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태는 의인인가? [방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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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태는 의인인가?

2017.03.21

대통령 탄핵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탄핵 심판에 이어 범죄 혐의를 캐는 수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어서 유무죄를 가리는 재판도 열리겠지요. 이런 순서와 절차가 온당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헌법재판소의 심판으로 모든 혼란과 갈등이 종식될 것으로 기대하고 희망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런 분위기는 아닌 것 같습니다. 탄핵 무효를 주장하는 태극기 집회가 지난 토요일에도 서울광장에서 벌어졌습니다. 그들은 왜 헌법적인 마지막 절차인 헌재의 심판에 승복하지 않는 것일까요? 민선 대통령 탄핵에 시간 지연을 이유로 중대한 증거와 증인을 배척한 재판, 재판관 임기에 맞춰 미리 시한을 정해 놓은 재판, 삼권 분립과 민주 정신을 위배한 전체주의식 재판… 그래서 그들은 헌재 심판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시국이 대선 모드로 접어들며 경찰이 선거법. 집시법을 들어 압박하는 상황이니 집회는 위축되겠지만 저들의 응어리가 쉽게 풀릴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갈등의 상처를 보듬어 치유하려는 노력도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촛불 시위대는 광화문에서 흥겨운 축승 잔치를 벌였고, 태극기 시위대는 대한문과 헌재 앞에서 울분을 터뜨렸습니다. 그런 마당에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태극기 집회 주동자들을 처벌하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공영방송 MBC의 차기 사장 선출을 미루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겁박하기도 했습니다. MBC가 사태의 도화선이 된 고영태 일당의 사전모의를 밝히는 녹음 파일을 공개하는 등 입맛에 맞지 않는 보도를 해왔기 때문일까요? 

사실 고영태 일당의 통화 녹취록을 들으면 이번 사태에서 무엇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아리송해집니다. 통화 내용을 들으면 나라가 온통 뒤집어진 이번 혼란사태는 처음부터 이들이 기획하고 연출하고 마감한 한편의 드라마 같아 전율이 입니다. 
다음은 언론사 인터넷에 떠다니는 고영태 일당의 녹취록 일부입니다.

▲류상영 전 더블루K 부장(2016년 1월 24일 김수현 전 고원기획 대표와의 통화)

“우리 세력을 꽂아야 된단 말이야. 김종도 나갈 사람. 철이도 나갈 사람. 거기 남을 사람은 딱 하나야. 담당 직원들. 그 네트워크 형성하면서 우리는 재단에 있는 돈이 빨리 우리한테 들어와 가지고 우리가 이런 구조 만들고, 그래서 검사를, 반부패 팀에 있는 부장검사 바로 밑 자리 하나에 사람을 꽂고 지시를 하는 거야.
                                                       <중략>

700억을 곶감 빼먹고 내년에 내가 판 깬 걸로 수사 한 번 해서 마무리하면 이 판도 오래간다. 우리가 더 전략적인 거야. 알겠어? 우리는 권력이 있어. 그 권력을 이용해야 되는 거야.

반부패 부장에다 올려놓고 대대적으로 스포츠를 흔들어서 체육계 비리들을 솎아내면서 진짜 나쁜 업체들은 구속시켜버리고 단체들 시정명령, 문체부 담당자 앞으로 지원사업에 더 적극적으로 임해라. 수사 종결. 이번 정권에서.

그 다음에 다음 정권으로 바뀌었어. 이걸 또 흔들어? 사정이다. 한 번 수사한 것을 또 하게 된다. 이건 문제가 큰 거야.”

▲김수현 전 고원기획 대표(2016년 2월 18일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와의 통화)

“형이 원하는 사람을 거기다 넣어 놓고 학교나 이런 걸 만들어 놓으면 그 다음에 그거는 소장이 없어져도 저희 거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만들자고 하는 얘기예요.

저는 솔직히 제가 얘기하는 게 맞다고 보는 게 왜 그러냐면, 소장은 이미 지는 해고 박근혜 대통령도 끝났다고 보는 거예요. 근데 걔한테 받을 게 뭐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없다니까요. 제가 볼 땐 없다는 거예요. 소장 통해서 박근혜 대통령한테 받을 수 있는 거는 없다는 거예요. 그거를 죽이는 걸로 해가지고 딴 쪽하고 얘기하는 게 더 크다고 보는 거예요, 저는.

지금 뭐 김종 얘기 나오고. 차 감독이 타겟이 돼서 TF팀 꾸렸다고 영태 형이 얘길 하는데. 소장도 인지는 하고 있다고 얘긴 하는데. 그건 봤을 때 저는 1~2개월이면 끝난다고 보는 거예요. 지금까지 봐도 이명박도 안 그랬어요? 노무현도 안 그랬어요? 그렇게 끝나잖아요.

