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지키는 나라 濠洲 [김홍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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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 지키는 나라 濠洲

2017.01.20

호주를 찾는 외국인들을 가장 얼굴 찌푸리게 하거나 성가시게 하는 것은 세관과 파리가 아닌가 합니다. 우선 세관은 반입금지 품목도 많고, 검사과정도 여간 깐깐하지 않습니다. 육류 가공품은 가차 없이 압류하고, 담배는 허용량(1인당 50개비)을 넘으면 한 갑에 수십 (호주)달러의 벌금을 물립니다. 특히 동식물 반입은 대륙 생태계 보존 차원에서 철저히 막습니다.
또한 여름철 호주 파리는 지악스럽게 사람을 괴롭힙니다. 크지도 않은 것이 피도 빨아 먹을 것 같습니다. 다만 관세법도 파리도 내외국인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 벌과금이 지자체 예산의 40% 육박하기도

한 번 더 놀라게 하는 것은 엄청나게 부과되는 벌과금·범칙금입니다. 자동차 안에 12세 미만 어린이를 혼자 앉혀 두면(서호주의 경우) 36,000달러의 벌금을 물거나 3년 이하의 징역을 살아야 합니다. 대부분이 셀프 주유소인 이 나라에서 기름을 넣고 요금 정산 때 어린이만 차 안에 남겨 두어도 같은 처벌을 받습니다. 안전벨트를 안 매면 300달러, 규격품만 허용된 카시트 없이 어린이를 태우면 범칙금이 400달러나 됩니다. 인명 존중, 어린이에 대한 안전엔 온 나라가 모든 법과 제도를 동원해 각별한 관심을 기울입니다. 

교통 관련 범칙금 대부분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많습니다. 미등록 차량 운전 777달러, 속도위반은 승용차 194~777달러, 트럭 등 대형 차량 273~3,788달러에 벌점과 1~12개월의 면허정지(시속 25킬로미터 이상 위반 시)가 병과됩니다. 스쿨존에서 등하교 시간에 제한속도 40킬로미터를 넘거나 휴일에 법규를 위반하면 벌금과 벌점이 2배로 뜁니다. 그것도 모자라 뉴사우스웨일스 주는 오는 3월 1일부터 헬멧을 쓰지 않고 자전거를 타거나 신호등이 빨간불일 때 멈추지 않으면 현행 범칙금 71달러를 319달러로 올리기로 했습니다. 

이 밖에도 호주는 물어야 할 벌금이 수두룩합니다. 운전 중 휴대폰을 사용하면 466달러, 정차 중 차 안에서 휴대폰을 만져도 벌금을 물립니다. 좌회전 차선에서 우회전 깜박이 등을 켜거나, 안개가 없을 때 안개등을 켜도 벌금입니다. 바다와 강 호수에서 어패류를 잡으려면 반드시 돈을 내고 라이선스를 받아야 하고(휴대폰 신고로도 받을 수 있음), 허용량과 크기를 위반하면 배보다 배꼽이 몇 십 배 커집니다. 집 앞 행인의 눈에 띄는 곳에 빨래를 널어도, 집 밖 도로 쪽 잔디를 깎지 않아도 벌금을 물어야 합니다. 

# 누구도 법을 위반하고는 못 사는 나라

그뿐이 아닙니다. 연방정부 선거에 합당한 이유 없이 투표하지 않으면 최대 180달러의 벌금과 함께 법정 출석 명령이 떨어집니다. 어쩔 수 없는 일로 투표를 하지 못할 사정이 생기면 용납할 만한 사유서를 제출하거나 벌금 20달러를 내야 합니다. 만약 사유서를 제출하지 않거나 벌금을 내지 않으면 재판정에 서야 합니다. 유죄 판결을 받으면 전과 기록이 남습니다. 교통 관련 법규나 선거법, 생활 일반 규칙 위반에 대한 항목과 금액은 자치단체마다 다르지만 벌과금 · 범칙금 수입이 예산의 40%에 이르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벌금폭탄’의 나라입니다.

지난 12월 중순부터 올 1월 초순까지 20여 일간 멜버른에 사는 아들 집에서 피한하는 동안 보고 듣고 경험한 호주라는 나라의 진면목입니다. 도처에 널린 ‘벌금지뢰’ 때문인지 차보다 사람을 우선하고, 기브 웨이(Give Way: 우선 차량에 대한 양보)를 철저히 지키고, 경적 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멜버른에서 시드니까지 10시간을 달리면서 추월하는 차량조차 편도 2차선 고속도로 제한속도 110킬로미터를 넘는 경우가 한 대도 없는 것을 보고는 감탄과 함께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이토록 법규를 잘 지킬까? ‘벌금지옥’에 살면서도 불평이나 납부 거부 같은 반작용이 없을까?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과중한 벌과금 · 범칙금 부과 이상으로 집행이 강경하기 때문입니다. 교통법규 위반 범칙금을 내지 않으면 기간에 비례하여 금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클램핑((clamping: 타이어 족쇄), 면허정지, 차량등록 취소, 압류에 이은 형사 처벌이 기다립니다. 스위스처럼 소득이 많은 사람은 소득에 비례하는 누진 벌금제의 도입도 검토 중이라고 합니다.

