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총리가 프랑스를 방문한 횟수, 79회 [이성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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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총리가 프랑스를 방문한 횟수, 79회

2016.12.08


근래 출간된 책 <헬무트 콜 그리고 역사의 외투(Helmut Kohl und der Mantel der Geschichte, Suddeutsche Zeitung Edition)>(2016)를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독일 통일을 이끈 총리 헬무트 콜(Helmut Kohl, 1930~)에 관한 책이라 필자가 관심을 가졌고, 책을 펴낸 출판사가 독일 언론사 중에서도 남부 독일을 대표하는 이름난 좌파 진보 계열이라 더욱 관심이 갔습니다.

또 헬무트 콜이 직접 집필한 자서전이 아니고, 유명 출판사가 엮은 한 인물에 대한 전기(傳記)라 다양하고 많은 내용이 담겼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좌파 진보 언론으로서 헬무트 콜이 기피하는 곳으로도 널리 알려진 대표적 두 매체 <데어 슈피겔(Der Spiegel)>과 <쥐트도이체 차이퉁(Suddeutsche Zeitung)> 중 하나가 정치색이 다른 우파 정치인 헬무트 콜 총리를 크게 다루었다는 사실이 필자의 독서욕을 자극했습니다. 더욱이 헬무트 콜 총리는 아주 유머러스해서 주변 사람이나 청중을 재미있는 일화로 사로잡는 정치인이기도 합니다.

이 책은 400쪽이 넘는 분량인데도, 중요한 대목을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해 읽는 재미를 더합니다. 특히 독일 통일이란 역사적 거사를 전후해 펼쳐진 숨가쁜 상황 전개에 담긴 여러 일화를 긴장감 넘치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Berliner Mauerfall) 직후 드레스덴(Dresden)에서 행한 연설문, 베를린 장벽 붕괴 10주년 기념식 연설문 등을 읽으며 한 국가의 한 시대가 남긴 생생한 궤적을 따라가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습니다.

아울러 헬무트 콜 총리를 둘러싼 재미있는 풍자(諷刺) 외에도 그가 거침없이 전하는 에피소드는 짧은 단막극을 보는 듯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1990년 한 TV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른 아침에 베를린 동물원을 혼자 산책하던 중 때마침 유인원 우리(Menschenaffenhaus, 類人猿舍) 근처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여성 연금 생활자(Rentnerin, 보통 정년 후 노인을 가리킴)가 나를 보더니 ‘당신, 콜이 아니오?’라고 묻기에 ‘네’라고 대답했지요. 그랬더니 그 여성이 저한테 되묻더군요. ‘왜 이렇게 밖에서 돌아다닙니까?’” 많은 매체에서 자신을 큰 체구에 무척 비만하기 때문에 고릴라 같다고 풍자하는 걸 언급한 것입니다. 그의 여유로운 해학(諧謔)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의 끈질긴 정책 수행은 남달랐습니다. 그랬기에 독일 통일이라는 길고도 험난한 길을 묵묵히 걸어갔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합니다.

단문 단답 형식의 인터뷰에는 이런 것도 보입니다. 질문: 첫 방문 국가는(총리로서)? 답: 영국. 질문: 총리로서 프랑스를 가장 많이 방문했다. 몇 번? 답: 79회. 질문: 총리로서 마지막 방문한 국가는? 답: 폴란드. 그 짧은 질문과 대답 속에서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역사의 한순간을 보는 듯싶었습니다.

헬무트 콜이 이웃 나라 프랑스를 79회 방문했다면 다음과 같은 ‘외교 방정식’이 가능할 것입니다. 79회 x 2(쌍방)=158회(외교 관례상 양국 대표가 교차 방문). 그렇다면 158회/임기 16년(1982~1998)=9.88회. 다시 말해 한 해에 10회 가량 됩니다. 요컨대 거의 매달 두 정상이 얼굴을 맞대고 ‘고운 정 미운 정’을 나누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총리로서 폴란드를 마지막 방문지로 선택한 것은 선대가 저지른 과오는 아무리 사죄해도 끝이 없다는 의미의 외교적 제스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사가 보여주듯 나치 독일이 가장 큰 고통을 안겨준 이웃 나라는 바로 폴란드였기 때문입니다. 그에 앞서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1913~1992)도 총리로서 첫 방문 국가로 폴란드를 선택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렇습니다. 국가를 대표하는 정치인은 지리적으로든 정치 이념적으로든 아무리 관계가 소원해도 얼굴을 맞대고 앉아 대화를 나누어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식으로든 해결책이 나올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일화에 의하면 독일 통일에 대해 영국의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1925~2013) 총리는 거대(巨大) 독일을 꺼려 반대했고, 이에 ‘아버지’ 부시(George Bush, 1924~) 미국 대통령이 대처 총리를 설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프랑스쪽에서는 독일 통일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이 없었다니, 위에서 언급한 프랑스와 독일 두 국가상간의 '만남의 외교'가 어떠한 역사적 무게를 가지는지 새삼 생각하게 합니다. 

필자의 글(자유칼럼 ‘한일 우정, 다시 생각해야’, 2014.8.27)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이제 프랑스인들은 독일을 ‘친구 나라’로 여긴다고 합니다. 이는 끈질긴 역사의 굴레를 뛰어넘었다는 뜻입니다. 그 이유 역시 ‘프랑스 방문 79회’라는 헬무트 콜의 ‘외교 방정식’에 답이 있을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우리 정부가 2012년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때 일본 아베 총리의 참석을 능동적으로 배제했던 사실이 떠올랐습니다. 이것 역시 우리 시대의 상징이 된 불통의 한 단면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책을 다 읽고 덮으면서 생각나는 게 더 있었습니다. 헬무트 콜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총리직에서 불명예스럽게 퇴출당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정치 색깔을 달리하는 출판사가 그에 대한 전기를 발간하면서 편중된 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반듯하게 편집했다는 게 큰 특별함으로 다가왔습니다.

독일 통일을 이룩한 총리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불명예스럽게 퇴임한 정치가를 혼동하지 않으면서 균형 있게 평가했다는 점이 근래 우리 사회에 만연한 어두운 구석과 대비되어 큰 교훈을 남깁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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