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아이치학원大 교수, 고이즈미 야쿠모 ‘이중국적’ 가능성 제기 小泉八雲は二重国籍? 英国、離脱認めぬ書簡

카테고리 없음|2016. 11. 25. 22:16


영국과 일본 이중 국적 유지 주장

영국, 일본인과 결혼 시 국적 이탈 금지조치

다케시타 슈코(竹下修子) 교수 논문 발표


   일본인 여성과 결혼해 일본 문화를 해외에 널리 알린 메이지 시대의 작가 고이즈미 야쿠모(小泉八雲=라프카디오 헌, 1850~1904년)는 영국이 국적 이탈을 인정하지 않아 일본과의 ‘이중국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논문을 아이치(愛知) 학원대학의 다케시타 슈코(竹下修子) 교수(가족사회학)가 24일 밝혔다.


고이즈미 야쿠모(小泉 八雲) source Becoming legally Japanese


小泉八雲は二重国籍? 英国、離脱認めぬ書簡

http://conpaper.tistory.com/46244


* 고이즈미 야쿠모(小泉 八雲)

패트릭 래프카디오 헌(영어: Patrick Lafcadio Hearn) 

그리스에서 태어난 일본인 소설가

1850년에 당시 영국의 보호령이던 이오니아 제도 연합주의 레프카다에서 아일랜드계와 그리스계의 혼혈인으로 태어났다. 그가 2살이던 1852년에는 아일랜드로 이주하여 살았고, 이 시기에 사고로 한쪽 눈을 실명하였다. 19살이 되던 해인 1869년에는 미국에서 잠시 기자로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1890년에 일본의 시마네 현에 있는 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면서 일본에 정착하였다. 이후에는 일본의 유서깊은 사무라이 가문인 고이즈미 가의 여성과 결혼을 하고 일본으로 귀화하면서, 처가의 성인 '고이즈미'(小泉)를 따서 '고이즈미 야쿠모'라는 이름을 지어서 쓰기 시작했다. 도쿄 제국대학의 교수로 임용되기도 하였으나 이내 방출되었고, 이후 도쿄 부의 도요다마 군에 정착해 1904년에 사망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출처 위키


edited by kcontents


야쿠모는 마쓰에 시(松江市)에 살 때 자신의 신변 시중을 들던 세쓰(セツ)와 결혼했다. 여성 호주와 결혼하는 ‘뉴후(入夫, 데릴사위에 해당)’라는 형태로 1896년 당시 일본 국적에 해당하는 ‘일본인 신분 (日本人タルノ分限)’을 얻어 일본인이 되었으나, 야쿠모의 새로운 인물상을 그리는 자료로서 주목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다케시타 교수에 따르면 야쿠모 이전에도 있었던 영국인 남성과 일본인 여성과의 뉴후 혼인에 대해 영국은 서한으로 “혼인을 해서 신민으로서의 의무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도저히 허가할 수 없다”며 국적 이탈을 인정하지 않았다.


고이즈미 야쿠모는 그의 시중을 들던 

일본여자와 결혼했다.

출처 위키


시마네 현(島根県)이 야쿠모의 ‘일본인 신분’ 취득 절차를 영국 영사에 조회했다. 1896년에 대리 영사가 야쿠모에게 답변한 미공개 서한이 이케다(池田) 기념미술관(니가타현 미나미우오누마 시=新潟県 南魚沼市)에 소장되어 있으며 거기에는 ‘일본 측의 절차 만으로 완료한다’고 기록돼 있었다.


다케시타 교수에 따르면 이 내용은 영국 정부가 일본인과의 국제 결혼에 의한 국적 취득과 상실에 대해 과거의 사례를 근거로 “영국 측의 수속은 필요하지 않다, 즉 이탈 수속에 응하지 않겠다는 자세를 의미하고 있다”면서 야쿠모가 사실상 일본과 영국의 이중 국적이었을 가능성이 지극히 높다고 결론 지었다.


야쿠모가 ‘일본인 신분’을 취득한 것은 부인을 영국 국적으로 했을 경우, 부인과 자녀가 거류지에서 살게 돼 일본인 사회에서 고립될 우려가 있었다는 것과 연상이었던 야쿠모가 사망한 뒤 부인이 일본에서 부동산을 소유할 수 없게 될 일 등을 고려했기 때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야쿠모의 증손으로 ‘고이즈미 야쿠모 기념관’(마쓰에 시)의 고이즈미 본(小泉凡) 관장은 “미공개 서한이 결정타가 된 귀중한 발견이다. 사실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논문은 아이치학원대학 인간문화연구소 기요 ‘인간문화’ 31호에 게재됐다. 【교도통신】)

케이콘텐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