들에게 직장·거주·휴식이 한곳에 모여 있는 수직도시를 '지역이 추구해야 하는 도시상'으로 제안했다. 외국인들의 환락가였던 롯폰기의 인상을 완전히 벗겨내려면 지역의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도시를 건설해야 한다고 지주들을 설득한 결과다. 모리빌딩은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자신들의 역할을 단순히 건설에 그치지 않고 이후에도 관리까지 책임지는 '타운매니지먼트'로 규정했다. 


저성장과 부동산 시장 과잉 경쟁 속에서 일본의 대형 디벨로퍼는 사업 다각화·차별화로 안정적 수익구조를 확보했다. 특히 도심재생 사업으로 개발 역량을 강화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넓혔다.


이 결과, 일본 대형 디벨로퍼들은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에도 10%대 수익률을 기록했다. 당시 일본의 대형 건설회사들은 1%대 수익률에 만족해야 했다. 




박희윤 매일경제 명예기자(모리빌딩도시기획 서울지사장)는 "일본에서는 민간이 더 앞장서서 단순히 자기 기업의 미래만이 아니라 지역과 도시와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며 먼저 제안하고 설득해서 개발을 일궈낸 경우가 많다"면서 "저성장 시대에 자산을 보유하면서 운영도 함께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도래한 만큼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주택 분양 위주로 자산을 축적한 한국 대표 부동산기업들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사업구조 변환과 도시와 국가에 대한 사명감을 가져야 제대로 된 한국형 디벨로퍼를 육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도쿄 = 박인혜 기자 / 서울 = 김강래 기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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