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암살, 음모론은 안 된다 [임종건]



www.freecolumn.co.kr

김정남 암살, 음모론은 안 된다

2017.03.02

북한의 대남테러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1968년 1·21사태 때는 김신조를, 1983년 10월 미얀마 아웅산 폭파사건 때는 강민철을 남겼습니다. 1987년 11월 29일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에서는 김현희(위조된 일본명 하치야 마유미)를 남겼고,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때는 저인망 그물에 북한이 쏜 어뢰가 걸려나왔습니다.

이러한 증거들은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는 물론이고 북측의 덮어씌우기 책동을 막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김신조는 29명의 특공대원 중 유일하게 생포된 생존자였습니다. 

그의 생포 직후 일성이 “박정희 목을 따러 왔수다”였습니다. 그가 없었더라면 국군복장을 한 그들이 국군 내 반란군이라는 북한의 적반하장에 우리 사회는 한동안 혼란했을 것입니다. 

대한항공기 폭파사건은 김현희라는 폭파범이 잡혀 사건의 진상이 명확히 밝혀졌음에도 20년도 더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재조사하는 소동을 벌였습니다. 재조사는 당시 정부가 대선 승리를 위해 꾸민 자작극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발상 자체가 일반의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아웅산 폭파사건도 폭파범 강민철이 미얀마 당국에 체포되지 않았고, 서울대를 나온 한국인이라고 신분을 위장했던 그가 심경을 바꿔 사건 전모를 자백하지 않았더라면 북한의 덮어씌우기에 휘둘려 우리 사회는 오래 시달려야 했을 것입니다. 천안함 폭침사건과 관련해선 민간어선의 저인망 수색에 기적처럼 걸린 북한 어뢰의 진위논란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북한의 적반하장은 6·25북침설부터입니다. 휴전 이후 최초의 전쟁도발 행위에 해당되는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사건마저도 남측이 북한 영해를 침공한 데 대한 자위적 조치였다고 강변했습니다. 민간인이 희생된 것에 대해 군부대 인근에 인간방패를 형성한 대한민국의 비인간적인 처사가 문제라고 했습니다.

북한이 순순히 범행을 시인, 사과한 적이 딱 한 번 있습니다. 1996년 9월의 강릉무장공비침투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북한 해군의 잠수정이 강릉 앞바다에서 작전 중 저인망에 걸려 좌초하자 26명의 승무원이 상륙해서 북상하면서 피아간에 엄청난 인명과 재산의 피해를 남긴 사건입니다. 이 사건에서도 북한군 중 유일하게 이광수가 생포돼 사건의 증인이 됐습니다.

이 때 북한군이 옥쇄작전이 아니라 순순히 투항했더라면 정황상 전원이 송환됐을 것입니다. 북한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와 유감표명, 재발방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했지만 그것은 그 후의 무수한 도발로 허언이 되고 말았습니다.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공항에서 지난달 13일 북한 김정은 노동당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북한의 공작원들에 의해 독살됐습니다. 이 사건의 범인으로 베트남 여인과 인도네시아 여인 각1명과 말레이시아 거주 북한인 1명이 말레이시아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이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한 8명의 북한인들 중 4명은 이미 평양으로 도주했고, 2명은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대사관에, 나머지 1명도 말레이시아 내에서 은신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달아난 주범들을 잡을 수 없는상황이라 사건의 전모를 규명하는 데에는 상당한 난관이 예상됩니다.

VX라는 유엔이 지정한 대량살상무기이자 상업용 제조판매가 금지된 화학무기를 개인 살상용으로 썼다는 점에서 화학무기금지협정에 가입하지 않은 북한의 소행임이 한층 명확해지긴 했으나 주범이 잡혀야 진상이 드러납니다.

그점에서 김정남 암살사건은 북한의 잡아떼기 외에 우리 내부에서 음모설의 소재로 이용될 소지가 다분합니다.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 강철은 이미 이 사건이 한국과 말레이시아 합작의 모략극이라고 억지를 부렸습니다. 

그의 이런 억지는 남한을 향해서 써먹던 상투적 수법이지만 말레이시아에선 통할 리 없습니다. 그의 억지 주장은 범행이 북한 소행임을 스스로 입증했을 뿐입니다. 주권에 대한 모욕이라며 격분한 말레이시아 정부가 북한과의 단교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정남의 얼굴에 VX를 바른 베트남 여성 흐엉이 범행 3개월 전 제주도를 다녀갔고, 한국인 친구가 많다는 것은 한국기관의 개입 정황을 만들기 위한 알리바이 용도로 보입니다. 한국의 정보기관이 김정남의 한국망명을 유도했다는 소문 또한 범행의 합리화 차원에서 의혹제기가 계속될 것입니다.

그런 조짐을 보인 것이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의 발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의 국정자문단 공동위원장인 그는 김정남 암살사건에 대해 “우리가 비난만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며 “형제간이 죽이고 죽는 일이 인권문제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그런 생각의 근거로 박정희 정부 때의 김대중납치, 김형욱암살 사건, 이승만 정부 때의  김구 암살, 심지어 조선조 단종 애사까지 예로 들었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는 깨어 있는 시민들로 인해 어떤 권력자도 그런 불법무도한 인권유린을 시도할 꿈도 꿀 수 없는 나라가 됐습니다. 

