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외서리 [한만수]



www.freecolumn.co.kr

참외서리

2016.11.25


아침을 먹고 점심을 걱정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은 동네에서 한두 집을 제외하고는 모두 가난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요즘처럼 먹거리가 풍부하던 시절이 아니라서, 산이고 들이고 다니다가 먹을 것이 있으면 아무 생각없이 그것을 취해서 먹었습니다.

봄에는 산으로 다니며 진달래꽃잎이나, 찔레꽃나무의 어린 순, 삐삐라 부르는 억새풀의 어린 순 안에 들어 있는 보드랍게 촉촉한 털을 뽑아 먹기도 했습니다.

여름이 되면 참외서리나 수박서리를 해서 먹습니다. 서리를 할 때는 서너 명이 요즘 말로 팀을 짜서 서리를 합니다. 참외밭 주인이 오는지 망을 보는 아이가 있고, 두 명은 살금살금 참외밭으로 기어가서 참외를 땁니다.
 
망태나 자루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러닝셔츠 안에 몇 개를 넣거나, 양손에 한 개씩 따 들고 참외밭을 벗어납니다. 정신없이 뛰어가서 침외밭이 안 보이는 지점에 앉아서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나서 참외를 먹기 시작합니다.

나이가 많은 형들은 닭서리도 하고 토끼서리도 했다면서 자랑을 하는데, 저는 동물서리는 해 본적이 없습니다.

닭이나 토끼를 서리당한 집의 아낙네는 새벽의 안개가 걷히기도 전에 “어떤 놈이 우리 집 닭을 서리했다!” 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릅니다.

요즘 같으면 파출소에 고소를 하겠지만 그 시절에는, 입에 거품이 물도록 고함을 지르다 아침을 먹을 무렵이면 누구누구가 서리를 했을 것이라는 심증만 간직한 채 잊어버립니다.

가을에는 학교에서 하교를 하는 길에 무 밭에 들어가서 팔뚝만한 무를 뽑습니다. 이빨로 껍질을 벗겨서 무 한 개를 다 먹으면 배가 불룩해지면서 트림이 나오거나 방귀가 나옵니다. 그러면 서로 손가락질을 하며 무 방귀 뀌었다고 목젖이 보이도록 웃어 재제낍니다.

정월대보름날은 찰밥서리를 합니다. 달이 밝은 정월대보름날은 대개 어느 집으로 모여서 밤을 새웁니다. 밤이 이슥해지고 배가 출출할 시간이 되면 누군가의 제안으로 찰밥서리를 공모합니다.

이날은 집집마다 찰밥을 지어서 소쿠리에 담아 놓거나 밥솥 안에 담아둡니다. 방해물이 될 개가 없고 비교적 잘사는 집을 선택해서 도둑처럼 살금살금 부엌 안으로 들어갑니다.

소리 나지 않게 솥뚜껑을 열거나, 소쿠리에 담아 놓은 찰밥이랑 김치를 서리해서 침을 흘리며 기다리는 친구들에게 가면 박수를 치며 환호합니다.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 참외밭에는 과수원이 들어서고, 탱자나무 울타리가 키를 세우기 시작하면서 서리는 도둑질이라는 개념으로 자리를 잡아갔던 것 같습니다.

누구는 수박 몇 개를 서리했다가 한 해 농사값을 물어 줬다. 과수원에서 사과 몇 개를 땄다가 절도로 파출소에 고소를 당했다는 소문이 나돌면서 서리는 추억속으로 사라졌던 것 같습니다.

서리를 하다 들켜도 무릎을 끓고 손을 드는 벌을 서거나, 주인으로부터 장시간 훈계를 듣는 것으로 끝이 나던 시대가 지나면서 이웃사촌의 문화도 꼬리를 감추어 갑니다.

노지에서 제배를 하던 참외나 수박은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게 되고, 과수원의 탱자나무 울타리는 사라졌지만 남의 농작물을 모르게 취하면 죄가 된다는 생각에 서리도 사라졌습니다.

탱자나무 울타리가 없어지고, 사과나 배 복숭아 가지가 길로 뻗어 나와도 주인 모르게 따먹지 않습니다. 내 것과 남의 것의 경계가 법적으로 정확하게 선이 그어져 있으니까요.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끼리 상대방의 땅을 침범했다, 선친으로부터 허락을 받을 것이다. 라는 문제로 법정에 서는 일은 흔한 일입니다. 층간 소음 문제로 살인이 나는가 하면, 수백년 전부터 동네 사람들이 다니던 길을 막고 통행료 운운하는 일도 벌어집니다.

작금의 우리나라 정치는 혼란과 절망과 분노로 얼룩져 있습니다. 저는 최순실 사태의 근본이 어느 특정인들의 잘못이기 전에 극단적 이기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순실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일찍부터 파악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자기하고 상관이 없는 일이니까 그냥 넘겨버렸을 겁니다. 만약 초창기에 최순실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엄정한 법의 잣대를 댔다면 오늘처럼 전 국민이 분노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참외를 서리 당한 주인은 얼마나 억울하고 답답하겠습니까? 하지만 오죽 배가 고팠으면 참외를 서리했을까 하는 생각에 서리꾼들을 용서했을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말해서 공무원들이 내가 바로잡지 못하면 국민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내가 정당한 예산을 집행하지 않으면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더라면 세계적으로 수치스러운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한 의미로 볼 때 자의든 타의든 최순실이라는 존재의 가치에 대해 알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공범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뉴스의 초점은 최순실과 대통령에게만 집중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가난하고 못 먹던 시절이라도 나이가 들수록 그 시절이 그리운 이유 또한 단순한 향수 때문이 아닐 겁니다. 서로를 배려하는 따뜻한 정이 그립기 때문일 것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이 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상업적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한만수

1990년부터 전업으로 소설을 쓰고 있음. 고려대학교 문학석사. 실천문학 장편소설 “하루” 등단. 대하장편소설 “금강” 전 15권 외 150여권 출간. 시집 “백수블루스”외 5권 출간. 이무영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활” 문화예술진흥위원회 우수도서 선정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