지금 '친박이 힘 빠지고' 라는 기사는 형도 많이 보셨잖아요. 이게 만약에 국정 운영에 민간인이 관여해서 문체부도 그렇고 뭐도 그렇고, 뭐도 하고 있다고 정황상으로 드러난다고 하면. 국정감사를 하든 청문회를 하든 할 거 아니예요? 최순실을 부르든 뭐든 할 거고. 아주 극단적으로 간다고 하면요. 그러면 친박에 있던 사람들이 버틸 수 있다고 생각 안하는 거예요. 와해된다고 봐요.”

▲류상영 전 더블루K 부장(2016년 7월 4일 김수현 전 고원기획 대표와의 통화)

“새누리당 안에 지금 친박, 비박, mb계들 다 각자 지분을 갖고 싸움을 하고 있잖아. 정권을 잡을려고. 거기 중에서 친박 연대가 아닌 비박 연대 쪽 누구 새로운 사람한테 줄을 대서, 이걸 친박 세력 죽이는 용으로 쓰고 내부에서. 거기서 정권이 이양이 되면 거기서 자리를 받으려고 하는 거 아닐까?”

▲김수현 전 고원기획 대표(2016년 7월 4일 류상영 전 더블루K 부장과의 통화)

“영태 형하고 딜해서 이미 죽어가는. 그러니까 위원장이 아니어도 소장은, 박근혜는, 레임덕이 와 갖고 죽을 텐데 여기다 기름을 확 붓는 게, 자기가 알고 있는 영태 형이나 장관이나 차 감독이 이런 걸로 부어가지고 완전히 친박 연대를 죽여가지고 힘을 죽여 버리면, 다음 대권주자는 비박이 될 거 아니예요? 거기서 이제 (자리를) 받는다는 거죠.

그때 상황을 보면 너 인터뷰하고 너 어차피 나왔으니까. 너는 한 게 아니라 그냥 꼬리 끊고 나가. 그 다음 단계 영태. 꼬리 끊고 나가. 결론은 최 소장, 국정 개입, 끌고 간다. 그러면 지금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제대로 하는 일도 없고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최순실, 정윤회가 국정 개입 했다? 나라 일 제대로 못했네? 저는 그런 단계로 보는 거죠.
                                                        <중략>

솔직히 재단도 계속 그렇게 얘기했거든요. 형이 장악을 해라. 이사장 다 들어가라 했는데 영태 형이 그때는 힘들다, 그러다가 간다, 그러다가 또 미르 얘기 나오고, 그러니까 안 간다 그러고, 좀 있다 간다 그러고.

이사장도 솔직히 미르도 영태 형이 일하는 사람 뽑아야 한다고 하는데 저는 그건 아니라고 봐요. 우리가 조정할 수 있는 사람 이사장으로 앉혀놓고 사무총장이 이런 일하는 사람을 하고. 이사장은 그냥 사인만 하는 사람 앉혀놓으면 되는 거지. 그렇게 하고 있다가 정말 정치적인 색깔이 있는 사람을 하나 잡아가지고 그 사람이랑 나중에 딜을 해가지고 우리가 하나 자리 줄게요, 해서 하나씩 앉혀야지. 지금 이 상태에서 이사장으로 정치인을 딱 앉히면 그 사람은 빠꼼이인데, 누구 얘길 듣겠어요?
                                                      <이하 생략>

이런 엄청난 통화 내용에 대해 고영태는 한마디로 “농담조의 말”이라고 변명했습니다. 검찰도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국회의 탄핵 소추 과정에서는 최순실 관련 정보를 제공한 고영태에 대해 의인이라는 찬사가 나왔습니다. 한 야당의원은 “고영태 증인은 여리고 착했으며 노승일 증인은 의롭고 용감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적군에서 넘어온 장수에게는 예우를 갖춰 맞아주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검찰도 특검도 국회도 헌재도 죄를 묻지도 밝히지도 않은 고영태와 그 일당, 그들은 우리 사회의 의인인가요?

얼마 전 전북의 한 종합병원에서 개복수술을 받은 환자가 며칠 후 극심한 복통에 시달리는 사고가 벌어졌습니다. 병원 측은 뒤늦게 CT촬영으로 환자 몸속에 부러진 수술 칼 조각이 남아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결국 환자는 또 한 번 수술대에 올라 몸속 칼날을 제거해야 했습니다. 아픈 상처를 일부러 더 헤집을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가시를 빼지 않고 봉합한 상처가 속으로 더 깊이 곪아가는 위험은 어찌할 것입니까?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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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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