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아와 영재의 사이 [안진의]


www.freecolumn.co.kr

문제아와 영재의 사이

2016.12.22


한 모임의 소풍 때 마다 만나는 아이가 있습니다. 지금은 어느덧 커서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를 볼 때마다 탐구심이 강한, 아주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림도 잘 그리고 시인처럼 시도 멋지게 쓰는 아이입니다. 

아이의 엄마는 항상 체험학습을 중요시했고, 그래서 유치원도 일반 유치원이 아니라 숲에서 뛰어 놀게 하는 특수한 유치원을 보냈던 걸로 기억합니다. 유치원(kindergarten)이라는 단어가 아이들(kinder)과 정원(garten)이라는 뜻을 가진 합성어이고, 아이들이 자연을 벗 삼아 잘 노는 것이 최고의 교육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자유로운 영혼이 제도권 학교 교육에 들어가서는 잘 적응을 못하는 것 같아, 그 엄마가 많이도 안타까워했습니다. 바로 1학년 때 담임선생님 때문이었는데요. 선생님 입장에서는 가르쳐주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이 아이 때문에 수업 분위기가 잡히지 않고, 마음대로 컨트롤이 되지 않자 문제아 취급을 했던 모양입니다. 

한 예로 학부모 참관 수업 시, 담임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아이는 주어 서술어 없이 "” 라고 단어만 말했다고 합니다. 정답이긴 하지만 선생님은 싸늘한 시선으로 다른 아이들에게 다시 질문을 던지고, 어느 학생이 손을 들고 “정답은 입니다”라고 답하자, 그제야 아이들은 일제히 “네 맞습니다”라며 박수를 치고, 선생님은 정답처리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아이는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발표할 때의 매뉴얼을 숙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담임선생님이 볼 때 수업시간에 아이의 자세도 바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똑바로 앉아있지 못하고 종종 비스듬히 걸터앉거나, 책상위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 있어서 야단을 맞았다고 합니다. 이제 1학년인 아이인데 말입니다. 담임은 수업시간 중임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행동을 학부모에게 문자로 알리는 등, 평생 교육하며 이런 경우가 없었다고, 아이 때문에 통솔에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했다고 합니다. 

아이가 하교하자 아이 엄마는 나긋한 목소리로 물어보았다고 합니다. “수업시간에, 왜 엎드려 있었어?” “엄마, 책상위에 볼을 대고 누워있으면 볼이 시원해져요.” 언젠가 태권도 도장엘 들리지 않고 집으로 귀가한 아이에게 왜 학원엘 가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하늘의 구름을 보며 걷다보니 어느새 집에 와버렸다고 말하던 아이였습니다.

다행히도 2학년이 되어서는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선생님이 애정을 갖고 지도해주셨던 모양입니다. 발상은 독특하지만 부산해 보이는 아이의 태도가 염려되었는지, 교탁 옆 책상에 앉혀놓고 지도를 해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4학년이 되어서는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과학영재 시험에 합격을 했다는 것입니다.

아이 엄마는 아직 면접이 남아있지만, 이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합니다. 1학년 때 담임선생님 때문에 친구들과 다른 학부모들에게도 문제아 취급을 받고, 늘 아이가 기죽어 다녔던 걸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진다며, 그들의 인식이 달라질 것이라는 점에 약간의 위로를 받는 듯 했습니다. 

결국 같은 아이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 문제아도 될 수 있고 영재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그 차이는 규율의 의미를 이해함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규율(discipline)이란 학생의 행동에 가해지는 의도적인 규제나 훈련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규율의 관점으로 본다면 그 아이는 문제아도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교육에 규율이 아주 강조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 시기는 1920년대 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1929년 발행된 『조선의 교육연구』라는 책에는 경성사범학교 부속보통학교의 훈육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수업 중에 학생이 지켜야 할 규율에 대한 부분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수업 중 선생에게 주의하자. 질문이나 답은 확실히 하고 말끝을 분명히 하자. 다른 사람의 말을 조용히 듣자. 쓸데없는 말을 하지말자. 거수는 왼손을 사용하자. 자세는 언제나 바르게 하자. 함부로 자리를 이탈하지 말자.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규율이 강조된 교육의 이면에는 근대적 일본인을 만들겠다는 당대의 의지와 함께 메이지유신 이후 천황의 신민을 창출하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물론 학교에는 규칙이 필요합니다. 사회에 법이 있듯이 학교도 하나의 작은 사회니까요. 하지만 그 규칙이 규율적 성격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하나의 틀 안에 모양 짓고, 아이들 개인의 특성을 일반화 시키는 과정에서 영재는 문제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개성을 온전히 다 살려주면서 각자의 능력을 개발해 주는 교육. 그래서 각자의 소질에 맞게 모두 영재가 될 수 있는 교육. 그런 교육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요? 우리 사회에 진지하게 질문해 봅니다.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그룹은 특정한 주의나 입장을 표방하지 않습니다.

필자소개

안진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교수. 삶의 중심은 그림이지만 그림과 함께 일상을 풀어내는 방법은 글이다. 꽃을 생명의 미학 그 자체로 보며 최근에는 ‘꽃과 문명’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저서 <당신의 오늘은 무슨색 입니까>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