이런 ‘벌금지옥’의 나라 국민들이 어떻게 그토록 평화롭고 부유하게 살 수 있을까? 해답은 제도입니다. 교통법규를 어긴 사람들로부터 거둔 벌과금은 도로 개설과 보수, 신호체계 개선 등 운전자의 편익을 위해 쓰고 공개합니다. 다시 법을 어기지 않도록 합당하게 예산 집행을 함으로써 주민들의 벌금에 대한 반감을 줄이는 예산 제도입니다. 다른 세금도 무료 의무교육(세계 최초), 출산수당, 육아수당, 실업 · 질병 보조금에다 과부연금에 이르기까지 사회보장에 엄청나게 투입됩니다. 듣던 그대로 ‘복지천국’입니다.

# 위법 아니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법이 엄격한 나라에 간 죄로 적지 않은 고통도 감내해야 했습니다. 50개비로 한정된 담배 반입 규정으로 들고 간 담배는 아내 몫까지 달랑 5갑. 그 100개비를 20여 일에 나눠 피우면 하루 5개비씩만 피워도 모자랐습니다. 한 갑에 25~30달러를 주고 현지에서 사 피울 수 없는 상황은 한마디로 극기 훈련이었습니다. 귀국해서 보니 우리나라는 재작년 담배값을 두 배로 올렸지만 정부 세수와 생산자 수익만 늘어났고 흡연율은 그대로라고 합니다. 담배값 인상을 위한 ‘국민 건강’ 명분은 도루묵이 됐습니다.

하지만 그런 극기 훈련에 가까운 억제는 나에게 강력한 인상을 심어 주었습니다. 우선 법망이 촘촘하여 누구나 법을 어기면 벗어날 수 없는 제재를 받아야 하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하나는 법과 제도에 대한 국민의 신뢰입니다.
“모든 사람이 삶의 질과 환경 및 국토 보존을 위해 법으로 금하는 행위는 자제하되, 어느 누구도 법이 금하는 것 외에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된 나라”라고 한 아들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돈도 실력’인 한국과 ‘법이 국력’인 호주의 차이를 보았습니다.


□ 벌금·범칙금·과태료의 차이

벌금: 재산형의 하나. 범죄의 처벌로서 부과하는 돈. 벌과금. / 정식 재판을 거쳐 국가에 납부하는 형벌의 하나로 뺑소니 음주운전 무면허운전 등은 전과로 남는다. 
범칙금: 법이나 규칙을 어겨서 부과되는 돈. / 신호위반 주차위반 속도위반 등 교통법규를 위반한 현장에서 경찰에 바로 적발되어 부과된다. 
과태료: 운전자가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는 경우 또는 무인단속 카메라에 적발된 경우(갓길 위반, 불법주정차) 부과되며, 벌점은 없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게스트칼럼 / 이정원

아~ 오바마 대통령

2009년 5월 8일 이임하는 백악관 근무 국가안보회의 직원인 칼턴 필라델피아의 아들이 부모를 따라 취임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만난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저도 비슷한 머리 모양인데요. 혹시 같은 느낌이 나는지 대통령님 머리 한 번 만져 봐도 되나요?” 아이의 이 돌발적이고 엉뚱한 말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웃으며 고개를 숙이자, 아이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대통령의 머리를 만져봅니다. 아이가 대통령의 머리를 만지는 모습은 그대로 카메라에 담겼습니다. 백악관 수석 사진가인 피트 수자가 찍은 이 사진이 공개되자, 누리꾼들은 어린 아이의 요청을 거부하지 않고 응해준 오바마 대통령의 친근한 모습에 환호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스파이더맨’ 복장을 한 아이의 공격에 장단을 맞춰주고 병원놀이를 하는 아이 앞에서는 기꺼이 환자가 되어주는 등 아이들에게 친절한 한 모습을 보이는 정치 지도자로서의 솔직하고 따뜻한 마음가짐에 온 국민이 박수를 보냈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어땠을까요? 부모는 황급히 어린 아들을 끌어당기며 “그러면 안 돼” 하고 아이를 혼냈을 것이며 대통령 역시 “어른 머리 만지면 다른 사람들이 나쁜 애라고 해요. 악수나 한 번 할까?” 하고 아이를 머쓱하게 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만 47세에 미국 역사상 다섯 번째 젊은 나이이자 첫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된 오바마는 9·11사태로 충격에 빠진 미국 사회에 ‘희망’과 ‘변화’를 화두로 제시하면서 활기를 잃은 미국을 다시 위대한 미국으로 복귀시키려는 밤하늘에 빛나는 샛별로 떠올랐습니다. 제2의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을 연상케 했습니다.

