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나라냐' vs '이게 국민이냐'

카테고리 없음|2016. 12. 29. 18:02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박 대통령의 잘못은 국민 눈높이 변화 읽지 못한 것

전직 대통령들과 과오 비슷하면 그것만으로도 지탄받는 시대 돼

국민도 대통령 개인 문제 넘어 국가 시스템 개조에 힘 보태야


   올해 94세인 헨리 키신저는 20세기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가장 가까이서 접했던 인물 중 하나다. 



윤희숙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그런 그가 최근 저서 '세계질서'에서 정보·기술의 발전을 우려의 눈길로 바라본 것은 지금 우리에게도 큰 시사점을 준다.


통상 정보화가 기회 요인으로 간주되는 것과 달리, 키신저는 위험 요인적인 측면을 부각하고 있다. 사건과 정보가 빛의 속도로 공유되는 환경에서는 생각의 심도 있는 교류보다 감정적 합의가 더 중요해지고, 빠른 입장 표명을 강제당하는 지도자는 대중의 입맛에 맞는 설익은 생각을 남발하게 되니 포퓰리즘의 온상이 된다는 것이다.


더구나 대중의 단기적 승인을 받기 어려운 견해를 밝히는 데는 용기와 강인함이 필요한데, 이러한 덕성은 역사의식에 기반을 둬 닥친 문제를 곱씹는 과정에서 숙성되기 때문에 점점 더 갖추기 어려워진다. 변화가 빨라져 무엇이 의미 있는 정보이고,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판별하는 탁견이 중요해지는데 엘리트는 얄팍한 흐름에 휩쓸리곤 하니, 결국 엘리트의 수준은 국가의 미래를 가늠하는 잣대이다.



세월호 당일 대통령이 피부 시술을 받았는지가 논란의 중심이 된 지 한참이다. 대통령 개인의 일정을 투명하게 밝히지 못하는 사연이 무엇인지 답답하긴 하나, 지금은 최순실 사태로 드러난 국정 시스템의 문제를 샅샅이 파악해 무엇을 없애고 무엇을 남겨야 할지를 규명해야 하는 시점이다. 더구나 세월호 사건의 원인과 대응 실패에 대해선 아직 제대로 된 분석조차 없으니 청와대에서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지가 왜 중요한지 판단할 근거도 없다. 역설적이게도 '세월호 7시간'은 이 중차대한 시국에 온통 그것에만 관심이 쏠리는 것에 영합하고 그 밖의 것에는 침묵하는 우리 사회 엘리트의 생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역대 대통령 중 존경받으며 청와대를 나선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 YS 이후 모든 대통령이 친인척 비리로 황망하게 국정 관리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은 권력의 사유화라는 점에서 이번이 왜 특별한지, 우리가 느끼는 분노의 본질이 무엇인지 깊이 들여다봐야 할 필요를 말해준다. 개인의 무능력과 도덕성 문제로 치환해 대통령 끌어내리기만 목표하는 것은 지금 우리가 지불하는 비용에 비해 너무나 왜소하고 근시안적이다. 이 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던 구조를 규명하고 뜯어고치지 못한다면, 미래는 지금의 반복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탄핵받을 만큼의 잘못이 없다는 대통령의 버티기는 양가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어떻게 감히'라는 분노가 치미는 한편, 과거로부터 이어진 관행을 감안해 법적으로 따져보자는 태도는 우리에게 판단의 단초를 제공하는 큰 보시일 수도 있다.


대통령의 잘못은 무엇보다 시대를 읽지 못한 것이다. '탄핵받을 만큼'이라는 판단은 시대를 초월하는 기준이 아니다. 개발독재나 민주화 초기에는 권력자의 권위가 철저한 상하관계의 꼭대기에 있었고, 국민 다수에게 설명하고 용인받아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부재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과거 대통령들과 다르지 않다면, 그들보다 훨씬 무겁게 지탄받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경제사회 환경과 국민이 달라진 이상, 국민 기대치에 얼마나 미달하는지는 중요한 기준이며 칼날 같은 국제 경쟁 속에서 국가와 사회를 이렇게 오래 멈춰 세운 죄 역시 막중하다.




그러나 국민이 자각해야 할 교훈 역시 크다. 법 테두리 안에서 평화적 표현을 통해 탄핵에 이른 것은 우리 역사의 주요 사건이자 성취이다. 그러나 이는 문제 해결의 시작일 뿐이다. 의미 있는 문제를 제기하고 감정적 쏠림을 거슬러 냉정을 촉구할 용기와 책임감을 갖지 못한다면, '이게 나라냐'는 탄식은 곧 '이게 국민이냐'로 이어질 것이다. 그것은 한국을 업그레이드할 기회의 박탈이다.

조선비즈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27/201612270289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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