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맞이 강화장터 [허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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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맞이 강화장터

2017.01.26

시골 장터 분위기는 생각만 해도 넉넉합니다. 좌판마다 여기저기 시끌벅적한 가운데 활기가 넘치고 인정이 흐르기 마련입니다. 도심의 대형마트처럼 세련된 맛은 없다 해도 말 한마디로 흥정이 이뤄지고 듬뿍 덤이 오갑니다. 아직도 장터의 명맥이 이어지는 비결입니다. 설날을 앞두고 열리는 장터는 더욱 기대할 만합니다. 민족의 명절인 만큼 훨씬 정겨울 테니까요.

강화장터가 그렇습니다. 장날이 2일, 7일이므로 설날을 하루 앞둔 내일 또 장이 서게 됩니다. 지난 일요일(22일)에도 장이 열렸지요. 도보여행차 강화도를 오가며 장터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들떴던 게 한두 번이 아닙니다. 버스터미널 바로 옆에 위치한 풍물시장 공터에서 장이 열리기 때문에 장날이면 으레 눈길이 멈추곤 합니다. 발길도 따라서 멈출 수밖에 없겠지요.

장바닥 좌판에 깔리는 품목마다 늘 새로운 관심으로 쳐다보게 됩니다. 야관문이나 백수오, 천궁, 당귀, 결명자, 맥문동, 강황 등 이루 열거할 수 없는 약재들이 도대체 어디에 쓰이는 것인지부터 궁금하기 때문이지요. 쌀눈과 말린 인삼꽃, 화분(꽃가루)의 용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과일이나 곡식·건과·반찬류도 즐비합니다. 호박 말랭이, 도토리 가루, 돼지감자, 흑미, 산마, 고구마묵, 서리태, 수수, 도라지, 고사리, 밤, 대추 등등.

강화도만의 특산품도 없지 않습니다. 인삼이나 화문석, 속노랑고구마, 강화순무 등이 그것입니다. 강화도 약쑥이나 새우젓도 오래전부터 이름을 얻고 있는 품목이며, ‘섬쌀’이라는 이름으로 강화 쌀이 선보인 지도 벌써 상당 기간이 지났습니다. 여기에 참기름과 고춧가루에 옷가지, 신발, 그릇 등 온갖 잡화류까지 덧붙여져 풍성하고 넉넉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들 품목이 여느 시골 장터에서와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인삼만 해도 지금은 강화도를 벗어나 다른 지역에서도 널리 재배되고 있으며, 화문석은 거의 수요가 끊어진 지경이므로 이들 품목에서 강화도의 특성을 찾는다는 것이 자연스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섬이라는 지역적 환경이 가져다주는 기대감은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강화도에 대한 하나의 환상이라고 해야 할까요. 단순한 착시현상과도 구분되는 '그 무엇'입니다.

굳이 거론하자면, 진열되는 상품 대부분이 강화산이라는 자체가 다른 시골 장터와는 구분되는 점입니다. 강화장에는 대략 300개에 가까운 좌판이 차려지는데, 그중 200개 이상이 강화도 농민이나 가게에서 차리는 좌판입니다. 강화도의 흙과 갯벌 냄새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주변 지역의 장터를 떠도는 장꾼들도 50명 남짓씩은 좌판을 차리게 됩니다. 잡화품을 조달하는 것이 외부 장꾼들의 역할이겠지요.

강화 5일장이 역사적으로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유래가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른 장터처럼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기 때문이겠지요. 장터도 원래는 군청 앞 대로변을 따라 중앙시장과 서문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다고 하지요. 그러다가 읍내 한가운데를 흘러가는 동락천이 복개되고 그 옆에 풍물시장이 세워지면서 장터도 이곳으로 옮겨왔다는 것입니다. 그게 10년 전인 2007년의 얘기입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강화도를 중심으로 하는 여러 섬의 주민들도 명절을 쇠려면 이 강화장터에서 장을 봐야 합니다. 섬들을 연결하는 배편이 그렇게 원활하지 않다는 것이 애로점이지만 말입니다. 바로 옆에 붙은 석모도야 외포항에서 30분 간격으로 카페리호가 다니므로 큰 문제가 없다고 쳐도 더 서쪽으로 떨어진 작은 섬들이 문제입니다. 연락선이 하루 겨우 두 차례씩 왕복할 뿐입니다.

가장 멀리 떨어진 볼음도와 주문도의 경우 강화장을 보려면 그날 아침 일찍 연락선을 타거나 하루 전에 나와야 합니다. 석모도 하리선착장에서 배편이 이어지는 서검도나 미법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나마 섬 주민들에게는 강화장날이 모처럼의 바깥나들이 기회겠지요. 교동도의 경우도 과거 창후부두에서 연락선을 이용해야 했지만 2014년 교동대교가 완공됨으로써 나들이가 훨씬 쉬워졌습니다. 현재 석모도를 연결하는 다리 공사도 한창인데, 오는 8월 완공될 예정이라 합니다.

그나저나, 내일 강화장터는 설상 차림을 장만하려고 몰려든 사람들로 하루 종일 붐빌 것입니다. 마나님에게 마지못해 손목을 잡혀 나온 남정네들도 새끼줄로 엮은 굴비 두름을 꿰차고는 장터 부근 막걸리 집을 기웃거리게 될 테지요. 장을 보다가 출출해지면 풍물시장 식당에서 밴댕이회 비빔밥을 맛보는 것도 일품입니다. 엿장수가 연신 가위를 짤랑대며 읊어대는 장타령과 뻥튀기 장수의 구수한 입담도 흥겨움을 더해 줄 것입니다. 세상이 온통 어수선한데다 물가가 오르고 갑작스런 추위까지 겹쳤지만 설 명절만큼은 모두 푸근하게 보냈으면 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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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 역임. 미국 인디애나대학 저널리즘스쿨 방문연구원.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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