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안보, 민생 리더십 본받을 때 [신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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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안보, 민생 리더십 본받을 때

2016.12.19


세종은 평생의 염원인 훈민정음 28자를 만들기 전에 국가를 단단히 정비했습니다. 첫째, 국가 정보를 명나라로 흘려보낸 개국 공신의 아들인 임군례라는 통역관을 거열형(車裂刑, 죄인의 팔 다리 목을 각각 수레에 매달아 찢어 죽이던 형벌)에 처했습니다. 거열형은 진나라 때부터 시작된 것으로 중국과 조선에서 죄질이 가장 나쁜 사람에게 내리는 최고의 극형입니다.

명나라와 가장 밀접한 (종번: 宗藩)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명나라 간첩을 처벌한 것입니다. 세종은 국내 정보를 함부로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주권을 유린하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용서하지 않는다는 통치의 기본을 솔선해 보여준 것입니다.

둘째, 서울성곽(한양도성)을 지금과 같이 돌로 견고하게 재건축했습니다. 최초의 서울성곽은 형편없었습니다. 18.6㎞에 달하는 성곽의 70% 구간은 흙으로, 30% 구간은 돌로 되어 있었습니다. 세종은 이것을 채 30년도 안 되어서 백성 32만 명을 동원, 지금과 같은 성곽을 45일 만에 완성했습니다. 45만 명을 부를 계획이었으나 공기와 공법(工法)을 수정, 12만 명을 줄였습니다. 21세기 공사 현장에서 사용하는 PERT공법을 이미 적용한 것입니다.

서울성곽은 아주 대단한 건조물입니다. 유럽의 잘 지어진 대부분의 성은 주인과 측근 몇몇을 위한 피난 및 보호시설이었지요. 하지만 서울성곽은 일반 백성들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지은 방호 및 주거, 통치 시설입니다.

방호설계도 완벽합니다. 성벽을 직선이 아니라 구불구불하게 만들었습니다. 성벽을 기어오르거나, 공격하는 적병을 이쪽저쪽에서 상호 감시하고 막아내도록 한 것입니다. 여장(女牆)을 세우고 구획을 나눠 한 구획당 총구멍을 3개씩, 옥개석에는 손으로 잡을 곳을 없애 적병이 올라오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지형적으로 불리한 동대문 지역에는 다른 공법을 사용했습니다. 동대문 근처는 지반이 무르고 다른 곳에 비해 열려 있습니다. 적의 주력부대가 달려들지 못하도록 다른 대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옹성을 쌓았습니다. 또 직선 성벽에는 치(雉)라고 부르는 높은 망루를 5개나 지어, 그곳을 통과하는 2개의 수문과 대문을 보호하도록 보완했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명나라를 자극했을지는 200년 뒤 병자호란 때의 항복 조건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전쟁에 이긴 청나라는 대략 9개 항의 항복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그중 하나가 조선은 지금부터 새로 성을 쌓지도 말고, 수리하지도 말라고 요구합니다. 실제로 장마에 성이 조금 허물어져 수리했는데, 청나라의 강요로 눈물을 흘리며 헐어야만 했습니다.

세종은 비장한 각오로 성곽을 새로 쌓았습니다. 그것은 명나라에 대적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는 정말로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지금과 당시의 무력을 비교하기가 쉽지 않겠지만, 사드 100개 포대 이상에 해당하는 방어 시스템을 서울성곽에 설치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세종도 훌륭하지만, 성곽의 위력을 잘 알면서도 이왕 지은 것을 가지고 왈가왈부하지 않았던 명나라도 대단했습니다.

세종은 이렇게 조치해 놓고 명나라의 모든 정보기관원 눈을 피해 극비리에 훈민정음을 완성했습니다. 곧이어 황희를 포함한 관료와 양반들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전분 6등, 연분 9등으로 세제(稅制)를 개혁했습니다. 피폐해진 백성의 삶을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정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 국회를 보면 도대체 갈피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나라 안보를 좌판에 내놓고, 내일은 어찌 되든 오늘 저녁 먹을 한 됫박 양식과 바꾸려는 사람들 같습니다. 중국이 단지 거북하게 생각한다고, 사드 부지를 포함한 국가 기밀까지도 다 까발리고 있습니다. 가장 시급한 주권 수호와 청년의 일자리를 마련할 법안 등 불가결한 법안조차도 뭉개고 있습니다.

라인란트 재무장을 등한시했던 유럽은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렀습니다. 중국 못지않은 거대한 아랍국가로 둘러싸인 이스라엘은 아랍이 죽이겠다고 미사일을 쏘고, 폭탄 테러를 하며, 아무리 겁을 줘도 눈도 꿈적 안 합니다. 반면교사(反面敎師)입니다.

북한에서 미국으로 쏘는 미사일은 대한민국 영공을 지나지 않습니다. 대권항로인 알라스카 쪽으로 날아갑니다. 이 말은 우리나라에 배치될 사드 포대는 우리나라를 향한 미사일만 요격한다는 뜻입니다.

결론은 간단합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가지고 있는 한, 중국은 우리에게 북한의 그것을 폐기할 방안을 제시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구걸할 것이 아니라, 자위의 당위성을 당당하게 피력해야 합니다. 만약 불가능하다면 이스라엘처럼 현재보다 더 강력하게 응징을 가하고, 완벽한 방어시스템을 갖는 것뿐입니다. 사드는 그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며 더 많은 자위책을 강구해야만 합니다.

사흘 배불리 먹겠다고 100년을 굴종하면서 살 수는 없습니다. 안보를 위해 세종이 서울성곽을 완비한 것과 같은 결단이 꼭 필요한 시점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외친 필사즉생(必死則生)을 떠올립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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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현덕

서울대학교, 서독 Georg-August-Universitaet,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몽골 국립아카데미에서 수업. 몽골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방어. 국민일보 국제문제대기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경인방송 사장 역임.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독은 독일보다 더 크다, 아내를 빌려 주는 나라, 몽골 풍속기, 몽골, 가장 간편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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