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파리기후협정 어떡하나?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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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파리기후협정 어떡하나?

2016.11.28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에게 점점 심해지는 지구온난화는 전혀 걱정거리가 아닌 모양입니다. 뉴욕 맨해탄 5번가에 있는 금빛 찬란한 58층 트럼프타워 펜트하우스에서 안락하게 30년 이상 살아온 그에겐 밖에 비가 오든 눈이 오든 폭풍이 불든, 기온이 올라가든 내려가든 피부로 느낄 수 없었을 테니까요.

땅이 넓고 기후대(氣候帶)가 다양한 미국에서는 지구온난화 또는 기후변화 현상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구과학이 매우 발달한 곳이 미국인데도, 그리고 미국을 포함한 서구의 과학자들이 수십 년 연구해서 밝혀낸 지구온난화의 과학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큰 나라 사람들의 위기의식이 매우 무딘 것 같습니다. 
 
미국인 중에서도 트럼프 당선자는 지구온난화에 대한 인식이 참으로 남다릅니다.  2012년 11월 26일 트럼프가 트위터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습니다.
“지구온난화의 개념은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려 중국이 중국을 위해 만들어낸 사기극(hoax)이다.”

지난해 미국 대통령 선거전이 불붙으면서 트럼프의 대내외 정견에 대한 언론의 보도 중에 위와 같은 트럼프의 지구온난화 언급을 보고 처음에 ‘그럴 리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매우 놀라웠습니다. 트럼프가 지구온난화 개념을 믿지 않은 것은 과학에 대한 그의 신념의 문제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구온난화 개념을 중국이 만들어낸 사기극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뜻밖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구온난화 가설이 중국의 사기극이 아니라는 건 그의 참모들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물론 트럼프는 모를 수도 있었지만 이 말을 한 것은 미국 노동자들을 선동하기 위한 정치 공세의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트럼프는 대통령 선거운동이 본격화하자 다시 오바마 정부의 지구온난화 정책을 공격했습니다. 당선되면 ‘파리기후협정에서 탈퇴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 얘기가 트럼프의 입에서 거칠게 나왔을 때 세계는 별로 놀라지 않았습니다. 기후변화에 매우 민감한 유럽 사람들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트럼프가 예상을 뒤엎고 대통령에 덜컥 당선되었습니다. 트럼프의 당선으로 세계 모든 국가는 그가 던져버리거나 변경할 미국의 기존 대외 정책에 신경이 곤두 서 있습니다. 온실가스 감축을 규정한 파리기후협정도 그 중 하나입니다.

파리협정은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 8년 동안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전 세계 195개 국가를 묶어 합의한 국제조약입니다. 오바마는 강제적 온실가스감축에 반대하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끈질긴 협상을 통해 합의를 이끌어냈고, 미국 내에서는 석탄화력 발전소의 대대적 폐쇄 등 혁신적 에너지 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오바마 정부는 전임 조지 부시정부가 교토의정서를 탈퇴하는 등 반 환경정책을 폈던 것을 친 환경정책으로 180도 돌려놓았습니다.

트럼프는 오바마 치적을 지우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엔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에 대한 개념이 없습니다. 이제 미국 정부의 방향타는 트럼프 손에 잡혀 있습니다. 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당선됐습니다. 그를 당선시킨 유권자의 다수는 과거 미국 노동자를 잘 살게 했던 석탄 석유 에너지를 토대로 한 굴뚝산업의 향수에 젖어 있습니다. 그의 산업 및 환경 정책도 이런 기조위에 세워질 것은 분명합니다.

아니나 다를까요. 트럼프는 정권 인수팀에 반 환경 인물 마이런 에벨을 들여앉혔습니다. 기업경쟁력연구소(CEI) 소장인 에벨은 트럼프정부가 내년 1월 20일 출범하면 미국 환경보호청(EPA) 청장으로 유력시된다고 미국 언론이 일제히 전했습니다. 에벨은 지구온난화로 기후가 변화한다는 이론을 뼛속깊이 부정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하며 화석연료 사용을 옹호하는 친 기업적 인사입니다. 그는 환경운동을 하는 앨 고어 전 부통령을 ‘어둠의 세력’으로 단정한 사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21세기 인류 최대 위기가 될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195개국이 모여 만든 파리기후협정은 어떻게 될까요.
트럼프 당선자는 최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파리협정 철회에 대한 미국의 입장과 관련 ‘열린 마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철회 공약에서 한발 물러선 것입니다. 지구온난화에 대한 인간의 영향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듯했습니다.

이런 태도 변화로 볼 때 트럼프 정부가 국제적 비난을 감수하며 파리기후협정을 탈퇴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그렇지만 트럼프는 오바마 대통령과는 달리 파리협정의 실행을 위한 적극적인 지도력을 발휘하지 않을 뿐더러 미국의 온실가스 감축 약속도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트럼프 정부는 파리기후협정을 사실상 사문화(死文化)로 몰고 갈 것입니다.

트럼프가 백악관 주인이 될 향후 4년 또는 8년 동안 인류 문명의 최대 위기가 될지도 모를 기후변화 대응을 놓고 국제공조는 매우 불안정해질 것입니다.
인류 문명은 일직선으로 진보하지 않고 후퇴하거나 갈지자걸음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트럼프가 백악관으로 이사하는 2017년이 바로 퇴보의 시작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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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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