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꼴이 꼴이 아닙니다 [방석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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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꼴이 꼴이 아닙니다

2016.11.07


일본에는 마쓰시타정경숙(松下政經塾)이라는 교육기관이 있습니다. 일본의 차세대 리더를 양성할 목적으로 세운 사설 교육재단입니다. 일본 경제부흥의 신화를 쓴 마쓰시타전기(松下電器)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1894~1989)가 1979년 사재 70억 엔을 내놓고, 마쓰시타그룹 계열 회사들이 50억 엔을 투자해 설립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이 정경숙(政經塾)에서는 정치적 리더로서의 기본적 품격을 갖추도록 서예, 검도, 다도(茶道)와 선(禪)을 필수로 가르칩니다. 그 외 각자가 스스로 계획한 연구 및 학습 프로그램에 따라 비상근 교수진의 도움을 받아 학업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는 전례 없는 큰 정치적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나라꼴이 꼴이 아닙니다. 대통령이 정실에 매여 공사 구분을 못하고, 주변 잡배들이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호가호위(狐假虎威)를 서슴지 않아 국정이 마비되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이 같은 상황을 비판하고 성토하는 정치꾼들의 노림수 또한 의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과연 표류하는 이 나라의 키를 누구의 손에 맡겨야 할지 국민들은 망연자실할 뿐입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 말재주꾼, 선동꾼이 아닙니다. 뚜렷한 정치철학과 덕성을 갖춘,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의 내일을 생각하는 지도자입니다. 그러나 눈을 씻고 보아도 그런 덕성과 신념을 갖춘 인물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도 밉게만 보아온 이웃 나라의 앞선 경험을 떠올려 보게 됩니다. 얼마나 더 오래 이 혼란이 이어질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이 땅에 뿌리내려야 할 바른 정치, 정의로운 사회의 구현을 위해 참다운 인재 양성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일본에서 ‘경영의 신(神)’으로 추앙받던 인물입니다. 태평양전쟁 후 패전국 일본을 세계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서게 한 일본 경제 신화의 주역 중 한 사람입니다. 원래 부잣집 막내아들로 태어났지만 부친의 사업이 망하고 형제들이 잇달아 병사하면서 혼자 힘으로 죽을 고생을 하며 자랐습니다. 그러나 자포자기도 하지 않았고 부모나 세상을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도리어 가난했기 때문에 세상살이에 필요한 온갖 경험을 쌓았고, 신체적으로 허약했기에 열심히 운동해 오래 건강을 지켰고, 정규 학업을 쌓지 못했기에 누구에게나 묻고 배워 자수성가의 길을 터득할 수 있었습니다.

자전거 가게 종업원, 시멘트 회사 운반원, 전등회사 사원으로 전전하던 그는 만 22살 때 전등 소켓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 수많은 난관과 시련을 극복하고 마침내 마쓰시타전기라는 세계 굴지의 기업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또 실제 창업 시기와는 상관없이 ‘좋은 물건을 싸게 만들어 사회를 윤택하게 하고 사람들에게 행복을 준다’는 기업의 사명을 깨달은 1932년 5월 5일을 창립기념일로 정했다고 합니다.

30대 초반 잠시 주위의 권유에 못 이겨 오사카의 한 구 의원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정치 체질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현실 정치에 큰 환멸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만년의 그는 경제대국으로 일어서 물질적 번영을 누리고 있는 일본이지만 경제력에 부합하는 정치적 지도력이나 사회문화적 역량은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쓰시타정경숙의 설립은 나라의 운명을 짊어질 수 있는, 비전을 가진 정치인을 양성하고 싶다는 그의 염원의 발로였습니다.

마쓰시타정경숙이 설립자의 큰 뜻과 기대에 얼마나 부응하는지, 배출된 인물들이 오늘날 일본 정가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미래의 비전은커녕 눈앞의 사리분별에도 어둡고, 뻔뻔스럽게 거짓말 잘하고 욕설 잘하며, 제 허물은 덮어놓고 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후안무치한 소인배들이 설쳐대는 우리 정치계를 정화하는 데는 이런 정치인 양성기관이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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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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