북한은 김일성 집권 이후 70년이 넘도록 3대 왕조체제를 지속하면서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겨왔습니다. 집권 5년여 동안 김정은이 죽인 고위층 인사만도 고모부 장성택을 비롯해 100명이 넘고, 마침내 혈육을 대낮에 외국의 공항에서 암살하는 지경에 이르러 잔혹성을 날로 더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핵무기로 세계를 위협하면서 걸핏하면 남한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협박합니다. 김정은의 비인도적 행위를 규탄함에 있어 우리만큼 절박한 나라가 따로 있단 말입니까? 문명국가의 가치관을 북한의 야만성과 동렬로 취급한 그의 발언은 매우 위험해 보입니다. 

그의 그 같은 생각은 필시 적대 상대인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의 암살을 겨냥한 1·21사태나 아웅산 사태도 막지 못한 우리의 잘못이지 북측을 비난할 수 없다는 논리로 발전할 수도 있습니다. 

이미 그의 발언을 문제 삼는 것에 대해 진보세력들은 ‘종북몰이’라며 공격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북한의 무법통치에 눈을 감는 세력이 있는 한 김정은은 결코 자신의 과오를 고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안의 그런 세력이야말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남북이 화해할 길을 가로막는 세력이라고 봅니다.  북한을 도울 일은 돕더라도 북한의 분명한 잘못에 대해 분명한 하나의 목소리로 규탄하고 응징하는 모습을 보여야 북한도 변한다고 봅니다. 김정남 암살이 남남갈등의 소재가 되어 김정은 정권을 고무, 찬양하는 결과가 돼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사장을 끝으로 퇴임했으며 현재는 일요신문 일요칼럼, 논객닷컴 등의 고정필진으로 활동 중입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및 감사를 역임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게스트칼럼 / 박대문

잉카제국 몰락의 역사를 돌아보며

신비의 나라 잉카제국, 우리와 가까운 이웃 나라도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교류가 있었던 나라도 아닙니다. 역사 수업 시간의 기억에 잠깐 스쳐 간 나라에 불과합니다. 제국의 역사 또한 문자화된 기록이 없어 전설과 사실이 뒤섞여 있는 나라입니다. 다만, 쿠스코의 잉카유적과 신비의 공중도시 마추픽추를 통하여 잉카문명의 신비성은 잘 알려진 나라입니다. 이번 페루를 여행하면서 잉카제국의 융성과 허망한 멸망 그리고 그곳에 군림했던 정복자의 야만성을 어렴풋이나마 접하면서 떠오른 생각이 있었습니다. 대국의 생성과 허망한 멸망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우리의 현 시국 또한 매우 위험한 국난의 상황이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1200년경에 세워진 잉카제국은 페루의 어느 고원에서 기원하여 1438년부터 1533년에 걸쳐 남아메리카 역사상 가장 광대한 대륙을 통치하였던 황제 국가였습니다. 당시의 통치 영역은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와 콜롬비아의 남부,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북부에 이릅니다. 이 방대한 잉카제국의 수도 쿠스코는 안데스산맥 사이에 있는 해발 3,400m 높이의 고원지대에 있습니다. 이곳에는 황금으로 덮인 태양의 신전 코리칸차가 있었다고 합니다. 스페인의 침략을 받기 전까지 300년간 번영했던 잉카제국은 전국을 4개의 지역으로 나뉘어 통치하였습니다. 

잉카제국은 광활한 지역의 변방 먼 구석까지 관리 통치하기 위하여 소위 ‘잉카의 길’이라는 4개의 전국도로망을 구축하였습니다. 이 길은 수도 쿠스코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뻗쳐 있었습니다. 잉카제국 전성기에 이 길의 총연장이 3만 8,600km나 되었다고 합니다. 1998년 기준 우리나라 일반국도가 1만 2,500km, 고속도로가 2,000km이니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될 듯합니다. 잉카의 길에는 땀보(tambo)라는 객사를 설치했고 이 길을 따라 차스끼(chasqui)라 부르는 파발꾼이 바람처럼 나는 듯이 사방으로 달려 황제의 명령을 전달하고 긴급 공물을 운반했다고 합니다. 

