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성 인정하기- ‘내전’ 피해 줄이기 [정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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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성 인정하기- ‘내전’ 피해 줄이기

2017.02.24

고영태 씨가 김수현 씨, 류상영 씨 등 주변 인물들과 수상쩍은 대화를 나눈 게 드러났습니다. 특검 측은 대통령의 범죄를 입증해주는 자료라고 말하고 대통령 측은 고씨 등에게 불순한 동기가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같은 내용을 놓고 말입니다.

세종 때 황희 정승의 “너도 옳고, 너도 옳다”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하녀 둘이 다투자 정승이 차례로 불러서 싸우게 된 이유를 들어보고는 “둘 다 옳다”고 했다는 일화 말입니다. 정승의 판정이 물에 물 탄 듯하다고 생각한 조카가 “아니 둘 다 옳다고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시비는 가리셨어야지요”라고 따지자 정승은 “그러냐? 너도 옳다”라고 했다고도 하지요. (조카가 아니라 부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황희 정승의 이 이야기는 ‘누구나 절대적으로 옳거나 틀릴 수 없음’을 알려준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선과 악이, 참과 거짓이 섞여 있는 걸, 즉 사람은 본질적으로 이중적 존재임을 정승은 알고 있었고, 그래서 어느 한쪽 편만을 들어주지 않았다고 봅니다. 하녀들에게는 “너도 틀렸고, 너도 틀렸다”, 조카에게는 “이놈아, 너는 더 틀렸다”고 호통치지 않은 건 ‘소에게도 듣는 데서는 싫은 소리를 해서는 안 됨’을 배운 ‘자상한’ 성품 때문일 터이고요. 

고 씨의 행태를 보면서 떠오른 이중성, 사람만의 특성인 줄 알았던 이중성이 물질에도 있다는군요. 1924년 드브로이라는 프랑스 물리학자가 밝혀냈답니다. 당시 세계 물리학계는 ‘빛이 파동이냐, 입자냐’를 두고 양분돼 오랫동안 격하게 싸워(토론해) 왔는데, 서른두 살로 뒤늦은 나이에 물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이 사람이 '빛은 파동도 되고 입자도 되는, 이중적 성질을 지닌 게 아닐까'에 생각이 미쳤답니다. 얼마 후 그는 자신의 가설이 옳음을 수학적으로 증명했을 뿐 아니라 나아가 물질을 이루는 원자 역시 입자일 수도, 파동일 수도 있음을 증명해 몇 쪽 안 되는 박사 논문에 담았습니다. 192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사유가 된 그의 이 증명으로 17세기 말 뉴턴 시대부터 시작된 물리학자들의 싸움은 끝났습니다. 입자도 되고 파동도 된다는데 더 싸우면 바보라는 생각을 한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어쨌든 그의 발견으로 물리학-양자론(量子論)은 큰 과제가 풀려 더 발전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철학자는 드브로이의 공적은 ‘A가 아니면 B’라는 양분법적 사고를 ‘A일 수도 있고, B일 수도 있다’는 ‘열린 사고’로 확장한 것이 더 크다고 말합니다. 사고를 확장한 결과, 이중성을 상상하고 인정한 결과 새로운 진실이 나타나고 새로운 발전이 도모될 수 있었다는 겁니다. 

‘입자면 어떻고 파동이면 어떠냐, 들어오면 밝고, 쪼이면 따뜻한 게 빛인데’라고 생각하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들이 옳으니, 그르니 싸우는 게 이해되지 않겠지만 파동과 입자는 워낙 다른 것이라 그들은 서로 상대방의 주장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믿음의 근본이 흔들리게 되니까요. 원자가 입자이기도, 파동이기도 하다 함은 우리의 몸뚱이를 비롯한 모든 물질이 입자이자 파동이라는 말인데, 빛은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 신체까지 그렇다고 하니 이상하지만 그게 물리학, 그 엄밀한 학문이 밝혀낸 이치라고 하니 그렇게 받아들이고 맙시다. 

드브로이의 ‘A일 수도 있고, B일 수도 있다는 이중성의 발견’을 ‘내가 발견했음’을 한 친구에게 자랑스레 이야기했더니, 아니 아는 척했더니, 신라 때 원효대사의 ‘화쟁론(和諍論)’이 바로 그것이라며 새로운 지식 하나를 보태줍니다. 당시 신라 불교계 역시 ‘내가 옳고 너는 그르다’는 ‘쟁론(諍論)’이 심했던 걸 대사가 ‘내가 만진 것이 다 진리가 아니다. 다른 이의 경험과 지식도 진리다. 절대적인 진리란 없다. 다른 사람도 옳을 수 있다’며 조정에 나섰습니다. 내 것도 진리, 네 것도 진리라는 주장은 결국 이중성의 인정이지요.

인간 이중성의 역사는 이처럼 뿌리 깊고, 이중적인 것을 벗어나 3중, 4중을 넘어, 젊은이들이 엉뚱한 친구들을 ‘다중이’라고 부를 정도로, 사람이 다중적이라는 주장도 나온 지 오래인데 우리는 여전히 ‘이것 아니면 저것’, ‘너는 틀리고 나만 옳다’고만 하고 있지요. 

탄핵심판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나라가 찢어지고 심지어는 ‘내전’까지 우려해야 할 정도가 됐습니다. 양쪽이 서로 ‘나만 옳고 너는 틀렸다’, ‘나만 선이고 너는 악이다’라는 식으로 두부모 자르듯 선악을 구분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이라도 이중성을 인정합시다. 나도 틀릴 수 있음을 인정해버립시다. 판단을 내릴 때 ‘이것 아니면 저것일 것’이라고 하지 말고, ‘이것일 수도 있고, 저것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조금이라도 ‘열린 사고’를 합시다. 막지 못할 내전이라면,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도록 합시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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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숭호

1978년 한국일보 입사, 사회부 경제부 기자와 여러 부서의 부장, 부국장을 지냈다.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뉴시스 논설고문, 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 등 역임. 매주 목요일 이투데이에 '금주의 키워드' 집필 중. 저서: '목사가 미웠다'(2003년),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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