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가는 정당 [임종건]



www.freecolumn.co.kr

100년 가는 정당

2017.01.05

대통령들의 재임 중 탈당은 노태우 대통령 이후 노무현 대통령까지 되풀이된 관행입니다. 이명박 대통령 때에 와서 이 퇴행적인 관행이 멈추는가 싶었는데 결국 탄핵정국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도 새누리당을 탈당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불행한 관례를 되살려 놓은 셈입니다. 

현직 대통령의 탈당의 흑역사는 현직 대통령과 미래권력과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민자당 시절 노태우 대통령은 김영삼 차기 대통령 후보와의 갈등 끝에 탈당했고, 대통령 당선 후 김 대통령은 신한국당을 창당했습니다. 

15대 대선에서 이회창 씨가 신한국당 대선 후보가 되자 이번엔 김영삼 대통령이 노태우 대통령의 전철을 밟았고, 이회창 후보는 대선에서 낙선했지만 한나라당 간판은 유지됐습니다. 한나라당은 용하게도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 10년 동안 야당으로 같은 문패를 유지하다 17대 이명박 대통령에게 넘겨줬습니다. 그런 당을 박근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18대 대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으로 바꾼 것입니다. 

야당의 당명 역사는 훨씬 더 어지럽습니다. 선거를 앞두고 갈라서거나 다른 당과 연합하면서 신당이 만들어졌고, 선거에서 져도, 이겨도 당명을 바꿨습니다. 대선 총선은 물론이고, 재·보선에서 졌다고 당명을 바꾼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당명을 자주 바꾸다 보니 갖다 붙일 어휘가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민주’를 중심어로 앞뒤에 한국 통일 통합 대통합 연합 평화 정치 새정치 국민 민중 진보 혁신 개혁 선진 신(新) 행복 정의 새천년 열린에서 지금의 ‘더불어’에 이르기까지 온갖 좋은 말을 앞뒤로 붙여서 당명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다가 자기들도 헷갈렸던지 군더더기를 빼고 그냥 ‘민주당’으로 돌아가기도 여러 차례였습니다. 그것을 일컬어 ‘도로 민주당’이라고 했습니다.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은 원외의 민주당과 통합하면서 자유당 시절 해공 신익희 선생이 창당한 전통야당 민주당의 법통을 창당 61년 만에 회복했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민주당으로선 자랑할 게 없습니다. 도로 민주당이 누더기 민주당으로 개명하면서 ‘민주당’ 당명을 버리자 한 정치세력이 민주당을 만들어 중앙선관위에 등록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약칭으로 ‘민주당’을 쓰려고 하자 등록된 민주당이 당명 네다바이라고 극렬 반발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이 ‘더민주’라는 국적불명의 약칭으로 불리게 된 연유이기도 합니다. 이번 통합으로 더불어민주당은 다시 한 번 도로민주당이 됐을 뿐입니다.

'친문’ ‘반문’하며 민주당 내부에서도 분열의 움직임이 있는 듯한데 앞으로 이 당명에 군더더기가 붙지 않는 민주당으로 오래 남기를 바랍니다. 가능하다면 아예 당헌 당규에 민주당 이외의 당명개정불가 규정을 넣기를 바랍니다. 

새누리당이 분열돼 4당 체제가 됐고,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대선 출마가능성과 함께 또 다른 정당이 태동하고 있습니다. 어떤 정당이 태어나든 선거를 치르고 나서 없어지는 정당, 대통령 퇴임 후 없어지는 정당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차제에 민주에 못지않게 소중한 가치인 자유와 공화를 표방하는 정당도 나왔으면 합니다. 자유당과 공화당은 과거 독재의 역사로 인해 그동안 국내정치에서 경원당해온 당명입니다. 지금이야말로 제대로 된 자유와 공화, 공명과 정의의 가치를 실현해야 할 때입니다. 

보수와 진보는 사회를 유지 발전시키는 두 개의 축입니다. 그러나 한국정치에서 그것은 제도가 아니라 줄세우기와 패거리에 기초한 인치의 형태로 존재합니다. 인치에 의존한 정치에선 국민은 뒷전이고 당수 개인에 대한 충성이 지고의 가치입니다. 이것을 개혁하는 것이 정치개혁의 출발이고 촛불민심의 본질도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민주당은 200년이 넘었고, 공화당도 163년 된 정당입니다. 영국의 보수당과 노동당은 100년이 넘었고, 일본의 자민당도 62년 동안 같은 이름입니다. 한국 정치에서도 100년 간 존속할 정당이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사장을 끝으로 퇴임했으며 현재는 대한언론인회 주필, 일요신문 일요칼럼, 논객닷컴 등의 고정필진으로 활동 중입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및 감사를 역임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