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 600개 면적 두산중공업 '창원공장'..."수주 10조원 재도전한다"
화력+풍력 '투트랙'
지난 9일 경상남도 창원시 두산중공업 창원공장을 찾았다. 마산만을 접하고 펼쳐진 축구장 600개(연 면적 130만평) 넓이의 드넓은 대지에는 세모난 지붕이 덮인 공장이 끝없이 늘어져 있었다. 바다 앞에선 500톤급 골리앗 크레인 4대가 위풍당당한 위용을 자랑했다. 초록빛 바다에는 짐을 실은 컨테이너선이 물살을 가르며 조용히 오갔다.
두산중공업 창원공장 전경. 멀리 마산만과 공장 내 부두가 보인다. /두산중공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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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중공업은 국내 최대의 발전소 EPC(일괄 설계·구매·시공)업체다. EPC는 설계부터 기자재 공급, 건설 및 시운전까지 도맡는 일종의 ‘턴키’ 방식을 말한다. 두산중공업의 본사인 창원공장은 ‘쇳물부터 선적까지’ 가능한 세계 유일의 ‘중공업 일관 공장’이다. 이곳에선 연산 22만톤의 전기로로 쇳물을 생산해 산업용 기초 소재를 만드는 주·단조 공정부터 발전소에 사용되는 터빈과 보일러 등의 생산, 공장 내 부두를 거친 제품 출하 과정까지 이어진다.
두산중공업의 지난해 수주액은 9조원가량이었다. 이중 6조4000억원가량이 화력발전소에서 나왔다.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3분기까지만 해도 2조9000억원대 수주에 그쳤지만, 4분기 5조4000억원가량의 화력발전소를 극적으로 수주했다. 화력발전소는 두산중공업의 ‘현재’를 상징하는 사업분야다. 2015년 세계 발전시장의 설비용량은 6318GW였다. 화력발전소는 그중 62.7%인 3964GW를 차지했다.
두산중공업은 올해 10조원대 수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2010년 12조5000억원을 수주하며 사상 처음으로 연간 수주액 10조원을 돌파했지만 그 이후로는 10조원의 벽을 뚫지 못했다. 7년만에 10조원대 수주에 도전하는 것이다.
날개 2000개 달린 300톤 쇳덩이가 초당 60번 회전한다…국내 최대 터빈 공장
두산중공업의 주력 제품은 EPC 방식으로 공급하는 화력발전소다. 화력발전소는 천연가스(LNG)를 태워 가스터빈을 돌리고, 이때 배출되는 고온의 배기가스로 보일러를 가동한다. 보일러에서 나오는 증기가 증기터빈을 돌리면 전기가 만들어진다.
터빈공장은 축구장 9개 크기(약 2만3000평)로 국내 최대 규모의 실내 공장이다. 6개 라인에서 수십개의 터빈을 제작 중이었다. 그러나 생산 인력은 230여명으로 적은 편이었다. 터빈의 뼈대인 터빈로터(회전축)를 제작하는 과정이 자동화돼 있기 때문이다. 자동 드릴이 물과 쇳가루를 뿜으며 밀대 같은 회전축을 깎아내면 곧 홈이 파여 거대한 나사 같은 모습이 됐다.
블레이드가 붙은 터빈의 모습. /두산중공업 제공
이곳 공장에서 수작업이 필요한 부분은 로터에 ‘블레이드’를 붙이는 과정뿐이다. 블레이드는 회전축에 붙는 날개들로, 증기를 받아 터빈을 돌리는 핵심 부품이다. 증기터빈은 500MW 발전소 기준 3600rpm(분당회전속도) 속도로 움직인다.
고온고압의 증기 속에서 초당 60회를 돌아야 하는 터빈은 일반 철제가 아닌 티타늄, 크롬 등 특수금속으로 만들어진다. 회전축에 붙는 블레이드 중 가장 큰 것의 길이는 1092mm이고, 터빈 하나에 작게는 1600개에서 많게는 2000개 이상의 블레이드가 달린다.
홍상미 두산중공업 CR팀 대리는 “회전축의 홈에 현장 엔지니어들이 블레이드를 망치로 끼워 고정한다”며 “회전축에 불량이 생기면 터빈 전체를 폐기해야 하기에 최대의 집중력이 필요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선 2015년 수주한 화력발전소에 납품할 터빈들을 제작하느라 분주했다. 그 중 강릉 안인화력발전소에 들어갈 터빈에는 ‘80톤’이라는 글씨가 선명히 적혀 있었다. 완성된 터빈은 쇠로 만든 해바라기 같은 모습이었다. 홍 대리는 “발전소 하나에 대형부터 소형까지 3~4개의 터빈이 들어간다”며 “원자력 발전소에 들어가는 초대형 터빈은 300톤이 넘는다”고 말했다.
‘대동맥이 모세혈관으로 피를 보내듯’...최대 효율 추구하는 발전 보일러
터빈이 돌아가기 위해선 증기가 필요하다. 물을 가열해 증기를 만드는 보일러가 발전소의 주요 부품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1만7000평 크기의 보일러공장에선 쇠비린내가 진동했다. 멀찍이 보일러 관을 잇는 용접봉이 푸른 불꽃을 튀기고 있었다.
이곳 보일러 공장에선 화력발전소의 보일러 패널, 헤더, 코일, 파이프 등을 생산한다. 하루 8시간 동안 생산하는 보일러 파이프의 길이는 4995m로, 연간 총 3500MW 용량의 화력발전소에 보일러를 공급할 수 있다.