민영보험에만 의존하는 의료보험에서 벗어나 모든 국민에게 건강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오바마 케어’ 의료개혁법안을 통과시켰고, 9·11테러의 주범인 빈 라덴 사살 작전을 생중계로 지켜보며 대통령 전용 의자를 합동특수전사령부 부사령관에게 내주고 한 구석에 간이식 접이의자에 쭈그리고 앉은 대범한 리더십의 모습, 이란 핵협상 타결에 이어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에서 열린 총기 난사 사건으로 숨진 핑크니 목사의 장례식장에서 추모사를 하던 중 갑자기 ‘어메이징 그레이스(놀라운 은총)’라는 찬송가를 부름으로써 재임기간 중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되게 하는 극적 장면을 연출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단교 54년 만에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 비록 트럼프 차기 대통령에 의해 폐기될 것으로 보이지만 일본 등 12개국과의 TTP협상 주도와 한국에서의 사드 배치 추진 등 괄목할 만한 정책을 펼쳤으며 미 국민의 찬사와 지지로 대중적이면서도 카리스마가 넘치는 정치인으로서 현대사에 우뚝 섰습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린이와 눈빛을 마주칠 수 있는 지도자는 국민과도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권위를 내려놓았지만 권위를 지킨 대통령입니다. 대중의 심리를 꿰뚫고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이를 실천하려고 노력해온 대통령이었습니다. 떠나는 오바마 대통령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바마의 탈권위적 정신은 특히 어린이를 좋아하고 사랑했을 뿐만 아니라 최하위 노동자들과도 스스럼이 없기로 유명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 행정동 건물 복도를 지나면서 왼손잡이 손으로 청소노동자와 주먹을 맞대며 인사하는 모습이 보도되면서 많은 국민들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언론은 극찬하였습니다. 국민 곁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정치가는 권위를 세울 때도 있어야 하지만 때로는 권위도 내려놓은 줄 아는 서민적인 모습을 보여야 대다수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 정신이 있어야 올바르게 국가를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솔선수범하는데 따라가지 않을 국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어찌 보면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민의 군중심리를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한 지도자입니다. ‘군중을 지배한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설파한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 봉(Gustave Le Bon)이 생각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5월 5일 어린이날에만 청와대를 개방하고 대통령이 어린이들과 놀이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어쩐지 연출된 느낌이라고 생각되어 가슴에 와 닿지가 않습니다. 선거 때만 되면 으레 어린이를 앉고 있는 모습을 홍보지에 그럴듯하게 싣는 국회의원 출마자들, 지자체 단체장과 지자체 의원, 교육감 후보자들의 ‘쇼’를 보면서 미국 대통령의 진정성에 얼마나 접근하고 있는지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국 시간 1월 10일, 그렇게 어린이들과 국민을 사랑하던 오바마 대통령이 “한 번 더!”를 연호하는 국민들 앞에 55%라는 경이적인 지지율을 남겨두고 백악관을 떠나는 이임 연설을 했습니다. 국민의 편에 서서 9번의 ‘용의 눈물’을 흘린 오바마는 오늘, 레임덕 없이 8년간의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고 떠납니다. 한없이 부러운 오바마 대통령에게 뜨거운 환송의 박수를 보냅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탄핵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각료, 측근 참모, 수많은 고급공무원, 각종 연구단체의 연구원 등 인재 풀이 있으면서도 이들을 외면한 데 있습니다. 권위와 독선을 내려놓고 동심으로 돌아가 꾸밈없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듣고 토론했다면 이런 비극은 없었을 것입니다. 동심의 세계에서는 권위나 체면이나 의도된 연출이 없습니다. 오직 진정성만 있을 뿐입니다. 그게 소통의 정치입니다.

지금 벌써 다음 대선을 앞두고 많은 예비 주자들이 갖가지 선심과 달콤한 유혹의 말로 유권자들을 끌려고 분주히 뛰고 있습니다. 다음 대통령은 어린이의 머리와 가슴이 통하는 대통령을 뽑아야 합니다. 그래야 거짓 없는 솔직한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쇼’와 ‘말잔치’의 대통령을 뽑아서는 국가와 국민 앞에 밝은 미래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군중심리에 편승하는 권위주의적 대통령을 뽑는다면 우리는 진정한 대중민주주의 정착을 위해 또 한 번 피를 흘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미국은 어린이 천국입니다. 어린이날이 따로 없이 1년 365일이 모두 어린이날입니다. 자유롭게 뛰어놀며 자라는 미국 어린이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만 그렇게 자란 어린이들이 이 다음에 커서 사회를 이끄는 정정당당한 견인차가 될 것임은 불문가지입니다. 어린이를 사랑하는 대통령, 우리나라도 그런 대통령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필자소개

이정원

시조시인. 1939년 충남 예산 출생. 고려대 경제학과 졸업. 고대신문 편집국장 역임. 공직에서 정년퇴임. 2005년 계간 ‘현대시조’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한국시조시인협회·한국문인협회 강남지부 회원. 현대시조 ‘좋은작품상’ 등 수상. 시조집으로 ‘얼레와 어금니’ 등 3권과 산문집 '코드 55'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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