태양의 신을 섬기는 잉카제국, 태양처럼 영원할 것 같았지만, 그 몰락의 전말은 참으로 허망합니다. 수륙만리 떨어진 대서양에서 건너온 200명도 안 되는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와 그 용병에게 멸망하고 맙니다. 이것 또한 불가사의한 신비에 가깝습니다. 당시 대륙의 지배자 잉카제국은 수백만 명에 이르는 대국이었음에도 마지막 황제의 최후는 비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황제의 전사들은 도륙당하고 황제는 포로가 되어 신전에 감금되었습니다. 몸값으로 황제가 갇힌 넓은 방을 전국에서 공출되어 온 황금으로 가득 채웠습니다. 그러나 황제는 결국 목뼈가 부러지는 처형을 받고 생을 마감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허망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잉카제국 몰락의 비극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총이라는 신식무기에 대항하는 활 또는 창이라는 병기의 원시성, 유럽에서 넘어온 천연두의 창궐 등 몇 가지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가장 근원적인 것은 국론의 분열 때문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아무리 신식 병기의 성능이 우월하다고 할지라도 수백만 명의 인구를 가진 대제국의 국민이 저항한다면 고작 180명의 스페인 용병이 어찌 감당하였겠습니까? 당시로서는 지구 반대편에 멀리 있는 스페인 본국의 지원은 요원한 만큼 고립무원의 180명 병력이 당해낼 수가 없다는 것은 너무나도 뻔합니다.

이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일까? 국력을 결집하지 못한 나라의 무기력하고 허망한 종말입니다. 

피사로에게 포로가 되어 죽임을 당한 잉카의 황제 아타우알파는 11대 황제 와이나 카팍의 서자 출신입니다. 그는 이복형인 와스카르가 황제에 오르자 이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켜 내전 끝에 형을 죽이고 황제에 오릅니다. 형제간의 권력 쟁탈전을 계기로 잉카제국의 국력은 양분됩니다. 아타우알파는 형의 두개골로 만든 술잔으로 전승의 축배를 들고 형의 가족과 그를 따르는 모든 부하를 죽입니다. 형과 형을 따르는 부하들에게 마저 잔인한 보복을 감행한 부도덕하고 무자비한 황제를 구출하기 위해 누가 몸을 바쳐 싸우려 했겠습니까? 그야말로 국력은 지리멸렬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한편, 서구의 개화 문명인은 신천지의 미개인에게 선악과 정의를 일깨우는 포교(布敎)라는 명분을 내걸고 신대륙을 장악해 나갑니다. 태양신을 버리고 개종(改宗)을 강요하는 개화(開化)는 허울뿐입니다. 선악과 정의를 도외시한 채 탐욕에 빠져 갖가지 몹쓸 짓을 저지릅니다. 사악한 욕망과 탐욕에 무너진 서구의 개화 문명인은 사냥터 짐승 대하듯 천진한 잉카인에게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융성했던 잉카제국의 무기력한 몰락과 개화 문명인이라는 잘난 서구인의 사악한 짓거리를 작금의 우리 현실에 비춰보면서 섬뜩함이 앞섭니다. 잉카제국 몰락의 과정과 우리의 현 시국을 돌아보며 다음 두 가지 사항이 먼저 염려됩니다. 

첫째, 국론분열과 태극기에 대한 국민감정 문제입니다.

참으로 어렵고 힘든 세대를 거쳐 세계 10위권에 이른 우리나라입니다. 외교, 경제, 안보 측면의 국제정세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데 지금 우리는 대통령 탄핵 문제를 놓고 촛불 부대와 태극기 부대로 분열되고 있습니다. 서로 간에 증오와 미움에 찬 적개심이 날로 커 가고 있습니다. 국력과 국가의 품격이 곤두박질치고 있습니다. 앞으로 태극기도 증오의 대상이 될까 봐 매우 염려스럽습니다. 

둘째, 소위 학식 높고 성공했다는 사람들, 특히 변호사와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입니다. 개화 문명인이라는 잘난 서구인이 탐욕과 이기에 젖어 저지른 만행과 다름없는 것이 작금의 학식 있고 출세한 사람들의 짓거리입니다. 비록 일부라고 하지만 남보다 조금 법 지식이 있다는 변호사, 잘난 체하는 정치인이 얼마나 몰상식하고 비열할 수 있는지를 요즈음 명증(明證)하고 있습니다. 사회를 이끌고 가야 할 이 사람들이 국가와 자신의 품격을 실추시키는 꼬락서니가 가관입니다. 부끄럽습니다. 선량한 국민과 후손들에게 이들이 어떻게 비칠 것이며 향후 사회를 누가 이끌고 갈 것인지 참으로 암담합니다. 이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배신감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두렵기조차 합니다.

사회의 으뜸 지도자가 되어야 할 분들이 으뜸가는 추태를 앞장서서 저지르고 있습니다. 법을 솔선수범해서 지켜야 할 입법자들이 법을 뛰어넘는 혁명적 선동을 하며 집회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법의 정의를 대변하고 준수해야 할 법조인들이 법의 정신과 절차를 폄하하고 법정을 농단하고 있습니다. 천지가 개벽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지난 13일 여야 정당 원내대표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함께 모여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승복한다고 구두 합의했습니다. 이 약속마저 깨지면 우리나라에 정치가 없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수치스러운 일일 것입니다. 자신의 이해관계와 영달, 탐욕으로 사회 정의와 형평성을 상실한 지도층은 사회의 죄악입니다. 만시지탄이지만 탄핵 결정 이후에라도 이들이 국정과 법정을 농단하고 국가와 자신의 품격을 추락시키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가 있다.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