패널은 보일러의 외벽이다. 단순한 외벽과 달리 파이프를 용접해 벽을 만든다. 이 파이프를 통해 보일러 내부로 물이 공급된다. 패널에서 예열된 물은 증기와 수분이 뒤섞인 상태가 된다. 굵은 파이프인 ‘헤더’에는 구멍이 송송 뚫려있다. 헤더에 남은 수분은 가열돼 보일러 최심부인 코일을 거치며 모두 증기로 변한다.
보일러 코일을 제작하는 모습. 파이프를 굽혀 표면적을 최대한 넓게 만든다. /두산중공업 제공
코일은 얇은 파이프로, 사람의 소장처럼 배배 꼬여있다. 최대한 표면적을 넓혀 많은 열을 흡수하기 위해서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발전기 보일러를 인체에 비유하자면 패널은 대동맥, 헤더는 사지의 동맥, 코일은 모세혈관에 가깝다”며 “패널에서 공급된 물이 헤더를 거쳐 얇은 코일에 닿아 열을 흡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바다에서 친환경 전기 만드는 풍력발전기
두산중공업 창원본사 앞엔 40m 길이의 풍력발전용 블레이드가 전시돼 있다. /윤민혁 기자
두산중공업은 안정적인 화력발전소 사업을 토대로 신재생에너지 분야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풍력발전에 주목하고 있다. 풍력발전이 지난해 두산중공업의 수주에서 차지한 비중은 2%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 국내에서 설비용량 기준으로 가장 많은 풍력시스템(총 200MW 중 78MW, 39%)을 공급하는 등 풍력 발전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환경 규제에 따른 신재생에너지 수요 증가로 풍력 등 친환경 발전소의 수요도 늘고 있다. 세계 발전 시장에서 차지하는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은 지난해 기준 11.9%(752GW)에서 2025년 20.5%(1679GW)로 연간 8.4%씩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풍력발전기 조립장은 1270평 규모로 터빈, 보일러 공장보단 작았지만 총 8개의 생산라인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창원공장에선 풍력발전기의 구동축인 ‘허브’와 날개 뒤에서 실제 전기를 생산하는 ‘너셀(Nacelle)’을 만든다. 각 라인엔 둥글둥글한 허브와 컨테이너 같은 너셀이 일렬로 놓여 있었다.
두산중공업 창원공장의 풍력발전기 조립장. 왼쪽의 동그란 장비가 허브, 오른쪽의 상자모양 장비가 너셀이다.
/두산중공업 제공
사람 2명 높이의 동그란 몸체인 허브에는 날개를 달기 위한 원형 구멍이 3개 뚫려있다. 하얀색 몸체가 중장비라기 보단 어린이용 놀이기구 같다. 허브에 달리는 날개는 하나에 44m, 세개의 날개를 모두 장착하면 허브와 날개로 구성된 회전 날개의 지름은 91m가 넘는다.
풍력발전기의 핵심은 전력을 생산하는 너셀이다. 너셀의 크기는 길이 13m, 넓이 4m, 높이 5m로 40피트 컨테이너 4개를 차곡차곡 쌓아올린 크기다. 무게는 120톤에 달한다.
너셀 내부엔 바람이 만들어낸 10rpm 수준의 회전에너지를 1460rpm으로 증폭시켜 영구자석을 활용해 전기로 만드는 발전기, 직류(DC)로 생산된 전기를 교류(AC)로 바꿔주는 인버터, 이를 2만2900볼트로 승압해 멀리 전송할 수 있게 해주는 승압기, 설비를 식히는 수냉식 냉각기가 들어있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해상풍력발전기의 경우 거친 환경에 노출되기에 너셀을 완전밀폐형으로 제작하고 안정성을 높이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풍력발전기는 초당 4m 이상의 바람이 불어야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초당 13m 이상의 바람이 불 때부터 날개가 15.7rpm으로 돌며 정격출력(운전이 보장된 최대 출력)이 나온다”며 “바람이 초당 25m를 넘어서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과부화될 수 있기에 자동으로 회전을 멈춘다”고 말했다.
발전의 ‘현재’ 화력발전과 ‘미래’인 풍력발전…‘투트랙’ 전략
정지택 두산중공업 부회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올해 수주 목표는 10조원대 이상”이라고 밝혔다. 그 중 화력발전소의 비중은 예년과 비슷한 60%대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중공업은 2009년 체코의 스코다 파워(Skoda Power)를 인수해 증기터빈 원천기술을 확보, 보일러-터빈-발전기 제작 능력을 모두 갖췄다. 두산중공업은 화력발전소 제작 전 과정에서 가스터빈의 원천기술을 제외한 모든 기술을 확보한 상태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마지막 남은 가스터빈 원천기술 확보를 위해 힘쓰고 있다”고 했다.
두산중공업이 건설한 제주 탐라해상풍력단지. /두산중공업 제공
지난해 국내에서 인허가를 받은 풍력 설비용량 규모는 사상 최초로 1GW를 넘어섰다. 중국이 환경이슈에 따른 청정에너지 보급 확대 정책을 펼치며 신재생에너지 보급률을 늘리고 있기도 하다. 두산중공업은 이에 발맞춰 지난해 3월 한국전력과 해외 풍력시장 공략을 위한 ‘해외 풍력발전 사업에 대한 공동 개발, 건설과 운영 등 상호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정부는 2012년 500MW 이상 발전설비를 보유한 발전사업자에게 신재생에너지 발전 의무를 부과하는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2022년까지 총 발전량의 10% 이상을 신재생에너지로 만들어야 한다.
최진산 두산중공업 국내마케팅 담당 상무는 “국내 발전 시장에서 미세먼지와 이산화탄소 저감을 위한 친환경 설비 수주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풍력사업을 미래성장동력으로 육성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이어 “세계적으로 동아시아와 인도 등에서 신규 화력발전소 발주가 전망되는 만큼 두산중공업이 최대 강점을 가진 화력발전소 사업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창원=윤민혁 기자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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