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으로 여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문 [방재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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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으로 여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문

2017.02.28

가르치고 배우며 서로 성장한다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이란 말이 있습니다. 이는 학교가 학생들은 ‘꿈’을 찾고, 가르치는 사람은 학생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장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권위적이고 경직된 분위기의 교육 현장에서 과연 청소년과 젊은이들의 꿈과 희망이 제대로 싹틀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교학상장의 문을 여는 첫 번째 열쇠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유대인의 교육문화가 거론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자녀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엄마가 제일 먼저 묻는 말이 “오늘 학교에서 뭐 배웠니?”, “시험 잘 치렀니?”입니다. 그에 비해 유대인들은 “오늘 학교에서 무슨 질문을 했니?”라는 말을 건넨다고 합니다. 이는 “질문은 발견을 낳고, 발견은 혁신을 낳고, 혁신은 진보를 낳는다.”는 유대인들의 확고한 믿음에서 온 것으로 여겨집니다.

질문은 소통의 첫걸음으로 마음을 열게 하고, 세상을 바꾸는 생각을 하게 해줍니다. 좋은 질문이 나올 때 좋은 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화에서 질문을 이끌어내는 것은 상대방의 말을 진심으로 듣고자 하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교수 재직 시절 가르치고 배우는 ‘교학(敎學)’과 ‘질문’을 연계해보곤 했습니다. 수강생 수가 적을 때 학점의 10%를 질문 점수로 반영한 적이 여러 번 있었는데, 어느 강의에서 학기말이 다가오도록 질문을 전혀 하지 않는 학생이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래서 연구실로 불러 질문을 하지 않을 경우 시험을 잘 보고 과제물을 잘 작성해 제출해도 10점 감점이 되면 절대로 A 학점을 받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학생의 대답은 엉뚱하게도 자신은 ‘지금까지 수업 시간에 질문을 해본 적이 전혀 없어, 10점이 감점되어 A 학점을 받지 못해도 질문은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라는 말에도 결국 학기가 끝날 때까지 질문이 없어 10점을 감점해 학점을 매겼습니다. 정말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작년 11월에 어느 여자중학교의 특강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30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유전자와 함께 하는 우리 생활’이란 주제의 강연을 시작하기 전에 학생들에게 주제와 관련이 없어도 괜찮으니 평소 생명현상에 대해 궁금한 내용이 있으면 강연 시작 전에 질문을 해보라는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아무런 질문이 나오지 않기에 오늘 강연에서 듣고 싶은 주제어가 있으면 이야기해 보라고 했으나 역시 묵묵부답으로 이어져 맥이 좀 빠진 기분으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두 시간짜리 강연에서 첫 번째 시간을 마치며, 10분 쉬는 시간에 질문거리를 생각해 다음 시간에 질문을 해보라고 했으나 아무런 질문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강연을 진행하며 학생들의 질문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런저런 주제어를 던져보았지만 학생들이 나와 눈동자를 마주치지 않으려 몸을 사리는 모습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강연을 끝내고 질문을 요청했지만 역시 아무런 질문이 없어 허탈한 마음과 함께 질문 없는 우리 교육 현장에 대한 우려의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질문을 요구하는 것은 학생들에게 부담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학생이 바른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어떤 문제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용기가 필요하고, 상황에 맞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궁금증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교육의 본질’이라는 사실은 변할 수 없습니다.

현재 우리 교육 현장은 학생에게 쉽게 답을 찾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데만 길들여져 있으며, 질문과 토론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뎌져 있습니다. 질문은 특정 문제에 대해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게 하는 효과가 있으며, 지식의 축적과 함께 개인의 심성을 맑게 해주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이 하는 질문에 관심을 가지고 대하다 보면 마음의 문이 열려 질문에 대한 답이 찾아질 수 있습니다. 질문은 개인을 변화시키는 차원을 넘어 조직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사회의 변혁을 가져오게도 해줍니다. 따라서 질문이 없는 조직은 도태되고, 질문하지 않는 사회는 정체될 것이 뻔합니다.

뇌를 자극하고 새로운 정보를 얻게 해주는 질문이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큽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주 접해 사용하고 있는 SNS(Social Network Service)와 같은 인터넷이 과연 진정한 소통의 공간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사회에서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편의성에만 너무 의존하는 습관에서 벗어나 서로 묻고 답하는 면대면의 대화와 소통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이제 교육 현장이 정답만 빠르게 찾아나가는 교육의 틀에서 벗어나 질문이 풍미하는 ‘교학상장’의 장으로 자리매김해야 합니다. 자녀들의 질문에 대해 ‘나중에 크면 알게 돼’라는 식으로 질문을 막는 부모들의 의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학생들이 수업 시간이나 동아리 활동 등에서는 물론 집에서도 자신감을 가지고 질문을 나누며, 토론에도 적극 나서는 교육 풍토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젊은이들이 사회에 진출해서도 용기 있게 질문을 던지며 미래 사회의 변화와 혁신을 주도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질문은 사람을 변하게 해주니까요.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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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재욱

양정고. 서울대 생물교육과 졸.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유전학회, 한국약용작물학회 회장 역임. 현재 충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과총 대전지역연합회 부회장. 대표 저서 : 수필집 ‘나와 그 사람 이야기’, ‘생명너머 삶의 이야기’, ‘생명의 이해’ 등. bangjw@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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