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 미국인은 한국인을 어떻게 볼까?"

카테고리 없음|2016. 11. 15. 21:10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비인간화:사람이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을 때


   대선 이후 미국은 각종 인종차별과 여성, 소수자 혐오로 몸살을 앓고 있다. 


GIB 제공

edited by kcontents 


히스패닉계 교수의 강의실에 낯선 백인들이 난입해 “닥치고 너네 나라로 돌아가라”는 발언을 한 사건이나, 모 대학에서 흑인 학생들이 단체로 흑인 비하 발언과 함께 ‘린치 협박’을 받기도 했다. 모 후보가 대놓고 차별적 발언을 하고도 당당히 당선이 된 후 그간 쌓아뒀던 ‘차별하면 안 된다’고 하는 합의가 상당히 타격을 받은 모양새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고 방식과 행동이 아무 맥락없이 짠 하고 생성되기 보다 많은 부분이 사회의 합의/규범의 안에서 생성된다. 적당한 규범이 성립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는 눈치 보다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고 따라한다’가 많은 사람들의 행동 규칙이다. 예컨대 방에서 ‘불’이 나도 혼자인 경우에는 본능을 따라 바로 도망가지만, 여러 사람들이 존재하게 되면 어떻게 할지 서로 눈치부터 본다. 그러다가 결국 혼자일 때보다 대피가 늦어지는 현상이 나타나곤 한다.


어떤 경우에라도 흔들리지 않는 자기만의 규칙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혹은 모두가 YES 또는 NO 라고 할 때 혼자 반대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드물다. 이렇게 행동 규범을 외주하는 인간으로서 차별주의자들 (및 차별에 대해 평소 별 다른 생각이 없던 사람들)의 경우 자신과 같은 차별주의자, 또는 적어도 차별을 방관할 용의가 있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는 메시지는 이제부터는 ‘차별해도 된다’는 허용이다. 이미 가지고 있던 차별과 생각 없음을 꺼내는 것에 불과하지만, 차별을 밖으로 휘두르는 것과 그러지 못하는 것의 차이는 매우 크다.


이번 기회에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기존의 차별의식을 잘 보여주는 연구를 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비인간화(dehumanization)

‘비인간화(dehumanization)’는 말그대로 어떤 사람이나 집단을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방을 ‘벌레’ 또는 ‘짐승’ 정도로 여기는 행동들이 대표적이다. 다양한 차별뿐 아니라 나아가 전쟁이나 학살 같은 상황에서도 흔히 나타난다. 예컨대 과거 나치들은 유대인을 ‘해충’에 비유했고 과거 백인들은 흑인들을 ‘유인원’에 빗대었으며, 르완다 학살 때는 투치족을 ‘바퀴벌레’로 비유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


이런 비인간화는 인간의 ‘잔인성’을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한다. 단순히 같은 인간이 아니기에, 눈 앞에 있는 생명체가 같은 인간이라기보다 벌레 또는 짐승이기 때문에 별 다른 죄책감 없이, 심지어는 어떤 정의감에 도취되어 각종 고문 등의 잔인한 행동을 할 수 있고 생명을 앗아가는 일 또한 거리낌 없이 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Kteily 등의 학자들은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서로 다른 국가, 인종 집단이 얼마나 비인간화 되어지고 있는지 연구했다.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인간이라고 다 같은 인간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매우 진화된 듯 보이지만 또 다른 사람들은 짐승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아래의 이미지를 보고 각 그룹의 사람들이 얼마나 진화되었는지 좌-우 슬라이더로 표시해 보시오.”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 현생인류를 100점 만점으로 할 때 미국인, 유럽인, 스위스인, 일본인, 프랑스인, 호주인, 오스트리아인, 아이슬란드인, 중국인, 한국인, 멕시코 이민자, 아랍인, 무슬림 순으로 ‘인간답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슬란드인까지는 미국인과 통계적인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고 중국인부터 그 아래는 유의미하게 미국인보다 덜 진화된 존재로 여겨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은 대놓고 중국인, 한국인(South Korea), 히스패닉계 이민자, 무슬림들을 인간 이하로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유럽인, 호주인, 일본인은 미국인과 비슷한 수준으로 발달된 존재로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언급했다.

 

연구자들은 총 다섯 개의 연구를 통해서 비인간화 현상을 조사했다. 비인간화는 ‘저들은 나와 같은 인간다운 감정 (자부심, 사랑, 동정심, 좌절감 등)이 없을 것’이라고 여기는 태도와 또는 인간이 아닌 기계, 로봇 같을 거 같다고 보는 태도로도 나타났다.


이렇게 전반적으로 자기가 속한 집단 밖의 다른 사람들을 같은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비인간화가 심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우월한 집단이 열등한 집단을 지배하는 것이 옳다”, “권위/전통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인식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자들의 관심은 미국 사회에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무슬림 집단에 대한 비인간화였는데, 이들에 대한 비인간화 정도가 심할수록 이들에 대한 이민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던가, 이들을 대상으로 한 잔인한 공격과 고문에도 찬성하는 경향을 보였다. 또한 같은 잘못을 했어도 백인은 처벌 받지 않고 무슬림만 처벌을 받는 등의 이야기를 들려줬을 때, 무슬림을 비교적 덜 동정하며 ‘당해도 싸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분명히 같은 사람임에도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같은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으며 탄압하기도 한다. 나에게는 중요한 정의가 그들에게는 실현될 필요 없다고 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는 한 없이 사랑을 퍼주면서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죽어버리라는 저주를 퍼붓고 그의 고통에 둔감하거나 심지어 기뻐하는 게 가능하다.




이렇게 같은 사람을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는 등 우리들의 인식은 완전하지 않다. 따라서 불완전한 우리의 감정과 인식에만 기대어 세상을 살만하게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는 학자들이 있다. 차라리 인권을 ‘외우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저 사람도 인간의 범주에 들어간다면 당신이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느끼든지 그 사람은 천부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당신이 그 권리를 앗아갈 수는 없습니다. 차별할 권리 또한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이다. 물론 이런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행동을 가이드하는 사회적 ‘합의’, ‘규범’의 역할이 중요하다.


한편 한국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국 사회의 다양한 외국인 집단에 대해 비슷한 조사를 해 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혹시 우리들도 별 다른 거리낌 없이 다른 집단 사람들을 나보다 열등한 인간으로 보고 있거나 나와 같은 지적 능력,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보지 않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다.


※ 필자소개

지뇽뇽. 연세대에서 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과학적인 심리학 연구 결과를 보고하는 ‘지뇽뇽의 사회심리학 블로그’ (jinpark.egloos.com)를 운영하고 있다. 과학동아에 인기리 연재했던 심리학 이야기를 동아사이언스에 새롭게 연재할 계획이다. 최근에는 한 주를 건강하게 보내는 심리학을 다룬 <심리학 일주일>을 썼다.

지뇽뇽 심리학 칼럼니스트 imaum0217@naver.com

동아사이언스

케이콘텐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