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불리’트위스트를 듣던 밤 [한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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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리불리’트위스트를 듣던 밤

2017.03.06

라디오가 흔치 않던 시절 농촌에는 ‘스피커’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각 가정의 처마 밑이나 제비집 옆에 설치된 스피커는 면사무소에 있는 라디오와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유선방송과 같습니다.

스피커의 구조는 간단합니다. 송판으로 사각형의 틀을 만들고 말굽자 스피커를 장착한 것이 전부입니다. 볼륨 장치가 없고 상중하로 구멍이 세 개 나 있습니다. 어느 구멍에 전선을 꽂느냐에 따라서 소리가 커지거나 줄어들게 되어 있습니다. 수신료로 봄에는 보리 한 말, 가을에는 벼 한 말을 냈지만, 스피커는 그 시절 유일한 듣는 즐거움을 주는 기기였습니다.

스피커에서는 가끔 면사무소의 공지방송을 하기도 합니다. 가장 유익한 것은 점심시간과 새참 시간을 정확히 알려준다는 점입니다. 점심을 먹고 쉴 참이면 북한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불합리한 점을 풍자한 ‘방랑시인 김삿갓’이 나옵니다. 어른들이 즐겨 듣는 프로그램은 ‘전설 따라 삼천리’와 가요 프로그램입니다. 

라디오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스피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스피커는 KBS 한 방송밖에 안 나오는데, 라디오는 MBC(문화방송)를 TBC(동양방송)까지 선택해서 들을 수 있습니다.

제가 살았던 충북 영동은 전국에서 손꼽히는 난시청지역입니다. KBS는 송신소가 있어서 그럭저럭 들을 수 있었지만 MBC와 TBC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쇠를 못으로 긁어대는 것 같은 잡음이 요란합니다.

그 시절 MBC FM에서 밤 10시 5분부터 12시까지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었습니다. 음악다방의 인기 DJ였던 이종환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가요보다는 팝송을 많이 틀어주는 방송이었습니다.

여름방학 때 서울의 친척 집에서 머무는 동안 매일 밤 10시 5분이 되길 기다렸다가 끝까지 들었지만 집에서는 들을 수 없었습니다. 용돈을 모아서 중고 트랜지스터는 마련하기는 했지만 ‘별밤’을 들을 수 없어서 안타까운 날들이 흘러갔습니다.

어느 날 전파사 아저씨로부터 코일로 안테나를 만드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고물상에서 코일을 사서 마당에 빨랫줄처럼 늘어뜨려 놓으면 방송이 잘 잡힌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날 마당에 장대를 세우고 코일 안테나를 연결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트랜지스터의 안테나를 뽑아서 코일을 연결했지만 MBC가 선명하게 잡히지는 않았습니다.

전파사 아저씨는 라디오 구조를 잘 아시는 분이니까 틀린 정보를 줬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트랜지스터 뒤 뚜껑을 열고 코일선을 여기저기 갖다 붙여 봐도 별다른 효과가 없었습니다. 

시간은 토끼처럼 뛰어서 ‘별밤’은 이미 시작했는데 30촉짜리 전등불 밑에 앉은 저는 땀을 흘리며 코일 선을 어디에 연결해야 하나 하고 궁리만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 코일의 코팅된 부분을 긁어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냥불로 코팅된 부분을 녹였습니다. 마른침을 삼키며 안테나 연결선에 코일을 연결했습니다. 순간, 원, 투, 쓰리 하는 소리와 함께 울리불리 트위스트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뜻밖이라서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나 앉아 있는 동안에도 비틀스의 울리불리 트위스트가 경쾌하게 흘러나왔습니다.

그날 밤에는 너무 흥분해서 어떻게 시간을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요즘 아이돌 가수들에게 빠져 있는 10대 팬들이 실황공연을 보기 위해 방송사 앞에서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은 예사라고 합니다. 침낭을 들고 와서 하루 전 저녁부터 자리를 지키는 팬들도 많고, 택시를 전세 내서 좋아하는 가수의 뒤를 따라다니는 사생팬들도 있다고 합니다.

택시비 몇십만 원을 아까워하지 않으며 스타를 따라다니는 사생팬들도 40년 후에 지금을 생각할까요? 

요즘의 아이돌 가수들은 영혼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 훈련하여 억지로 만들어 내는 노래를 들려 주는 데 불과합니다. 40년은커녕 해가 바뀌면 새로운 가수 뒤를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을 겁니다.

경쟁을 하듯이 새로운 인물, 새로운 목소리, 새로운 안무로 무장한 가수들이 홍수처럼 밀려 들고 있습니다. 정보를 알려주는 매체도 다양해서 눈만 돌리면 새로운 인물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아티스트보다는 기획사라는 공장에서 찍어낸 가수들이 판치는 요즈음 낭만은 사라지고 축제만 존재합니다. 매일 축제에 참여하다 보면 그것은 축제가 아니고 일상입니다. 

예전에는 없던 분노조절장애인들이 심심치 않게 사회 문제화되고, 인터넷 중독에 사회와 격리된 삶을 살아가는 은둔형 외톨이를 만들어 내는 층은 10대가 아니고 기성세대들입니다.

대학에서는 인문학을 추방하고, 학자보다는 대기업 회사원이 되길 원하는 학부모들의 보이지 않는 후원 아래 영혼 없는 노래들이 십대들을 방황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커피 한 잔 값의 인문학 강의 수강료는 아깝고, 몇십만 원짜리 아이돌 콘서트 입장료는 시대의 조류라는 명분 아래 지불하는 기성세대들의 힘으로 기획사는 거대공룡으로 몸집을 키웠습니다. 

그들 몇몇의 입맛대로 방송프로그램이 편성되고, 그들의 취향에 따라 시선만 자극하는 드라마가 제작되면서 낭만이 서 있을 자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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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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